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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리 Sep 17. 2024

큰 아이의 운동강박과 침묵

정리해서 말하려 했어요.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큰 아이.

9시 40분이 되어서야 저녁상을 차리고 아이가 밥을 먹는다. 식이장애가 있는 나의 아픈 아이.

밥 한 숟가락의 차이를 크게 느끼는 아이라 매일 한 숟가락으로 싸운다. 더 얹어주면 시위하듯 반찬 없이 밥만 한 그릇을 비운다. 그리고는 말없이 양치만 하고 제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저녁밥을 먹고 나면 후식으로 좋아하는 빵을 한 조각 먹는다. 먹고 나서가 문제다. 밥까지는 자연스러운 소화가 가능한데 빵을 먹고 나면 심리적인 소화를 못 시키는 듯하다. 스텝퍼 위에 올라가 땀이 줄줄 흐를 때까지 칼로리를 소모시킨다.


한 달 전 작은아이 소아과 진료 가야 하는 길에 큰 아이가 같이 따라간 적이 있었다.

키, 몸무게 측정기 위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더니

아무 말을 안 한다. 난 순간 측정기에 찍혀있던 숫자를 보고 믿기지가 않았다.


"다시 올라가서 쟤어봐."


"엄마, 저거 측정기 고장 난 거예요. 제가 알아요.

나 살 안 빠졌어요. 분명히 살이 쪘어요. 그런데

저 기계도, 우리 집 체중계도 고장이 나서 그래요"


"저 기계는 수평을 맞춰야 하는 체중계가 아니라 전자저울이야. 틀릴 수가 없어. 다른 아이들도 저 체중계로 키, 몸무게 측정해서 선생님께 알려드리잖아. 그럼 다 엉터리로 약조제 하게 되고

약용량이 안 맞으면 큰일 날 수도 있어"


"......"


156.7cm 일 년 동안 키가 전혀 자라지 않았다.

34kg. 일 년 동안 3 킬로그램이 더 빠졌다.


"엄마가 본 숫자가 맞아? 내가 봐도 살이 더 빠져서 온통 뼈 밖에 안 보이는데 너만 네가 살이 쪘을 거라고, 체중계가 잘못된 거다라고만 말을 하고 있으니 엄마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엄마, 죄송해요"


내 느낌이 틀리지 않다면

나의 아픈 아이는 살이 빠져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말로는 죄송하다 하고 있지만

행동과 표정이 밝고 즐거워 보이니 말이다.

이건 나의 착각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11시가 되어서야 큰 아이가 먹은 설거지까지

끝내고 잠이 들었다.

잠들기 전 큰 아이는 덜어낸 밥 한 숟가락 대신

빵하나를 먹고 소화가 안된다며 스텝퍼 30분만 하겠다고 했다.

먹은 걸 저장해도 모자란데 소화를 핑계로 또 칼로리를 빼려 한다. 심리적인 안정도 무시할 수 없기에 그러라고 했다.

자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 좀 내려줘. 나 좀 내려가게 해 줘. 나 좀 내려줘.


어디서 들리는 소리지? 누구~


자세히 들어보니 우리 집 작은방에서 들려온다.

깜짝 놀라서 작은방으로 가보았다.

큰 아이가 땀에 흠뻑 젖어서 내려오지도 못하고

계속 스텁퍼를 밟으며 우는소리였다.


"엄마, 나 좀 내려가게 해 줘. 30분이 지났는데도 못 멈추겠어. 못 내려가겠어 엄마. 나 너무 힘들어"


눈물이 났다. 나의 아픈 큰아이.

"너를 어쩌면 좋으니. 엄마에게도 누군가 방법을 알려주면 좋겠어. 네가 강박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엄마는 뭐든 다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이의 손을 잡고 내려주었다.

한참을 안아주었다.

함께 울었다.

아이를 위해 스텝퍼를 산 게 아니라 아이를 위해

사면 안 되는 거였구나라고.

 아픈 아이가 아니라 나를 탓했다.


"많이 힘들었지? 이젠 이거 하지 말자.

엄마가 우리 딸 아픈 거 알면서 이걸 산 게 실수였어.

더우니까 씻고 나오렴. 그럼 기분도 좋아질 거야.

오늘은 공부 그만하고 씻고 바로 자자. 응?"


큰 아이가 침대로 올라가 잠이 드는 것을 보고

내 방으로 갈 수 있었다.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스텝퍼에 조립나사를  풀고 사용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고 있었다.

 아이가 잠에서 깨어 나오더니 하는 말,

'엄마, 나 그래도 저거 없어서 운동 못한다고 생각하면 불안해질 것 같아요. 그냥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면 안 돼요? 제 조절해서 할 수 있어요."

또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한 번 더 같은 일이 반복되면 중고마켓에 내어놓을 테니 알고 있으라고 했다.


큰 아이는 늦은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빵 한 조각을 먹은 

15분만 스텝퍼 하기로 하고 운동을 시작했다.

평소보다 적게 먹은 것 같아 10분만 하고 내려오라고 했더니 15분 약속하고 시작했으니 15분 하고 내려오겠다고 한다.

땀으로 다 칼로리 배출하면 안 되니까 내려오라고 했더니 15분 약속했으니까 채우고 내려갈게요라며 고집을 피운다.

10분만 하고 내려와서 엄마 하는 일 도와주면서 움직이면 되지 않겠니라고 몇 번을 말해도 고집을 굽히지 않는다. 말하다 보니 화를 내면서 내 얘기만 계속 반복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약속한 15분이 되어 스텝퍼에서 내려온 아이는 화가 난듯한 표정으로 욕실로 가서 씻고 나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잠가 버린다.

더 이상의 대화를 원하는 것 같지 않아 나도 다른 노력은 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도 아무 말하지 않는다.

아침으로 먹는 간단한 밥이든 빵이든 손도 데지 않는다.

아침 먹자. 아침 먹자. 간단히라도 먹자. 반복하기를 여러 번. 여전히 묵묵부답.

그 기분으로 출근과 등교를 했다.

저녁에 학원 마치고 온 큰 아이.

또 말없이 앉아서 차려준 밥만 먹는다.

설거지까지 끝내고 내방으로 들어가자 큰 아이가 따라 들어와서 "엄마, 대화 좀 해요"라고 한다.

어제는 약속한 시간만큼 운동하고 내려오려 했는데 엄마가 계속 엄마말만 하니까 화가 나서 얘기하지 않았고 생각을 정리해서 말하려다 하루가 지났다고.(난 또 들어주기만 했어야 했는지)

나의 말을 시작했다.

엄마가 늘 말하잖니.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이 있을 땐 묵혀서 하지 말고 타이밍을 맞춰서 해야 한다고. 하루가 지나면 그 감정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 물론 상처받은 사람은 두고두고 담아두겠지만 그건 스스로를 위해서도 힘들고 괴로운 일이라는 것을.


나의 말이 길어지면

 아이를 더 주눅 들게 할 것 같아

안아서 토닥여 주 늘 그랬듯 사랑해로 마무리했지만 앞으로 아이와 함께 가야 할 길이 짐작도 할 수 없는  버거운 일로만 다가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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