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밥
겨울 할머니댁은 가기 전부터 군침이 돕니다. 남해 바다에서 갓 따온 싱싱한 굴을 늘 주셨거든요.
보통 손바닥만큼 큰 굴을 선호하지만 여기는 알이 작고 신선한 바다내음이 가득한 굴을 맛있는 굴이라고 말합니다.
매년 먹을 때마다 아빠는 “이게 진짜 맛있는 굴이라며 많이 먹어둬.”라고 하는데, 어쩜 그리 매년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지 앵무새처럼 말할 수 있을 정도예요.
굴은 초장에 찍어 먹기도 하고, 아빠가 무와 집에 있는 야채를 대충 넣어 굴무침을 만들어주시기도 합니다. 뭘 어떻게 먹어도 시원한 바다향이 가득 나 마치 배 위에서 먹는 기분이 들어요.
이렇게 할머니댁의 추억을 꺼낼 때마다 할머니가 보고 싶어 집니다. 저는 할머니와 그리 친한 편은 아니에요. 할머니댁이 남해라 자주 왕래하지 못한 것도 있고, 중고등학생땐 아예 시골로 내려가지 않아 다 큰 성인이 되어서야(그것도 20대 후반에) 할머니를 뵈러 갔거든요.
결혼 후엔 신랑과 함께 인사를 하러 갔는데 할머니는 시댁을 먼저 들리지 않고 왔다고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저를 걱정하셨어요.(웃음)
할머니는 성품이 온화하신 분으로 몇 가지 추억을 회상하자면, 어렸을 때 옆마당에서 불장난을 쳐도, 남의 밭을 다 뒤집어엎어놔도 화를 내며 혼내지 않으셨어요. 가르치실 때도 늘 차분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저희를 깨우쳐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화가 머리끝까지 나실 법도 한데(웃음) 아이고~하며 허허 웃으셨던 것이 저희를 정말 많이 사랑하셨던 것 같아요.
이런 정겨운 할머니의 모습 덕분에 지금도 그때의 추억은 늘 행복하고 그립고 다시금 겪어보고 싶어 집니다.
최근에는 연세가 많아지시면서 거동도 불편하시게 되고 치매끼가 조금 오셨어요. 이때도 늘 웃으시면서 나이가 드니 기억이 잘 안 난다며 슬프지만 행복한 웃음을 지으시며 저희를 반겨주셨습니다.
이후 할머니 몸이 급격하게 안 좋아지셔서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는데, 그리 오랜 시간을 보내진 않으셨고 따뜻한 어느 날 하늘나라로 먼저 가셨어요.
이렇게 할머니가 생각나는 날엔 보고 싶은 마음이 망망대해 바다처럼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그리워집니다.
연애를 오래 했다고 해서 서로의 입맛까지 다 알게 되는 건 아닌가 봐요.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결혼해서 보니 또 알게 되는 것이 있더라고요.
‘신랑이 굴을 싫어할 줄이야!’
특히 신랑은 생굴을 좋아하지 않아요. 먹는 건 석화 정도?
굴이 너무 먹고 싶어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는데 속으론 ‘막상 보면 한 입만~ 할지도 몰라.’했지요. 그런데 정말 눈길 한 번 안 주는 겁니다.
그 뒤로는 생굴을 먹어 본 기억이 거의 없어요. 같이 안 먹으니 안 찾게 되더라고요.
굴국도 끓여봤지만 애원해서 한 입.
석화와 가리비를 찌는 날엔 가리비만 쏙쏙.
얄미워 아주..
굴밥은 먹으려나 싶어 만들어봤습니다. 혹시나 안 먹을까 싶어 무도 넣고 고구마도 넣고 김과 김치도 준비했어요. 양념장도 매콤하게 고추 추가해 맛있게 만들어 놓고요.
“오?! 잘 먹네!!”
보양식이 따로 없다며 싹싹 긁어먹는 모습을 보니 너무 뿌듯했어요. 싫어하는 재료도 맛있게 먹게 되는 때, 밖에서 먹는 것보다 집에서 먹는 게 맛있단 소리를 들으면 요리하길 잘했단 생각이 듭니다.
싫어하는 식재료를 없애고
거부감 들었던 음식을 맛있게 먹게 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가족을 생각하며
요리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오늘은 또 뭘 먹어야 하나’
늘 고민에 사로잡혀 있지만
근사하게 한 끼를 끝내고 나면
배 통통 두들기는 가족들의 모습에
자존감도 높아집니다.
오늘은 이것저것 고민하지 말고
간단하게 굴밥 한 번 드셔보세요!
밥은 너무 질면 안 되니
물은 살짝 적게 넣어주세요.
그럼 오늘도 평안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굴 세척법
굴에 굵은소금을 넣고 숟가락으로 섞어줍니다.
거무튀튀한 색으로 변해가면 물에 씻어주세요.
굴만 건져 채에 담아줍니다.
2-3번 정도 반복해 세척해 주세요.
너무 많이 씻어내면 굴향이 사라지니 흐르는 물에 가볍게 2-3회 씻어주세요.
https://www.instagram.com/reel/DD-tKpFyJCl/?igsh=ZTc4ZzRldzZnYWp3
• 재료
굴 200g, 쌀 1.5컵, 무 조금, 고구마 1/2개
양념장: 고추 1개, 대파 조금, 다진 마늘 1/2T, 진간장 3T, 고춧가루 1/2T, 참기름 1T, 깨
• 레시피
1. 무는 얇게 채 썰고, 고구마는 작게 깍둑 썰어줍니다.
2. 불린 쌀에 무, 고구마, 굴을 올려
3. 백미로 취사해 주세요.
4. 양념장을 만들어줍니다.
• tip
- 쌀은 30분간 불리거나, 생략해도 괜찮아요.
- 재료에서 수분이 나오기 때문에 물의 양은 평소보다 작게 넣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