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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이렇게 일상을 벗어나 달려보자.

by 정유미 윰글 Jan 31. 2025

아버지 산소에 왔다. 설 명절에 아버지를 뵈러 오는 길이 쉽지 않지만 이번에는 가능했다. 부산에서 승용차로 1시간 정도 달리면 이곳에 도착한다. 산소 입구 가게에서 국화 한 송이와 소주 두 병을 샀다. 오늘은 엄마와 친정 오빠가 함께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2년. 처음 10년 정도는 아버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났는데, 이제는 아버지를 만나러 오는 게 즐겁다. 성묘를 핑계로 가족들 얼굴도 보고 어린 시절도 돌아볼 수 있어서다. 이것이 명절의 긍정적 역할이라고 본다.

아버지 산소에서 '평산 책방'이 가깝다. 언젠가 한 번은 가봐야지 하고 미뤄두었던 양산의 서점이다. 나이 들어 차리고 싶은 가게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카페고, 다른 하나는 서점이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직접 차린 서점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나처럼 책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어릴 적부터 해왔다. 평산 책방 도 그런 분이 만든 곳이다.


산소에서 내려와 고속도로 진입로를 지나쳐 10분 정도를 더 달렸다. 전형적인 시골길이었다. 지나는 차도, 사람도 드물었다. 달려서 들어선 마을은 평화로웠고, 고개를 돌리자 15도 정도 경사의 오르막길이 보였다. 오른쪽에는 시멘트 바닥으로 잘 정돈된 주차장이 있었다. 차량 15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었고, 정장 차림의 남자 세 명 정도가 지나는 차들에게 필요한 안내를 하고 있었다.


"주차는 어디에 하면 되죠?"

온화한 미소로 안내해 주시는 분께 인사를 하고 길가에 차를 댔다. 주차 걱정 없이 차를 세우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우리 셋은 5분 정도 언덕길을 올랐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는데 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평산 책방'이 왼쪽에 보였다. 도착했을 때 50여 명의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책방 앞에는 흰색 플라스틱 원형 테이블과 의자 세트가 놓여 있었고, 포토존도 마련되어 있었다. 요즘 유명한 장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테이블 세트를 지나니 서점이 눈앞에 있었다. 입구에서는 한 여자분이 출입 인원을 조절하고 있었다. 작은 책방에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인원이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인 듯했다. 가정집을 개조한 듯한 구조였는데, 첫인상은 밝다는 것이다. 이게 마음에 들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책들과 그곳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미소가 느껴졌다.

서점은 일반 가정집 거실만 한 크기였다. 계산대가 서점을 들어서서 왼쪽 구석에 있었고, 가운데에는 두세 개의 매대가 있었다. 그 위에는 베스트셀러 위주의 책들이 잘 진열되어 있었다.


서점 안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는데 처음에는 무슨 일인가 싶었다. 살펴보니 전 대통령님이 방문객들과 사진을 찍어주고 계셨다. 마치 연예인을 보는 듯했다. TV에서만 보던 그분을 실제로 뵈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건강해 보이시는 모습에 안심이 되었다.

서점 안은 사람들로 어깨가 닿을 정도로 붐볐다. 책을 구입하는 분도 있었고, 사진을 찍고 둘러보다 나가시는 분들도 있었다. 엄마와 오빠는 미리 나가 마당에서 시간을 보내셨고, 나는 책방 옆 작은 카페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주문했다. 조용하고 깨끗한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다. 커피를 사 나오는데 엄마가 포토존에 앉아 계셨다. 옆자리 아저씨께 부탁드려 우리 셋은 이 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지난 3박 4일 동안 명절임에도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일부러 친정집에 일찍 가지 않고 책과 글쓰기에 빠져 있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도 즐거웠다. 이런 휴가를 마치고 어제는 아버지 차례상에 절을 했다. 명절에 함께하기 힘든 친정 식구들과 식사와 설거지를 했다. 오늘 아침 9시에 집을 나와 산소에서 아버지를 뵙고, 평산 책방에서 좋아하는 책도 만났다. 따스한 햇볕이 좋았고, 책방 앞에 제복을 입고 서 있는 두 젊은 남자들에게 가벼운 인사도 건넸다. 이런 평범한 시간들이 행복하게 다가왔다. 내가 이렇게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다면, 나보다 더 행복해하실 사람을 떠올렸다.


왜 이렇게 편안할까.

평산 책방을 나와 왼쪽 아래로 내려가니 가정집을 개조한 듯한 칼국숫집이 있었다. 잔치국수 두 그릇을 시켜 셋이서 나눠 먹었다. 진하게 우려낸 멸치 육수가 입맛을 돋우었고, 꼬들꼬들한 국수가 입안에서 톡톡 터졌다.


"국수가 너무 맛있네요."

"네, 감사합니다."


친정 동생 같은 편안한 얼굴의 사장님이 건네주신 다정한 인사말이 차로 걸어가는 내내 귓가에 맴돌았다. 오랜만에 만난 시골 마을 사람들의 정겨움이려나. 그 따뜻함에 기대고 싶었다. 잠시 들른 이 책방과 칼국숫집, 그리고 설날에 뵙는 아버지까지. 오늘 오전은 나를 돌아보는 시간 같았다. 일상에 지친 내 마음에 따뜻한 치유제를 더했다.


가끔은 이렇게 일상을 벗어나 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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