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수능을 보고 나름 순서에 맞게 대학교에 입학을 하고 학교생활을 막 시작했는데 군대를 가야 된다는 결심을 해야 했다. 그때까지 나는 군에 대한 관심이나 생각, 지식 등 아무것도 모르는 아직 어린 대학 새내기였다. 그래도 학교를 다니기 위해서 더 많은 아르바이트를 했다.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를 한 걸 전체적으로 생각해 보면 예식장 알바, 막노동, 택배, 골프장 해저드에서 물에 빠진 공 줍기(스크버다이빙 장비착용), 스키장 샵, 전단지, 스파게티 만드는 일, 수영강사 등 안 해본 일이 많이 없었던 것 같다.
막노동을 즐겨하던 어느 하루는 내가 일이 아닌 인생을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일하면서 평소에 좋게 보고 잘 따르고 싶었던 어느 목수 아저씨가 나에게 호통을 치면서 얘기를 해주셨다. 나는 넉살이 좋은 편이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하루하루 인력소에 들려서 일을 받아오면 소개비 10프로를 내는 게 아까워서 공사 인력을 담당하는 부장님인가 실장님인가 하는 젊은 형님에게 잘 보여서 직접 공사장으로 출근을 했었다. 그때 당시 소개비 7000원을 더 주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고정적으로 일을 하게 되다 보니 목수 아저씨께서 공사판에 얼씬도 하지 말고 공부하고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그분이 왜 나에게 화를 내면서 저렇게 간섭을 하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목수아저씨께 왜 그런 조언을 나에게 해주시는지 계속해서 물어봤었다.
아저씨께서는 나와 같이 어린 시절에 돈이 필요해서 계속 공사장을 찾았었는데 젊은 때 배운 게 공사장 일이라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다 보니 공사장 목수일이 결국 직업이 되었다고 했다. 내가 어린 나이에 자꾸 공사판을 찾고 어른들과 친해지고 하다 보니 걱정이 되셨다고 한다. 생각보다 따뜻한 분이었다. 그때 나는 이미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신검을 받고 군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우연한 계기로 장교 모집 전단지를 봤고 친하게 지내던 선배가 본인도 장교 모집에 합격해서 군대를 늦게 간다고 해보라고 해서 나도 육군장교 모집에 지원을 했었다. 지원하게 된 큰 이유로는 학비 지원이었다. 7년만 근무하면 대학 4년 수업료를 지원받을 수 있는 내용에 바로 지원을 했었다. 그때는 장교가 뭔지 부사관이 뭔지 구별을 못하던 시절이었다. 단지 수업료를 받기 위해 지원했었다.
그래서 목수아저씨한테 군대에 갈 거라고 직업군인 합격해서 4학년 마치고 바로 가기 때문에 그전에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었다. 너무 고마웠다. 딱히 정을 나눈 사이도 아닌데 진심으로 걱정을 해주시는 그 아저씨의 마음이 잔잔한 울림이 되었었기 때문이다. 합격 발표도 나지 않았는데 나는 합격을 한 것처럼 대답을 했었다. 그때는 단지 지원서만 작성한 상태였다.
또 한 번은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나보다 4~5살 정도 많아 보이는 젊은 분이 일을 하면서 말은 안 하고 이상한 소리로 소리를 지르면서 일을 시켰었다. 나는 아르바이트였고 그분은 정직원이었다. 그래서 나한테 텃세를 부리는 건가 뭐가 저렇게 화를 내면서 일을 해야 되는 건지 이해를 못 했었다. 겨울이었는데 새참시간에 따뜻한 어묵국물을 받아먹으면서 나는 찾아가서 물어봤다. 도대체 내가 뭐를 어떻게 잘못했길래 말은 안 하고 그렇게 소리를 치는지.
그런데 내가 가서 찾아 물었을 때 나는 작은 충격이었다. 그 젊은 분은 상당히 일을 열심히 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시는 직원분인데 귀가 안 들리고 말을 못 한다고 했다. 손으로 설명하고 눈빛으로 말을 해주는데 나는 얼굴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뭉클했다. 저렇게 열심히 사는 분들이 계시다는 걸 현장에서 느끼면서 내가 다칠까 봐 본인이 얼마나 큰 소리를 내는지 듣지 못하니 내가 들으라고 더 크게 소리를 내주셨던 것이다. 상당히 많이 미안했다. 또 고마웠다. 나는 넉넉지 않은 형편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가슴속으로는 불만이 있었고 불편했었고 하기 싫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저렇게 들리지도 않고 표현도 못하는 분들도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걸 보고 심심한 충격을 받았었다. 그리고 그분이 핸드폰에 문자로 미안하다고 잘 따라와 줘서 고맙다고 쓰는 걸 보고 눈물이 핑 돌정도로 감사함을 느끼고 지금까지도 기 눈빛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고단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수업료를 내고 배울 수 없는 부분들을 많이 배웠다.
그리고 나는 예비장교를 뽑는 시험에 응시하면서 더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되었었다. 필기시험을 보고 체력검정을 할 때는 엄마의 환청소리를 들으면서 오래 달리기를 했었던 기억이 있다. 면접을 보면서도 말을 하는 걸 자신있었했기 때문에 전혀 어려움 없이 시험을 봤었다. 그리고 시험에 합격을 했었다. 내 직업은 그 뒤로 군인이 되었다.
* 여러사람들을 보며 살아가는 방식을 배웠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없었다.
내가 잘하는 것도 잘할수 있는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평범함을 찾으려면 실력도 부족함 없이 평범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