성공의 사전적 의미는 '목적한 바를 이룸'이다. 목적이 있는 삶이란 세상에 나가 남들과 경쟁해서 얻는 결과일까? 나는 성공이라는 말이 부담스럽다. 삶의 목적이라고 정한 어떤 것도 큰 것들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내게 삶이란 죽음과 인접한 현실적 개념, 삼시 세끼를 먹고사는 고단한 일상과 닿아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의 모든 순간들은 신기함이나 호기심도 가져오지만 내게 처음이라는 말은 긴장감이나 두려움 같은 느낌이다. 아마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내면에 가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초중고 학생시절에는 수많은 자잘한 목적들이 일과를 채웠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시험들, 연례적인 글짓기 백일장, 학교밖 동아리에서의 문학작품 발표, 교내 책자인 교지 편집, 합창단 정기공연, 원하는 전공의 대학입학, 사랑, 결혼과 같은 목적들이었다.
첫성공이란 처음 가졌던 목적이라고 생각해 본다. 삶을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 보니 내가 처음 가졌던 선명한 목적은 '아픈 척하기'였다. 초등학교 2학년 봄이었고이쁜 이름의 담임 선생님은 너무 무서웠다. 바로 뒷집에 사시던 초등학교 1학년 때의 다정한 선생님을 떠나 2학년이 되었다. 나는 영등포 김내과에서 "이젠 마음껏 뛰놀아라"라는 엄청난 허락을 받았다. 뛰놀라는말을 들었지만 소독약 냄새가 배어있는 병원은 뛰노는 곳이 아니었다. 아무튼 나는 뛰놀기의 대가가 되었다.
집 앞 놀이터와 전봇대 근처가 뛰놀기의 장소였다. 늘 밖에서 노는 아이들과 하던 놀이가 있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사방치기', '꼭꼭 숨어라', '고무줄' 등은 그날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정해졌다. 담임 선생님의 엄한 표정과 뛰놀 수 없는 조용해야만 하는 교실은 재미없는 곳이었다. 수업과 수업 사이의 쉬는 시간도 조용해야만 했다.
단 한 명의 친구라도 있으면 전봇대에 고무줄을 묶고 고무줄놀이를 했다.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이나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를 노래하며 신나게 뛰놀았다.
그날도 아이들과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들으니 아프면 학교에 못 간다는 것이었다. 학교를 가지 않으려면 아파야 하는데 아파지지 않았다. 나는 아프기로 결심했다. 아프기로 결심해서일까? 어느 날 아침에 어지럼증이 생겼고, 열도 좀 났다. 오래 늦잠을 잤는데 엄마는 귀하게 숨겨둔 황도 복숭아 통조림을 따서 먹였으며 나는 당연히 학교에 가지 못했다.
복숭아 통조림은 맛있었지만 달콤한 맛을 뚫고 비릿한 통조림 냄새가 풍겨왔다. 복숭아의 달콤한 향과 통조림을 먹으면 아무리 조심해도 끈적한 당분이손에 묻었다. 내가 꾸민 목적을 비웃는 냄새처럼 느껴져서 많이 먹지 못했다.
인생을 거슬러 올라가 추억한 삶의 첫 성공의추억은 복숭아 통조림에서 끝났다. 살면서 내가 목적했던 삶의 성공과 실패와는 사뭇 다르다.삶의 첫 성공은 내가 꾸민 아픈척하기가 아니라 동네를 쏘다니며 아이들과 함께 뛰노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귀여워라. 어린 나를 꼭 안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