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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하파 Nov 22. 2024

단편소설: 가을로부터 봄

단편소설

가을로부터 봄 


1.

윤교감은  거실 창문을 열었다. 건조한 가을바람이 차갑게 얼굴에 닿았다.  차들이 빠져나간 빈 주차장에는 관절염을 앓는 노인의 손가락처럼 마디가 울퉁불퉁 퉁그러진 나무 가지들이 한 해의 옷을 하나 둘 처연하게 벗겨내고 있었다.  주차장 바닥에서 이리저리 바람에 뒹구는 낙엽들은 40년을 훌쩍 넘긴 노후한 아파트 단지의 세월을 고스란히 쓸어 담고 있는 듯했다.  페인트 칠이 듬성듬성 다 볏겨진 건너편 아파트의 벽을 타고 이리저리 길을 튼 실금은 윤교감의 마음처럼 어지러웠다. 아파트 이곳저곳에는  재건축 추진을 환영한다는 플랫카드가 붙어 있었고  그 수에 못 미치지만  '우리는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다’ 라는 문구를 넣은 반대자들의 플랫카드도 보였다. 

1년 전부터 아파트 단지는 재건축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몇 달 전 발족한  재건축 추진 위원회는  재건축에 반대하거나 중립적인 주민들을 접촉해서 이제 몇 집 만 동의를 받아내면 75%의 찬성을 달성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윤교장도 그들이 접촉해 설득해야 할 대상 중  하나였다.  교직생활을 시작하고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공무원들에게 주는 혜택이 있어서  좋은 조건으로  이곳에 입주를 하게 되었다.  30평이 조금 안 되는 이 낡은 아파트도 당시에는 깨끗하고 살기 좋은 환경이라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넓은 평수는  아니지만  그는  한 번도 이사하지 않고 이곳에서 세 자녀를 키우고 모두 출가시켰다.  특히 함께  자녀들을 키우며 고생해 온 아내가 눈을 감은 곳이기도 하다.  퇴직년에  막내아들까지 출가시키고 아내는 덜컥  암선고를 받았다.  3년의 투병생활을 하던 아내는 병원이 아닌 집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다고 했고 그는 아내의 청을 거절할 수 없어  의사와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데리고 왔다.   가족들도  이웃들도 그런 집에  꿋꿋이 혼자 살고 있는 윤교감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그에겐 어쩌면 그것이 이유였는지 몰랐다.  자신도 일생을 다 바친 이곳에서 아내의 뒤를 따르고 싶었다.  그렇게 퇴직하고 10년 아내와 사별한 지도 6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띵동’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반려견인  매실이  꼬리를 흔들며  현관 쪽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으르렁 거리다 짖어대길 반복했다.   베란다 앞 작은 탁자에 앉아 차를 마시던 윤교감은 거실로 나가 인터폰 수화기를 들었다. 오래된 흑백 모니터는 이제 아예 문밖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네 누구시죠?”

‘네 교감 선생님 저예요  704호.”

704호 박 씨는 재건축 추진 위원회의 위원 중 한 사람이었다. 사실 재건축 바람이 불기 조금 전인  5년 전쯤 이사를 왔었는데  단지 상가에 있는 허름한 헬스장에서 같이 운동을 하면서 안면을 터왔다.  붙임성이 좋은 사람이라 이런저런 말을 걸어오면 미소 지으며 호응은 해 왔지만 윤교감은  어쩐지 늘 그가 부담스러웠다.  재건축 추진 위원이 된 이후로  그는 더 노골적으로 그와 접촉하려 했다. 윤교감은 달갑지 않았지만 거절에 익숙하지 못했다.  버튼을 누르자 현관문이 열리고  박 씨가 예의 그 붙임성 좋은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한쪽 손에는  서류 봉투와  다른 손에는 음료수 박스 하나를 들고 서 있었다. 며칠 전부터 시간을 내어 주면 재건축을 꼭 해야 하는 이유를 들려주겠다며  간곡히 청을 하는 바람에  한 번은 제대로 마주하고 의사를 밝혀야겠다고 생각해 방문을 허락했었다.    

이거 별것 아닌데…  나이 먹을수록 단백질 섭취를 잘해야 한데요.  이게 국산콩으로 만든 두유래요. 두유 드시죠?


이런 걸 뭘…  일단 들어오세요.


윤교장은 콩비린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상대의 손이 무안할까  두유 박스를 받아  현관 옆에 일단 놓아두고  박 씨를 식탁으로 안내했다.  박 씨는  오래된 나무 식탁에 앉으면서 거실을 한번 훑어보았다.  

-아유 여기가 층이 낮으니까.  지금이 몇 시냐.. 어이쿠   4시만 되어도 이렇게  앞 동 그림자가 걸리네요. 이거 나이를 먹을수록  밝은 데서 지내셔야 하는데.. 

-뭐 그래도 여기 아파트가 요새 짓는 것보다는 동 간 간격도 넓고 해서  햇볕이 잘 드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이제 제법 해가 짧아지긴 했네요.  곧 추워지겠습니다.  허허 

- 그런데 혼자 지내시면  적적 하시겠어요. 자녀분들은 자주 놀러 오세요?

-머 다들 살기 바쁜데  자주 오면 뭐 합니까.  손주들 와 봐야 시끄럽기만 하죠.   그냥 저 놈하고 적적하게 지내는 게 나쁘지 않습디다.  제가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평생을 시달리면서 살아서. 

윤교감은 박 씨를  계속 마주하고 바로 보기가 그래서  옆에 누운  매실을 돌아보며 말했다. 

박 씨는 어색한 대화를 인식했는지  곧바로 손에 있던 서류 봉투를 꺼내서  안에 있던 프린트물들을 탁자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저번에도 얼핏 말씀드렸지만 재건축되면 집 값도 오르고, 우리 아파트도 새로워지는 거 아닙니까? 이렇게 낡은 곳에 계속 사는 것보다는 그렇게 재미 좀 보시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지금도 이미 재건축한다니까 저희 단지 가격이 많이 오른 거 아시죠.    꼭 재건축되길 기다리지 않고  가격 더 오르시면 처분하시고 어디 풍경 좋은 시골에 전원주택 같은 데서 사셔도 되고  옵션이야 많지요. 저 녀석도 이런 갑갑한 아파트보다는  마당 있는 주택에서 사는 게 더 좋을 테고요.  제가 이 자료를 좀 보여 드리면서 설명드릴게요 

 박 씨는  검지 손가락을 입에 가져가 침을 바르고  프린트 물들을 넘기며 말을 이어갔다. 

-일단  이 재건축 절차를 좀 말씀드릴게요. 그러고 나서  기대되는 효과  그러니까 까놓고 우리가 볼 수 있는 이익을  좀 실질적으로 예상해서 말씀드리고. 각 가구가 준비해야 할 사항 같은 거 좀  설명드릴게요.  그러니까  재건축은 크게 한 7가지 단계로 나눌 수가 있어요.  지금 저희가 일단 재건축위원회를 구성했잖아요?  이게 뭐 하는 거냐면…

-저  박 씨,  잠깐만요. 

윤교감이  박 씨의 말을 자르며 조심스럽고 신중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말하려 했다. 윤 교감은  박 씨의 설명을 끝까지 들을 생각은 아니었다.  자신은 이 재건축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이야기하고 싶어서 부른 것이었다.

-내가 박 씨를  부른 건  이 설명을 들으려고 한건 아니에요.  나도 뭐 재건축이 들어가면 사람들이  조금 이득은 볼 수 있다는 것쯤은 압니다.  물론 예전 같지 않겠지만요.  제 입장에서는 사실 이 집을 담보로 빚을 얻은 것도 아직 있고요.  연금을 받고는 있지만  아주 기본적인 생활비 빼고  대부분이 그 빚을 탕감하는데  쓰고 있고  사실 재건축 분담금을 낼만 한 형편이 안 돼요.   사실 뭐 그런 문제는 재건축 후에 시세차익이 보상해 줄지도 모르죠.  그런데 당장 재건축이 되는 것도 아니고 제 나이에 내일 어떻게 돼도 이상할 게 없어요. 10년이 될지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를 아파트 재건축이 제겐 참 요원한 일이라서요.   그리고 그 보단..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이 백세 시대에. 아직 창창하신 선생님께서 재건축하시고  몇 년 묵히시면  지금 시세의 못해도 2배는 받으실 거예요.  뭐 분담금 들어가긴 하지만 그런다 해도 나중에 최종적으로는  앉아서  최소 3-4억 이상은 이득이시라니까요.    

글쎄, 전 재건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전달드리고  더 이상 제가 이런 말씀을 안 들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나자고 한 겁니다. 


아이고 정말 노인네 왜 이렇게 고집이 세십니까. 정말 답답하시네.   이게 얼마나 좋은 기회인데요.  어차피 지금 교감 선샘님 아니어도 대세는 이미 기울었어요.   몇 집 안 남았다고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미리 찬성하면 나중에 조합원 되셨을 때 그래도 좀  뭐 하나라도 더 챙겨 가시게 제가 신경 써  드리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요.  제가  교감선생님 알고 온 게  한 두해도 아니고요.   큰 형님 같아서 제가  괜히  이웃들한테 미운털 박힐까 봐 걱정돼서 이러지 않습니까 



그때  흥분한 박 씨의 언성이 좀 커지자 옆에 누웠던 매실이 덩달아 짖어댔다. 그렇지 않았다면  박 씨의 설교는 계속되었을지도 모른다.  매실은 탁자로 달려와 박 씨를 향해 계속 으르렁 됐고 그 바람에 놀라 박 씨는 어이쿠하며 의자와 함께  옆으로  넘어졌다.   윤교장은 매실을 안아  턱밑을 쓰다듬으면서 달랬고 박 씨는 머쓱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서류들을 주섬주섬 챙겼다.    

뭐 정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네요.  그래도 며칠 한 번만 더  생각해 보세요 이거 서류는  그냥 두고 갈게 한번 살펴보세요 



윤교감은  박 씨를 보내고  마음 한구석이  편하지 않았다.  비록 반대를 하긴 했으나  주민 75%의 승인을 받으면 재건축은  추진될 수밖에 없었고 아마 그게 더 현실적인 결과일 거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아파트를 떠난다는 생각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듯했고  굳이 저항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허탈하기도 했다. 게다가  어제  둘째 희정의 전화가 마음에 걸렸다.    김서방이  또 무슨 사고를 친 눈치였는데 말을 하지 않는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겠느냐만  둘째 딸아이는 자꾸 신경이 쓰이는 자식이다.  어쩌면 조금이라도 경제적인 이익을 남겨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는 게 맞다는 생각도 들었다. 

윤교감은 오래된 소파에  기대어 앉아 한동안  꼼짝 않고 있었다. 몇십 년 전 이곳에서의 기억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이 집에서 아내와 처음으로 가구를 배치했던 날, 아이들이 이 방 저 방을 뛰어다니며 떠들던 소리, 그리고 이곳에서 맞이했던 수많은 아침과 저녁들. 그는 이 작은 공간에 깃든, 손에 잡힐 듯한 아련한 추억들을 곱씹어 보았다. 

"정말 여길 떠나야 할까..." 윤교감은 혼잣말을 내뱉었다. 마치 옆에 아내가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요한 침묵이 실내를 가득 채웠고, 오랫동안 그와 동고동락해 온 물건들이 주위에서 그를 지켜보는 듯했다.

윤교감은  거실벽에  걸린 가족사진을 바라보았다. 사진 속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아내와 장성한 아이들과 그들의 아이들이 함께 있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자랐고, 어느덧 자신의 가정을 이루고 뿔뿔이 흩어졌다. 아내마저 떠나고 혼자 남은 이 집은 때로는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의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기에 이곳을 떠난다는 것은 단순히 집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과거, 그의 모든 삶의 흔적들을  다 함께 떠나보내야 한다는 의미였다.




2.


윤교감은 여느 때와 같이 아침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산책 갈 채비를 했다.   매실 이를  앞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같은 동에 사는 김 여사를 마주쳤다. 김 여사는 30여 년 전부터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윤교감의 아내를 언니로 따르며 친했던 사이였다.   

어 형부, 산책 가시나 보네요.  


김여사는 윤교감을 형부라 불렀다.  윤교감은 아직도  존칭을 하며 그저 김여사 혹은  호칭을 하지 않고 대했다.    

네, 가게 나가시나 보네요 


네, 그런데  이 녀석도 이제 나이가 꽤 됐죠?


김여사는 몸을 구부려 숨을 헐떡이는 매실이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렇죠. 사람으로 치면 저희들 나이하고 비슷하지 않나 싶네요 


혹시 박 씨 아저씨가 귀찮게 안 하셔요  


윤교장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아휴, 우리 가게에도 얼마 전에 찾아와서 찬성해 달라고 어찌나 일장 연설을 하고 가던지.   형부도  생각 변하지 않으셨죠?.  분담금도 생각보다 엄청 많던데 

-저야 뭐... 떠날 마음이 생기진 않습니다만 그래도 다들 새로운 아파트를 생각하고 있으니, 저 같은 사람은 방해가 될 뿐이죠."

-형부, 방해라뇨. 그런 생각은 하지 마세요. 우리도 권리가 있어요. 아니 무슨 권리로 여길 나가라 마라 하냐고요 글쎄. 아 그리고 이따 점심때 시간 되시면 상가 저희 식당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형부도 나오세요. 


재건축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위원회 사람들 만큼은 아니어도 모임을 만들고 나름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대부분은 나이가 지긋한 노인 가구이거나 재건축 분담금을 지불할 만한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이거나. 재건축 사업이 추진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리스크를 의심하여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주민들 중에는 이런 건설 사업과 관련된 일을 해 본 경험자들도 적잖이 있었고 그들 중에  이 사업의  추진 기간에 걸리는 시간이나 노력 그리고 스트레스 대비 얻을 수 있는 실질적 기대효과에 대해  부정적인 예측을 하는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재건축 반대 모임이 결성되었다. 일부 상가운영을 하는 주민 같은 경우는  재건축 동안의 매출 중단 등  피해 보상 등을  이유로 조건부 반대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공격적으로 추진을 하는 사람들보다 방어적인 성향이 많아 재건축 위원회처럼  구심력이나 결속력이 강하진 않았다.    김여사가 말하는 모임은 이 중에서도 주로  노인 가구들을 말하는 것인데  윤교감은 이 모임에 나가는 것도 썩 내켜하지는 않았다. 재건축이 추진된  이후로 주민들끼리 편을 갈라 싸우고 서로 반목하는 모습을 보기가 싫었다.


윤선생은  김여사의 입장을 고려해 그러겠다고 하고  엘리베이터를 나섰다.  김여사도 평소 알고 있는 성격으로 보면 이런 일에  적극적으로 나설 사람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이 집을 떠나길 원하지 않는 이유를 그는 대충 짐작했다.    김여사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다.  명문 대학을 나온 오빠 두 명과 달리 막내딸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사춘기를 심하게 앓고  이상한 친구들을 사귀고 엇 나가기 시작했다.  몇 번씩 가출을 했었고  죽은 아내의 말로는 성인 업소 같은 곳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잡아 오기도 했다고 했다. 김여사의 남편은 집안 망신시킨다고  막내딸을 멸시했고 오빠들도 동생을 부끄러워했다.   결국 고3이 되던 해에 집을 나간 딸은  집으로 끝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3년 정도를 거의 정신 나간 사람처럼  딸을 찾아다녔지만  딸은 마치  감쪽같이  한국이란 나라에서 사라져 버린 것처럼 행방을 감춘 채  나타나지 않았다.  살았다면  경찰 추적에 흔적이라도 보였을 것이라며  가족들은 죽은 샘 치자고 했지만  김여사는  그런 남편과 아들들이 너무 야속했고 딸이 창피해 일부러 찾지 않는 것 아니냐며 가족들을 점점 지치게 만들었다.   그렇게 폐인처럼  망가져가던 김 여사는 결국 남편과는 이혼하고  아들 들에게서도 외면당했다. 이 아파트 한 채를 재산분할로 받고  혼자가 되어서야 그녀는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 과정을  다 지켜보던 아내가  그녀의  조력자 역할을 자처하고 나서는 바람에  윤 교감과도 꽤 갈등을 빚기도 했다. 윤교감의 막내아들이 그 사라진 딸과 동갑내기였고 중1 때까지만 해도 둘은 엄마들과 함께 꽤 자주 어울렸었다.  아내의 도움이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김여사는 다행히도  차츰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고  아파트 상가에 작은 음식점도 내고 정상적인 생활인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그렇게 자기가 이 아파트를 지키고 앉아 마음 굳게 있다 보면 언제가 가출한 딸이 돌아오리라 믿었던 것이다.  아니 그런 기대와 희망이 없다면 그녀는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아파트가  헐리고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선다면 그 딸이 돌아올 곳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김여사에게  절대적인 희망을 빼앗아 가버리는 일이었다.  윤교감은  그것이 또한 그녀 나름의 속죄라는 것도 알았다. 사실 그녀는 딸이 집을 나가게 전까지 다른 가족들 못지않게 딸을 매몰차게 궁지에 몰았었다. 왜 자신만이라도  딸을 더 품어주지 못했을까 그녀는 평생의 한으로 남게 되었다. 

김여사와 그 딸을  생각하다 보니 윤교감은 자신의 딸인 희정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하면 오래전  희정이 덜컥 임신을 하고 결혼을 하겠다고 김서방을  집으로 데리고 왔을 때 그는 교육자로서 자신의 체면을 먼저 지키고 싶었던 것 같다.  그는 희정의 배가 더 불러오기 전에 결혼식을 서두르는 게 좋겠다 생각했다.   김서방도 그때에는  4년제 대학을 나오고 번듯한 직장이 있었고  딸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긴 했지만 성격도 수더분해 보였으며  평범한 집안 환경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기에 이것저것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신중했다고 해도  뭐가 달라졌을까. 당시의 또래에 비해선 결혼하기에 이른 나이였지만 그렇다고 대학졸업까지 한 24살 나이가 결혼하기 모자란 나이라고 볼 수도 없었고 임신까지 한 마당에 결혼을 반대할 이유도 없었다. 그땐  김서방이 저럴 위인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결혼한 지 10년즘 지났을 때  갑자기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윤교장은  왜 좀 더 적극적으로 그를 만류하지 못했는지 후회했다.  그나마 빚의 규모가 감당할 만한 수준에서 끝나서 다행이었다.  그것도 양쪽 집안에서 도움을 주었기에 겨우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그때 윤교감은 이 아파트를 담보로 꽤 큰돈을 희정에게 대출해 주었다.  그리고 그 빚은  아직도 윤교감의  연금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김서방은 그 후로 계속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일용직을 전전했고 그 바람에 희정은 보습 학원 강사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실질적인 가장이 되었다.  그래도  두 아이를 키우면서 그럭저럭 생활은 해나가는 눈치였지만  빚을 갚을 형편은 못되었다.  애초에 상환할 거란 기대를 하고 준 돈도 아니었다.  그저 자기들 입에 풀칠하고 잘 살아가길 바랄 뿐이었다.    최근에는 김서방도 정신을 차렸는지  사업 얘기도 더 이상 하지 않고 배달 일을 하면서 지낸다고 하니 그래도 한시름 놓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문득 전화를 한 희정이 이런저런 안부를 묻는 품이 뭔가 수상한 낌새가 있었다.   윤교감은   벤치에 앉아  전화기를 꺼내어 희정의 번호를 꾹 눌렀다. 

-   아빠, 아침부터 어쩐 일이세요    

그냥  매실이하고 산책 나왔다가.. 별일 없는 거지? 


별일은요 뭐  


김서방도 잘 있고? 


희정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그럼요…


왜 목소리가 그러냐   아비한테 말해봐. 무슨 일 있는 거지?  저번에 전화할 때도 좀 이상했다.  너 우니?


아 아니에요. 그냥 좀.  아빠한테 너무 죄송해서요.  빌린 돈도 이제 갚아야 하는데 


그런 소리 하지 말고. 너희가 잘 살면 됐지.


 김서방도  요즘은  배달일 잘하고 있어요. 수입도 나쁘지 않고  걱정 마세요.  


진짜 별일 없는 거지?


혹시, 오빠랑  민석이 연락 없었어요?


희정이 조심스레 물었다.    

아니, 왜?


사실은 아빠,  우리 돈 빌려 주신 거. 오빠랑 민석이가 알게 됐어요.  죄송해요. 얼마 전에 저희 넷이서 모인 적이 있어요.  김서방이 술에 취해 그때 오빠한테 서운했던 이야기 하다 어떻게 말이 나와가지고.  죄송해요  지난번에 전화한 것도. 혹시 오빠나 민석이가  아빠한테 뭐라 했을까 봐 


그런 일이 있었구나.  걱정 말아라.  어차피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했다.  좀 서운하긴 하겠지만 지들이 무슨 할 말이 있겠어.  


아빠  아파트 재건축 들어간다면서요?  오빠랑 민석이가  아빠가 재건축 반대한다고 그거 좀 같이 설득하자고 



아빠.. 난 그냥 아빠 하고 싶은 대로 했으면 좋겠어. 걔네들이 뭐라고 하건…  내가 아빠한테 무슨 면목이 있다고.   그래도 혹시 재건축하게 되더라도  공사기간 동안  갈 곳이 마땅찮으면  저희가 모실게요.  아빠만 안 불편하시면 그래도 좋아요. 전   



희정과의 통화를 마치고  윤교장은  큰 아들과 막내아들에게 전화를 할까 고민하다 그만두었다. 그 사실을 알았다면  벌써부터 전화해서 왜 그랬냐고 따져 물었을 녀석들이 잠잠한 게  좀 마음에 걸렸다.  날씨 때문인지  무릎엔  한기가 느껴졌다.  윤교장은 매실을 품으로 끌어와 안고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매실의       털이 부드럽게 그의 몸에 온기를 전달했다. 




3.

며칠 뒤 아침부터  막내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지  민석이에요. 저녁에 약속 없으시죠.   

-  어 그래 민석이냐    

제가 그 근처 식당에 예약했어요.  모시러 갈 테니  어디 가시지 마시고 기다리셔요.  저 회의 들어가야 해서  일단 끊을게요  아마 집사람이 먼저 모시러 갈 거예요  


막내아들은 늘 그런 식이었다.  제가 하고 싶은 것이 항상 우선이어야 했다.  자랄 때 막내라고 응석을 많이 받아 줬던 게 사실이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막내아들의 독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확인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아들은 먼저 며느리와 손자를 집으로 보내왔다.  

-아버님.  우진이  많이 보고 싶으셨죠.  저희가 자주 찾아봬야 하는데..  죄송해요.   얘도 이제 초등학교 들어가니까  시간을 빼기가 참 어렵네요.  

막내며느리는 언제 보아도 어려웠다. 분명히 만나면 입 속의 혀처럼 살갑게 대하는 아이였지만 어쩐지 그게  윤교감은  익숙하지 않았다. 뭐랄까, 그 과장된 살가운 말투들 때문에  오히려  더 먼 거리감을 확인하는 느낌이랄까.   그나마 손자인 우진이가 와서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자랑하듯 떠들고  노래도 부르고 해서  어색함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진은 매실이를 데리고 장난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윤교감은 그래도  오랜만에 손주의 재롱을 볼 수 있어 흐뭇했다.  

  - 시간 된 거 같은데.. 아버님, 그럼 나가실까요.  요 앞에 일식집에 예약해 두었대요.  우진아 이제 그만하고 나갈 준비 해야지.   

뭘 돈 들이고 나가니 여기서 대충 먹으면 되지. 


에구 아버님.   저 요리 잘 못하는 거 아시잖아요.  제 주방도 아니고. 호호.  그리고 오랜만에 맛있는 거 드세요,   우진이도 회를 무척 좋아해요. 


시간이 좀 여유가 있었는데  며느리도 좀 어색한지 서둘러 나가려 했다. 

다행히 식당에 도착했을 때 아들이 먼저 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식사하는 내내 아들은 말이 없었고  며느리는 계속해서 우진이의 학교 생활에 대한 일들을 시시콜콜이 이야기하며  끊어질 듯 말 듯 대화를 이어갔다.   윤교감은 코스로 나오는 요리를 묵묵히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며 넘겼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분명 희정이 이야길 꺼낼 것인데  왜 아무 말이 없는 지 꾹꾹 눌러 담는 음식들이 마음  한 구석에서  얹힌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먼저 말을 꺼내보는 게 나을 듯싶었다. 

-저, 희정이한테  얘기 들었니?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아버지, 저 뭐 그거 가지고  뭐라 하려고 그런 거 아니에요.   뭐 서운하지 않은 건 아닌데.   누나가 그때 힘들었으니까.  그럴 수 있죠. 형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아버지 뜻인데 저희가 뭐 어쩌겠어요. 


윤교감은 의외로 담담히 반응하는 민석이 더 불편했다.   게다가 아들의 말투는  서운하다는 걸  분명히 힘주어 드러내고 있었다. 

-근데 아버지,  아파트 어떡하실 거예요? 아직도 재건축 반대하시는 거예요?   제가 볼 때는 어차피 재건축 들어가게 될 거 같은데 그냥  찬성하시고 아버지도 빨리 다음 대책을 세우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게 사실 재건축 분담금도 낼 형편이 못되고

-알아요. 그런데, 아버지, 그러니까 더 해야죠.   아무리 건축 경기가 안 좋아도  재건축하면  확실히  남는  건데..    저도 이리저리 전문가들한테 알아봤는데 여기 추가 분담금 내도  나중에 시세 차익으로 최소 3-4억은 남길 수 있어요. 

-사실 나도 그걸 모르는 게 아닌데.. 여기 대출금이 담보로 잡혀 있어서 이 집으로 더 대출을 받을 수도 없단다.  그리고 그보다도  언제 재건축이 될지도 모르는데  내가 언제까지…

윤교감의 말이 끝나기 전에  막내는 끼어들었다.    

-다 방법은 있어요.  은행에 상담 다 해보신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 그래서 말씀드리는 건데. 저희가  전셋집 정리하고 여기로  들어오면 어떨까 싶은데..  물론 당장은 아니고요.  재건축 확정되고.  분담금 들어가기 시작할 때  들어오면 어떨까 해요.  분담금은 일단 그 전세금으로 하고요.  아버지도 혼자 지내시기 적적하실 테고.  이 사람도 이제 다시 취업준비 하는 중이에요.  우진이도 많이 커서 별로 손탈 일 없고요.   


윤교감은 막내의 속내를 모르지 않았다.   자식들 중에 언제나 계산이 빨랐다.  결혼할 때  제 형한테는 전세금 대부분을  보태었지만   막내에게는  대부분 본인이 전세 대출을 받았고  일부만을 보조해 주었었다.   그는 이 아파트가 재건축되면 그 상속을 자신의 몫으로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전에도 그런 내색을 비친 적이 많았다.   큰 아들 내외가 오랫동안 난임 치료를 받다가 실패하고  생각을 바꾸어 아이를 낳길 원하지 않았고 욜로인지 딩크인지  자유롭게 살길 원했기에  실질적으로 우진이가 이 집의  장손이 아니냐는 말을 이리저리 돌려서 여러 번 강조했었다. 사실 윤교감도 그럴 생각이 없지는 않았고 막내 아이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며느리랑 함께 사는 것이 영 불편할 것 같기는 해도 우진이 녀석하고 함께 있는 게 싫지는 않았다.   윤교감은 생각해 보자 하고 그날의 어색한  저녁식사를 마쳤다. 



4.


겨울이 되면서 매실은 자주 아팠다.   툭하면 먹은 것을 토했고. 산책을 데리고 나가면 길에 설사를 했다.   멀리 걸어가는 걸  전에 없이 힘들어했다.   눈에도 눈곱이 자주 끼고 진물이 났고 늘 그르렁대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오늘은  병원에 꼭 데리러 가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매실은 유기견이었다.  10여 년 전쯤 그러니까  아내가 암선고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이다. 아파트 뒷 야산 앞에서 다리를  크게 다쳐 걷지 못하고 벌벌 떨고 있는 녀석을 병원에 데려다 치료해 주었다.  그냥 그때는 모든 아픈 것들을 두고 보기가 힘들었다.   처음엔 상처를 치료하고 건강을 회복하면 유기견 센터에 맡길 생각이었다. 막상 유기견 보호 센터에 갔을 때  그곳에 수용된 반려견들의  표정을 보고 또 맡겨질 사람이 없을 경우 안락사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도저히 녀석을  두고 올 수가 없었다.  그렇게 녀석과 인연을 맺었다.  아내도 투병을 하며 매실과 함께 있는 것이 좋았던 듯싶었다.   수의사는 리트리버가 섞인 잡종이라 했다.   그를  만났을 때 이미 3살 정도 나이라 했으니  녀석도  윤교감 자신이 느끼는 노화 이상의 느낌을 살고 있을 것이다. 


동물병원까지는  거리가 꽤 되어  윤교감은 오랜만에  승용차 운전대를 잡았다.  며칠 전 쌓인 눈으로   녹은 눈이 다시 얼음이 되어 미끄러웠다.  시동을 걸고 나가려는데 바퀴가 주차장을 빠져나오면서  얼음이 언 둔덕에서 헛돌기 시작했다.   몇 번 후진과 전진을 천천히 반복했지만 나이가 들어서 감이 무뎌진 것인지 빙판 구간을 여간해서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마침 지나가던  박 씨가  차로 다가왔다.    그는  운전석 옆으로 와서 창문을 두드렸다.  윤교감은 어쩐지 내키지  않았지만  창문을 내렸다.

-에구  선생님,  잠깐 내려보세요.   제가 빼드릴게요 

윤교감은 거절하기도 애매해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  박 씨는 차를 천천히  아예 뒤로 쭉 빼더니 차를 돌려 얼음이 있는 부분을 지나쳐 차를 세웠다. 

-어디 가시나 보네요

-저 녀석이 요즘 좀 이상해서 병원 좀 데려가 보게요    

에구 어쩐지 오늘은 조용하다 했네요.   뭐  나이가 많지요, 저 놈도?   그나저나  이거  주차장이 밖에 있으니까 겨울이면 난리가 난다니까요.  그러니까 빨리  재건축해서  이거 우리도 지하 주차장에, 응, 안전하게 주차해야 하는데 말에요.     교감 선생님  이제 진짜 몇 집 안 남았어요.   아마 재건축하는 게 거의 이젠 기정 사실화되었다니까요 


저 박 씨, 오늘 신세 많았네요. 그런데  예약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그럼. 


윤교감은 혹시나 또  박 씨의 이야기가 길어질까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했다.   아마 자기 같은 사람이 몇 더 반대한다고 대세를 꺾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을 윤교감도 알고 있었다.  어느새  그의 마음도 서서히 재건축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참에 이 녀석을 데리고 어디 조용한 시골에 가볼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어차피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떠날 거라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오랜만에 하는 운전이라 그런지  어쩐지 긴장이 되었다.  차선을 끼어드는 차들을 보면 깜짝 깜짝 놀라고 차선을 바꿀 때도 타이밍을  놓칠 때가 많아한 번은 우회전을 못하고 직진을 하기도 했다.  노인들이 몰던 차가 사고를 내는  뉴스들을 종종 접했지만 자신과는 먼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반응속도가 느려지고 있는 걸 스스로도 체감하게 된다.  

급기야 결국  동물 병원이 위치한 건물의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그만 턴을 하다가 벽모서리에 살짝 차 뒷범퍼를 긁고야 말았다.  작은 건물이라 상하 차선이 분리가 안 된  좁은 통로가  주차장 진입 부분에서 심하게 꺾여 있어서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어쩔 수가 없었다.  

-이런 제길

윤교감 자신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아침부터 이놈의 자동차하고 씨름을 하고 있는데  뭔가 계속해서 자신의 맘대로 되지 않는 모양에  갑자기 짜증이 덜컥 났다.  아무래도 알진이 사나운 날인가,  좀 더 조심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매실과  엘리베이터를 탔다.  1층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한꺼번에 여러 명 우르르 올라탔다.  윤교감은 혹시라도 사람들이 불편할까봐 매실의 목줄을  당겨 구석으로 가게 했다.  그런데 녀석이 몇 번 헛구역질 같은 걸 하더니  이내 입으로  무언가를 게워 냈다.  근처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짧은 소리를 지르며 물러서는 바람에  앞에 있던 사람이 연쇄적으로 밀쳐졌다.   마침 비닐과 휴지를 차에 두고 와서  배설물을 치울 수도 없었다.    

매실아  이 녀석이  오늘 왜 그래.   


난처해하던 윤교감은 순간적으로 매실의 등을 가볍게 치면서 살짝  짜증을 냈다.  옆에서 보고 있던 한  아주머니가  파우치에서 여행용 휴지를 꺼내  윤 교감에게 건넸다.   결국 내려야 할 3층에서 못 내리고 사람들이 다 내릴 동안  8층 건물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매실이 게워 놓은  분비물을 휴지로 닦아내고서  병원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아침나절이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지 병원 데스크에서 접수를 하면서 그제야 윤교감은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는 것을 느꼈다.  

수의사는  매실의 몸 여기저기 관절들을 만져보고  청진기로 이곳저곳을 대어 보고  입을 벌려 안을 살피기도 하더니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다발성 림프종이 의심되네요. 자세한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유관으로 봐도 너무 분명해서 …  많이 힘들어했을 것 같은데..   차트 보니까 오신 지 거의 8개월 다 되어가네요.  그때도 자주 정기 검진받아야 한다고 했을 텐데.  나이가 많아서   


윤 교감은  머릿속이 멍해지면서 현기증을 느꼈다.  오래전 와이프도 그렇게 허망하게 암 선고를 받았다.  그저 소화불량 정도라 생각했었다.  2년마다 정기 검진도 꼬박꼬박 해왔었는데  그 사이에 암세포가 몸에 많이 퍼져 있었다.  왜 이렇게 미련할까.  그때도 그렇게 후회를 하지 않았나.  왜 같은 실수를  또 반복할까.  의사의 말을 알아듣는 것인지 매실은 눈곱이 낀 큰 눈을 꿈뻑꿈뻑 하며  윤교감을 바라보았다.  윤 교감은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매실에게 핀잔을 준 것이  미안해서 그런 매실의 눈을 계속 쳐다볼 수가 없었다.


초음파를 비롯해 몇 가지 검사를 마친 수의사는  매실에게  진통제를 주사해 주며  말했다

- 아버님 일단 림프종이 맞는 거 같고요.  아마 폐나 다른 장기로도 전이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게 일종의 혈액암이라 피를 타고 다니면서 전이가 되었을 수 있어요..  얘가  나이가 너무 많아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수술도 힘들 것 같고  항암 약물 치료 같은 걸 진행해야 할 것 같아요.  일단 입원치료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몇 가지 검사 결과는 이틀 정도 걸리니까  그때까지 경과를 좀 살피고  어떤 처방을 내릴지 결정해야 될 것 같아요.    일단은 고통을 좀 케어할 필요가 있어 입원을 하라는 겁니다. 

의사는 담담하게 말하고 있지만 사실  매실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냉정하고 단호히 선고하는 것으로 들렸다. 

투명 아크릴 상자 안에  들어간 매실은 계속 끙끙거리면서  윤교감을 바라보다 진정제의 효과 때문인지 이내 잠이 들어 버렸다.   윤교감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매실을 남겨두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윤교감은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매실이 없는 집은  마치 명절날 우르르 자식들이 몰려왔다가  떠난 빈집보다 더 고요하고 적막했다.  말 못 하는 짐승이라고 그렇게 옆에 두고 의지했으면서 왜 일찍 좀 신경 쓰지 못했을까.  그도 며칠 전부터 부쩍 어깨며 허리며 관절 마디마디가 아프고 저렸다. 

-아파도 싸지.  이 미련한 인간.

윤교감은 혼자서 중얼거리며 옆으로 누워  한쪽 손으로 다른 쪽 팔을 꾹꾹 주물렀다. 그러면서도 제 몸 좀 아프다고 옆에 있는 게 아파 죽는지 어떤지도 모르는 위인이 뭘 아프다고 끙끙 대고 있냐고 스스로를 책망했다.  이제 주변에 선배들이나 또래 지인들의 부음을 심심치 않게 듣고 있어 죽음이란 게 자연스럽게 가까이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했고 스스로도 초연해 있다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또 다른 이별을 앞두게 되니 마음이 복잡했다.  남은 시간이 얼마일지 모르지만  그는 매실이 잘 견디다 가 주었으면 했다.  남은 동안  많이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빨리 가서 매실을  집으로 데려와 안아주고 싶었다. 


5.


아파트 주변의 오래된 나무들은  어느새 벚꽃을   활짝 피웠다가 그 짧았던 절정의 시간을  또 다시 하나 둘 떨궈내고 있었다.   주민들의 재건축 동의가 확정되고 본격적인 재건축 조합의 발대식을 기념해 장터가 열린다고 했다. 아파트 입구에 있는 단지 내  노인정 주변에는  캐노피와 간의 탁자들이 펼쳐지고  간단한 음식들이 차려졌다.   조합원들이 나와  주민들에게 재건축 조합과 앞으로의 사업 추진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주민화합을 도모하는 행사였다.  

산책을 나가던 윤교감은  단지 앞 상가를  지나치다  가게 앞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 하염없이 떨어지는 꽃잎들을 바라보는 김여사와 마주쳤다.  윤교감은 왠지 김여사를 마주치는 게 미안했다.   그래서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데 그녀가 먼저 의자에서 일어서며  말을 걸어 왔다.    

-언제 피었나 싶었는데 뭐가 급한지 또 금새 지기 시작하네요. 

 -아  네 그러네요 . 

윤교감도  벚꽃 나무를 보고  안경을 치켜세우며  대답했다.   

 -참, 요 즈음이  생신 아니셨어요? 

-뭐 나이 먹고 생일은 요 뭐 .. 실은 저녁에 애들이 온다고 하긴 했는데 .. 

-어머, 제가 정신이 없어서..  뭐  음식이라도 해다 들릴 걸.

-아니 아니에요 매번 김치며  밑반찬이며 얻어 먹고 있는데..

 -그런 말씀 마세요.  언니 생각하면 제가 이러면 안되는데.   제가 괜히 재건축인지 뭔지 땜에 좀 심술을 부렸어요.  형부, 저 안 피해 다니셔도 되요. 사실 저도 이렇게 될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뭘. 


사실  매실이가  지난 겨울 곁을 떠나고 나니  윤교감은 혼자 지내는 것이 더 없이 적적했다.  막내 아들도 계속  권장을 하는 통에  박씨에게  재건축 찬성 의사를 비추었다.   재건축이 들어갈때까지  전세를 내놓고 그 전세금으로 일단  분담금을 마련하고   아들 내외와  살림을 합치기로 했다.  재건축에 찬성한 사실을 알고  김여사가 알고 한동안 그를 냉냉하게 대했었다.    

-저기. 저도 뭐 애들이 원하는 일이고 하다보니..

-말씀 안하셔도 돼요.  저 형부한테 서운한 거 없어요.   그냥 저도 제 마음 편하자고 괜히 여기 지키고 있는 게 무슨 면죄부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저도 둘째가 지 아빠 눈치 보느라 그랬는  저보고 같이 살자네요.  아빠가 재혼했으면 모를까  한 아들은 엄마를 모셔야 되지 않냐고.. 

-그거 정말 잘 되었네요 . 아마 모르긴 해도  재형이 아버지도 걱정하고 있을 거에요 . 


 그렇게 이혼하긴 했어도  김여사의 남편도 그렇게 모진 면만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윤교감은 언젠가 두 사람이 다시 재결합을 하리라 생각하고 바랐다.  어쩜 둘이 이혼한 것은  함께 있는 게  집을 나간 딸에 대한 기억과 죄책감을 더 가중시켰기 때문이리라.  그는 진심으로 그 상처가 아물기를 바랐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윤교감은 뒷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퇴직 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늘 반복해 온 하루의 루틴이었다.  물론 이제 그걸 함께 하던 매실이 없지만  그는 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동안은  이 산책을 계속하리라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난 해에 떨어져 썩어가는 낙엽들이 파릇한 새잎들보다  여전히 더 많이 눈에 밟혔지만  이제 겨울의 흔적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이 파릇한 색과  울긋불긋한 꽃들이 지천이 되었다. 어느새 철쭉도 한쪽에서 다음 차례는 저희들이라는 듯 작은 봉우리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엔  샛길로 가서 매실이 있는 곳에 들렸다 올 참이다.  동물 사체를 그냥 매장하는 것은 불법인지라 그는 정성들여 화장장을 치러주었다. 하지만 어디에 뿌리기도 애매하여 녀석과 자주 오던 이 산에 묻어주었다.   몇 주  녀석이 묻힌 길을 찾지 않은 사이에  크고 작은 잡풀들이 작은 봉분 위를  앞다투어 둘러 싸고 있었다.   윤교감은  풀들을 솎아 내줄까하고  쪼그려 앉아  몇가지 뽑아내다가 문득  그냥 이 자연속에 자연스럽게  묻혀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1년을 지내고 겨울 무렵이면 다시 드러나겠지.  그때 보면 왠지 더 반가울 것도 같아 그대로 두고 다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산책로로 발길을 옮겼다.  

 보통 때면  중턱 정도에 있는 쉼터까지 올라가 운동 기구 몇 개를 한 번씩 돌고 내려갔지만  오늘은 정상까지 올랐다.  산 밑으로 초록색 우레탄을 칠해 놓은 아파트 옥상들이  블럭처럼  펼쳐져 있었다.  이 성냥갑 같은 공간에 왜 그렇게 오래 살았던 걸까.  사실 별 이유가 없었다.  그에게는 이곳이 그냥 집이었다.  젊은 시절 자신의 힘으로 마련한 집.  집 값이 올라 좋았던 적도 있고  내려서 서운했던 적도 있지만 그는 고지식하게 그걸 투자의 수단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윤교감 자신의 부모님도 그냥 고향에 뿌리를 내리고 한 집에서 내내 살다 가셨다.  그에겐 그냥 집이란 그런 것이었다.   게을렀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냥 한 번 살기 시작하고  정이 들었고  이사를 하려 하면 그때마다 어떤 일들이 발목을 잡았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후회도 없지만 이젠 별로 아쉬움도 남지도 않는다. 이 집이 의미 있는 것은  이 곳에 가족들이 있어서였다.  매실이 죽고 나서야 그는  자식들의 출가 이후 곁을 주지 않은 것도 어쩌면  자신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서 어린아이가 된다고 했던가. 제 어미가 그렇게 가고 혼자된 아비를 위한다고 1년 정도  수시로  드나들던  자식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발길이 뜸해졌을 때부터 그는 몹시 서운해했었다. 하지만 바쁘게 지낼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도 싫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자식들이 방문하려하면  핑계를 대고 피했던 적도 많았다.   이제는 그냥 서운하면 서운한대로  속이 보이면 보이는 대로  막내 녀석과  부비고 살아보리라 생각했다.   둘째 딸 아이가 그리우면  그리운대로  아들 녀석 눈치보지 말고 집에 오라해서 맛있는 것도 사먹여  보내야지.  내 딸래미 고생시키지 말라고 김서방한테 술한잔 얻어먹으며  싫은 소리도 좀 해야지.  윤교감은 그렇게 다짐을 해보지만 쉽게 자신이 바뀌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혼자 궁상 떨 일 뭐 있겠는가.  새 집에 살면 깨끗해서 좋을 거고. 그때까지 못 산대도 미련 없고,  이제 좀 손자 놈 재롱보며 할애비 흉내도 내보면 되는 것인데. 

윤교감은  한껏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산을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봄은 이제 완연해서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 끝도 따스하게 고개를  숙이며 그의 목덜미를 간지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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