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랑 별 보러 가자

오늘 그리고 언제나 빛날 밤에

by 박애주





아빠는 내가 글을 쓸 줄 알았다고 했다. 얼마 전 아빠의 생일에 친구들이 열 명도 넘게 모인 자리에서 나를 옆자리에 딱 앉혀놓고 그렇게 말했다. 아마 그동안 백일장에서 받아온 상장이 높은 가점을 받았나 보다. 그렇지만 학교 도서관에서 제일 책을 많이 읽던 그 나이의 내가 생각하기에도, 책을 편식하는 지금의 내가 생각해도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까지 도합 12년씩이나 걸어 볼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글을 더 쓰지 않았다. 계속 읽었을 뿐이다.



아빠는 나보다 책을 많이 읽고 그만큼 많이 썼다. 하지만,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친 우리 아빠도 모르는 게 있다. 엄마 아빠한테는 아직 비밀이지만 내가 다시 글을 쓰고 있다는 거다. 이곳에서 시작한 모든 덕질 에세이는 다 최애와 아빠 때문이다. 여전히 최애는 티비에서 만날 수 있고, 아빠는 브리태니커와 한국민족대백과사전, 쿰쿰하고 눅눅한 종이 냄새로 가득한 서재에서 윙윙 소리 나는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다.











우리 아빠의 최애는 별이다. 우리 가족은 별 덕후의 사랑을 따라 방학이 되면 별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서울 근교와 강원도, 멀리 남도와 바다 건너 외국까지. 계절마다 여행지가 바뀌었다. 내가 콘서트를 뛸 때마다 여러 아이템을 챙기는 것처럼 아빠는 별을 보러 갈 때 전문가용 고배율 망원경, 고광도 랜턴을 먼저 챙길 정도로 이 덕질에 진심이었다. 그때 기억이 4K, 8K 직캠만큼 선명했으면 좋겠지만, 지금 나는 엄마 아빠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기댈 뿐이다.



별나라 여행을 할 땐 언제나 그 동네의 민박에 묵었다. 불을 끄면 들리는 개구리, 풀벌레 소리와 계곡 물소리에 잠 못 이루는 나와 동생에게 아빠는 모로 누워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느 별나라 공주의 모험 이야기였다. 그 모험은 주로 별자리 이야기였지만, 길에서 만난 고양이와 강아지, 방구 뿡쟁이 뽕나무도 있었고 맨날 양치하고 일찍 자라고 하는 마녀도 나왔다. 머나먼 우주를 건너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천 개의 별을 여행해야 하는 공주의 이야기는 아마 바리데기 설화나 세헤라자데의 천일야화를 데려왔었나 보다.











추운 날에 별을 보러 가기 전에 늘 경옥고와 쌍화차를 먹었는데, 쓴 걸 꾹 참고 삼키면 보온병에 든 밍밍한 핫초코를 마실 수 있었다. 계절별로 만나는 수많은 별자리 중에서 길잡이별 북극성은 언제나 머리 꼭대기에서 빛났고, 별 일곱 개 북두칠성과 별 세 개 콕콕콕 오리온자리의 허리띠를 이어 보면 이쪽에도 있고 저쪽에도 있었다. 항상 아빠가 손으로 짚어줘야 제대로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별을 보는 것도 재밌었지만, 밤까지 아빠의 이야기를 듣는 걸 더 좋아했다.



그 이후로 한참이 지나 아빠에게 고배율 망원경보다 성능이 좋은 핸드폰을 사드렸다. 올해 나온 핸드폰 중에 가장 끝내주는, 달의 표면도 찍을 수 있다는 울트라 캡숑 수수수-수퍼노바 핸드폰이다. 아빠는 처음엔 낯설어하더니 곧 우리 가족 톡방에 계속 한쪽 귀퉁이가 가려진 밤하늘 사진을 보냈다. 가로등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빠의 검지손가락이 렌즈를 가린 것이었다. 몇 번을 말했는데도 여전한 걸 보면 이건 우리 아빠 사진의 시그니처로 봐야겠다.











언젠가 아빠의 수업을 들었다. 그날 아빠가 들려준 건 당연히 별 이야기. 동양 최고最古의 천문대가 경주에 생기기 전 별을 관측하던 옛날이야기부터 오늘의 우주 망원경 얘기까지. 아빠의 눈이 자꾸 반짝거렸다. 최근에 다 같이 다녀온 가족 여행에서 우리는 그 나라의 밤하늘을 보았다. 아무리 노출을 늘리고 조절을 해도 아이폰으로 찍는 하늘은 다 가짜 하늘이라서 눈에 많이 담았다. 그 대신 아빠를 찍었다. 아빠는 별을 볼 때 당신이 가장 빛난다는 것을 알까.



저 친구가 노래도 연기도 참 잘해. 그 옛날 아빠가 최애가 출연한 드라마를 보고 말했다. 이미 남몰래 싹튼 마음에 아빠가 인증 도장을 찍어준 셈이다. 그다음부터 이 사랑이 무럭무럭 자라는 데에는 거침이 하나도 없었다. 이렇게 나는 늘 아빠의 궤도를 따라가는 것 같다. 우리는 지금 다른 별을 좋아하지만, 덕질을 하는 나도 우리 아빠만큼 빛나면 좋겠다.



요즘 내가 무대 위의 다른 별들을 좇느라 정신이 없던 것 같아서, 그 아이들의 손만 잡아주고 싶어 했던 것 같아서.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엄마랑만 논 것 같아서. 올해 마지막 밤에는 방송국에 가지 않고 아빠와 별을 보러 가기로 했다. 다행히 언제나처럼 밤하늘 별자리도 여전하고, 그때 아빠가 보여준 세상과 그때 잡아줬던 손이 여전히 내게 크다.




별이 빛나는 밤에 - 장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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