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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꺼지지 않는 불꽃

첫 번째 이야기  10-1 Rain

by 운담 유영준 Feb 26. 2025




“아야, 에이 씨팔,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홍 회장 사무실에서 받은 서류를 살펴보다 종이 날에 손을 베였다. 에이포용지로 인쇄된 종이의 끝은 날카로웠다. 너무 집중한 탓일까. 종이 한 장을 넘기는 순간 오른손 약지에 서늘한 느낌이 전해졌다.

그리고 찌릿 전기가 통하듯 통증이 밀려왔다. 약지가락을 살펴봤다. 괜찮은 듯 했지만 자세히 보니 살짝 베인 것 같다. 곧 괜찮아지겠지, 생각하며 다음 장을 넘기는 순간 서류 귀퉁이에 붉은 물방울이 보였다. 

‘뭐지?’ 생각하며 자연스레 약손가락이 입속으로 향했다. 순간 벌어진 일이었다. 미지근하고 찝찔한 맛이 미각을 통해 느껴졌다. 입속에서 빼낸 약손가락을 다른 손으로 힘껏 눌렀다. 


“씨팔놈”

스스럼없이 내 입에서 툭 흘러나온 말이다. 피를 보자 화가 치밀었다. 감당할 수 없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고 올라왔다. 도무지 주체할 수 없는 분노였다. 꼴도 보기 싫은 서류를 한쪽으로 밀어놓고 창가로 갔다. 밖엔 가랑비가 흩날리듯 내리고 있었다. 내리는 비를 한참 바라보니 마음이 가라앉는 듯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분노와 치미는 화가 어디에서 왔나, 생각했다. 날카로운 서류 탓인지, 홍 회장에 대한 적개심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잔뜩 예민해진 것은 날카롭게 날이 서 있는 나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얼굴에 뜨끈한 무엇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이건 뭐지’ 한쪽 손을 가져가니 흐르는 건 눈물이었다. 비 오는 창밖이 부옇게 보이는 이유였다. 그렇게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아내와 내가 디저트 카페를 차린 것은 2년하고도 반년 전의 일이다. 출판사에서 일하다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고 토끼 같은 두 딸을 낳아 길렀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큰딸아이를 바라볼 때쯤, 직장에서 사달이 났다. 반년 전 낙하산으로 온 부장이 직원들을 들들 볶아댔다. 열 명 남짓이 일하는 작은 출판사에서 왕 노릇을 넘어 토끼 굴에 호랑이처럼 굴었다. 특히 회의가 있는 날이면 잔뜩 예민해져 있고, 누구 하나 타깃 삼아 묵사발을 만들어 놓는 일이 잦아졌다. 의견을 내라고 해서 말이라도 한번 할 때면 ‘아우, 그러세요. 니가 다 드세요.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해 잡수세요.’라거나, ‘그래, 니 똥 굵다.’라는 말을 들으면 무시하고 저열한 말투에 치를 떨었다. 작은 조직이기에 전임 부장은 어르고 달래고 회식이라며 술이라도 한잔 들어가면 직원들의 속사정을 들어주고 함께한다는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었었다. 낙하산 부장이 온 뒤로는 힘든 마감일에,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일상에 서로 이해하고 돕는 문화는 실종되고 말았다. 그렇게 반년의 세월을 참고 인내했었다.


“뭐야! 이 분위기. 모두 벙어리만 있는 거야!”

부장이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너무 힘들다고,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혼자만 회사 걱정에 잠 못 자는데 모두 아무 의견도 없고 벙어리처럼 어쩌자는 거냐고 한바탕 소리를 지르고 회의실을 나가버리자 다들 한숨을 쉬었다. 의견이나 아이디어 차원의 의견을 내면 모두 있는 곳에서 면박을 주거나 무안을 주니 누가 말을 하겠는가. 설령 부장이 사장에게 보고하기 위해 혹할 만한 아이디어가 주어지면 의견을 개진한 사람의 업무로 주어지니 모두 입을 굳게 닫는 것이었다. 과장 직책으로 출판업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나도 직원들의 폭발하기 직전 모습에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모두 불만이 극한으로 치닫던 어느 날,

부장에게 월간 잡지 관련 질타를 받을 때, 일이 터지고 말았다. 


“이거 누가 이렇게 일 처리한 거야.”

모두 시선이 부장에게 쏠려 있었다. 마감을 앞둔 잡지에 순서가 변경된 것이다. 차례와 게재된 글의 순서가 다르다고 인쇄소에서 연락이 와 부득불 차례를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게재 글을 변경하게 되면 인쇄 틀이 손상돼 많은 문제가 생기고 소비자와의 약속이 틀어지게 된다. 이 일을 분명 다음 날 부장에게 보고했다. 정작 그때 부장은 건성으로 알았다는 답만을 했었다.

그때 보고했던 서류를 찾아 보여주었더니 결재판을 들고 내 뱃살에 대고 쿡쿡 찌르며

“어유, 그러세요. 어디 사인도 없는데 이걸로 퉁 치시려고, 내가 사장님한테 깨진 생각하면….”


그의 이죽대는 얼굴을 보며, 이를 악물고 꾹 눌러 참았다. 아니 참아야만 했다. 





              ☆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수요일에 만나요운담 유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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