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 든 달에 조심하세요.
꽃샘 추위가 끝나가고 벚꽃잎이 분분이 날리는 날이면 몸살을 앓다가 조금씩 기운을 차리는 일이 매년 연례행사이다. 어렸을 때도 장티푸스로 호되게 고생하다가 생일달이 지나며 조금씩 회복된 기억이 있다. 그를 때면 엄마는 생일 든 달에는 조심해야 된다고 늘 말씀하셨다.
어려서는 봄이 참 신기했다. 논두렁 작은 도랑에 물이 흐르고 여기저기 얼어 있는 얼음 사이로 버들강아지가 피어나는 기억은 내 봄이란 단어에 잠재의식처럼 각인되어있다. 봄의 싸한 추위 속의 생명체, 그렇지만 그 추위로 나는 매년 몸살을 앓곤 했었다. 그 때쯤이 나의 생일이 든 달이다.
1999년도에 사망한 큰 오빠는 음력 6월이 생일인데 생일을 3일 앞두고 쓰러져 6개월의 투병 끝에 사망했었다. 투병 중 쓰러졌을 때 죽도록 나 두지 살려놨다고 원망하는 날이 많았었다.
또 우리 엄마는 2001년 가을 음력 9월이 생신인데 갑자기 혈압으로 돌아가시게 되는데 그 달 보름에 돌아가시고 말았다. 보름에 죽는 사람은 마음씨가 고운 사람이라고 했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아버지는 2018년 음력 12월에 돌아가셨는데 설날이 되기 며칠 전이였다. 아버지 생신은 12월 11일이셨다. 정말 추운 날 돌아가셨는데 그날 얼마나 추웠는지 포클레인으로 땅을 파는 것이 힘들어 본붕을 만드는데 상당히 고생을 했다. 그래서 나는 돌아가시는 날도 본인의 성격을 닮는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아버지는 2022년 음력 2월에 돌아가셨다. 생신이 2월 3일 이셨다.
뭐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내가 조사해 본 것은 아니다. 나와 가까웠던 몇 명의 사람들이 생일 달을 못 넘기시는 것을 보고, 내가 죽는 날도 조심스럽게 유추해 본다. 생일이 음력 3월이고 조금 착하니(? 웃지 마셔요ㅋㅋ) 나의 사망연도는 모르겠고 날짜는 음력 3월 15일 날이 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유추해 본다.
나의 지향하는 삶은 한그루 벚나무처럼 살다가 가는 것이다. 봄이면 벚꽃 휘날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주고, 여름이면 무더위를 제 몸으로 막아 주며, 가을이면 아름다운 단풍으로 , 겨울이면 따뜻한 땔감이 되니 한그루 벚나무처럼 살다 가고 싶다는 것은 나의 과한 욕심일 것이다. 그래도 욕심부리는 건 내 맘이지 않은가. 더 욕심을 부려 죽는 날은 벚꽃 질때면 좋겠다.
벚꽃 떨어질 때 죽으면 얼마나 아름답고 가련한가. 나는 죽으면 벚나무 아래 수목장을 해달라고 애들한테 입버릇처럼 말한다. 남편한테도 신신 당부 해서 가족 묘지터에 벚나무 묘목도 몇 그루 심어뒀다. 그럼 내 제삿날 혹시라도 애들이 찾아온다면 벚꽃 아래서 즐기다 갈 것이다.
이것이 나의 작은 (아니, 너무나 커서 욕심쟁이인 나) 소망이자 평생 내 삶의 목표이다.
묘비명은 "벚나무처럼 살다가 벚나무 아래 잠들다"로 정해 둔다.
분분히 떨어지는 벚꽃비는 우리 아이들 옷은 젖시지 않지만 엄마를 그리워 하는 맘은 적셔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