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에세이
송별식.
매년 2월이면 익숙하게 들려오는 말이다. 인사 이동 시기가 되면 환영회와 함께 떠오르는 단어다.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날 이들과 시작하는 출발점은 설렘 그 자체다. 하지만 이 헤어짐은 누군가의 가슴에 작은 구멍 하나를 만드는 일이다. 그 허전함은 다른 인연으로 채워지지만, 남은 빈자리는 지난 시간을 함께했던 이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메워진다. 나는 올해도 누군가와 헤어질 준비를 한다. 다행인 것은 이 이별이 단순히 공간적 이동에 그친다는 것이다. 가슴속에 담은 사람들과의 정신적 이별은 없다. 그들은 여전히 내 인생을 관통하는 소통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학교를 옮기면 오랫동안 근무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처음 대면하는 이들과 마주하게 된다. 낯선 건물, 교무실, 교실에서 다른 아이들과 또다른 1년을 시작한다. 이번에 옮기는 학교는 8년 전에 근무했던 곳이다. 오늘은 그곳에 첫인사를 드리러 가는 날이다. 물론 학교는 그 형태만 유지할 뿐, 구성원은 8년 사이에 완전히 바뀌었다.
지금 근무하는 학교에 방문한 후배가 태워다주는 차를 타고 30분을 달리니 전출 예정인 학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당시 아이들과 함께했던 운동장 풍경, 오케스트라 공연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악기를 강당으로 옮기고 방과 후 선생님들과 연주회를 준비하던 시간들, 인근 학교 음악 동아리와 합동 공연을 했던 추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익숙함이란 가슴 깊은 곳에서 피어나는 편안함 그 자체다.
교문 앞 학교 지킴이분께 인사드리고 중앙 현관문을 지나 계단을 올랐다. 지나가는 학생에게 교무실 위치를 물으니 미소와 함께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준다. 2층 교무실로 향해 문을 열자 이미 도착한 전입 예정 교사들이 업무와 학년 희망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테이블 옆에 서계신 교감 선생님은 신청서 작성 시 주의사항과 학교 상황을 설명 중이었다. 공손히 인사드리고 앉자 나에게도 같은 서류를 건네주셨다. 이제 이곳에서의 다른 시작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작별 인사.
어제는 현재 근무하는 학교의 송별회가 있었다. 작년 첫 회식을 했던 바로 그 식당이었고, 1년여 만에 다시 이곳에서 송별회를 하게 되었다. 지난 1년은 다채로운 시간으로 채워졌다. 좋은 일도, 힘든 일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괜찮은 마무리였다. 또 다른 출발에 설레기도 하다. 삶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아 아쉽지만, 그래서 더 큰 기대를 품게 된다. 알던 사람들이 다른 의미로 정리되고, 주변 상황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이 과정은 서로에게 앞으로 어떤 의미로 남을지 결정하는 중요한 시간이다.
진심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내게 어려운 과제다. 어릴 적엔 이런 내 모습이 '멋져 보인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순전히 어린 시절의 착각이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내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는 때가 많아졌고, 진정성을 담아 말로 표현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연습했다. 이런 성장의 과정은 매일 조금씩 반복되었다.
2월 말로 명예퇴임을 앞둔 선생님이 동학년에 계셔서 오늘의 송별식은 퇴임식을 겸하고 있었다. 우리 학년은 정성스럽게 행사를 준비했다. 정해진 회식 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해 식당에 현수막을 걸고 풍선으로 장식하며 퇴임식을 세심하게 준비했다. 처음엔 "이런 것까지 할 필요 있나" 며 손사레를 치던 부장님도 막상 퇴임식에서는 후배들의 진행에 행복한 미소를 보이셨다. 이런 자리를 준비하고 함께할 수 있어 뿌듯했다. 나 역시 5, 6년 후면 이런 자리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밥과 적당한 술이 어우러진 자리는 참석자들에게 편안함을 선사한다. 평소에는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동료들과도 술잔을 기울이며 지난 이야기를 나누고 앞으로의 계획을 공유했다. 진행을 맡은 선생님의 재치 있는 멘트에 웃음꽃이 피어났고, 그간의 아쉬움은 가슴 한켠에서 뭉클함으로 마무리되었다. 세월을 함께한다는 건 이렇게 소중한 추억을 나누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특별함.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다. 두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인연이 스쳐 지나갔다.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도 꽤 많지만, 진정으로 서로의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이는 소수다. 이 특별한 인연들은 세월이 흐르며 그 깊이를 더해간다. 각자가 나에게 주는 의미와 그 깊이는 다르다. 나는 이렇게 나와 맞는 이들과 진심을 나눈다.
학창 시절에는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깊은 정을 나누는 사람의 수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숫자보다는 서로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지가 진정으로 중요하다. 내가 그들에게 얼마나 진실된 위로가 될 수 있는지, 그들을 향한 내 마음의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가 더욱 소중하다.
그중에서도 어렵게 선택한 관계라면 그건 더욱 특별한 인연으로 자리 잡는다. 만약 물리적 거리가 필요하다면 진심의 깊이와는 별개로 각자에게 적절한 위치를 선정한다.
이제는 모든 선택의 기준이 오직 '나'일 수만은 없는 나이다. 때로는 상대방을 위해 내 욕심을 내려놓을 줄도 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기도 하고, 모르는 게 오히려 편안할 때도 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편안함을 주는 사람, 그런 이를 만나는 건 큰 행운이다.
어쩌면 상대의 믿음을 확인하기보다는 내가 그를 '믿어줄 거야'라는 소신이 더 중요할 것이다. 그래서 함께 있고 싶어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때로는 거리를 둬야 할 때 일부러 한 걸음 더 다가선다. 필요할 땐 솔직하게 진정성을 전하고, 그만큼 때로는 그의 진심도 듣고 싶다. 어렵게 말을 꺼낸 후 상대가 편안해 보일 때면 내 가슴도 따뜻해진다.
각자의 자리에서 성장해가는 모습. 이것 또한 매력적이다. 매 순간, 매년 누군가와 헤어지지만, 그 시간을 기대와 설렘으로 채워가야겠다. 그 대상이 한 명이든 여러 사람이든.
마음의 온도를 섬세하게 조절해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