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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서사

잃어버린 후에 깨달음...

by giant mom Mar 13. 2025

     요즘 재밌게 읽고 있는 책이 있다. 서구 역사학자인 존 다우어(John W. Dower)가 쓴 <패배를 껴안고>(Embracing Defeat)이다. 이 저서는 제2차 세계 대전 후 일본과 일본인에 관한 서사를 사적이며 공적인 자료들을 통하여 풀어냄으로써, 전쟁을 치른 일본의 군국주의와 초국가주의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감동스러울 구석이 전혀 없는 이 책이 나에겐 눈물 나게 짠하게 다가왔다. 

     

     신랑의 오래된 거짓말로 인한 사건 사고 이후, 나에게 펼쳐진 모든 정황들이 2차 세계 대전 후 패전국인 된 일본의 이미지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존 다우어는 이 책을 집필할 때 이렇게  말한다. "패자의 눈을 통해 세계를 바라본다면 배울 것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단지 비참함과 방향, 상실, 냉소, 분노 같은 감정뿐만 아니라 희망과 저항과 비전, 그리고 무엇보다도 꿈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현실은 내가 매일매일 마주하는 '순간'이다. 이 순간 때문에 '새 하늘과 새 땅'을 꿈꾸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런데 진정한 패자의 시선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에릭> 영드의 한 장면<에릭> 영드의 한 장면


     미국이 패전국인 일본에 들어가 점령할 당시, 전에 없었던 문화들이 다양한 인식과 방식으로 생겨난다. 이 책에서는 일본인들의 서사 중 하나로 매춘과 암시장을 언급한다. 매춘업은 과거보다 훨씬 고도화된 방식으로 재현되는데, 미군 병사만 상대하는 매춘부를 '판판'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판판'들은 전후의 선구적인 물질 만능주의와 소비자의 전형이었다.(162) 보통 사람들 중에서 '판판'만큼 대담하게 정복자의 보물에 손을 댈 수 있는 이들은 달리 없어 보였다는 점이다. 일본인들이 패전국이 되지 않았다면 그들만의 독특한 서구화의 개혁은 실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매춘은 일본의 서구화 개혁에 있어 극히 일부분이지만 말이다. 


     내가 패자가 되지 않았다면 무엇을 시도하고 노력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고민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학생들 혹은 청중들 앞에서 강의를 하며 우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학생들의 에세이를 보며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패전국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엄청난 고난과 시대의 비정함을 내 삶의 문제와  비교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것 때문에 잃어버리게 된 것일까. 경험하지 못한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기 위함일까. 오히려 일련의 이런 일들이 나의 삶을 더욱더 무겁게 하며 진정성 있게 하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함일까. <에릭>에서 아버지 빈센트는 아들을 잃은 후에 형편없고 무모하고 거짓투성이인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난 어떠한가. 난 일본의 판판들과 다를 봐가 있을까. 아니면 일본의 판판들이 물질 만능주의와 소비자의 전형이었다고 한 것처럼, 내 가슴속 깊이 뿌리 박혀있었던 속물성과 소비자의 근성을 깨우기 위해 잃어버리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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