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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NE Sep 11. 2024

03. 동정은 사랑이 아니다.

 제목보고 반박거리 한 움큼 들고 이 글을 읽을 사람들이 있을 것 같은데, 일단 진정하고 천천히 글을 읽어 본 다음에 글을 던지는 건 어떨까 조심히 제안해 본다. 제목만 보면 상당히 예민할 수도, 어쩌면 조금 위험할 수도 있을 부분을 건드리는 느낌이라서 나 스스로도 최대한 절제하면서 글을 쓸 주제니까 지켜봐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절대 이 글에서 내가 드는 예시들은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다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우선 이 주제를 적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실제로 동정을 사랑으로 착각한 전적이 있는 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경우에는 나조차도 상당히 힘들어지고 가라앉게 된다. 보통 '동정'하는 상대 라고 한다면 연상되는 이미지가 어떠한가. 대부분은 '챙겨주고 싶은 사람, 동시에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픈 사람'이라고 할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나도 시작은 그러했다.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데 이상하게 마음 한편이 계속 불편하고 온 신경이 그 사람에게 가 있는, 이게 사랑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내가 그 친구를 볼 때마다 챙겨주고 싶었고, 그 친구가 실수를 했다는 말만 들어도 마음이 아팠다. 좋아하면 다 이렇게 되는 건 줄 알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온 세상 사람이 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러다 평소와 다름없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저 친구를 챙겨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나였으면 좋겠다. 나로만 행복했으면 좋겠고 그러니까 저 친구가 적당히 힘든 상태로 유지됐으면 좋겠다'라는 너무 소름 끼치는 생각이 머릿속을 세게 후려치고 지나갔다. 분명 상대방이 행복해지고 밝아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상황들인데, 지금의 나는 저 친구의 힘듦을 바라고 있었다. 그런 나 자신이 스스로 너무 혐오스러웠다.


동정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어려운 처지를 자기 일처럼 딱하고 가엾게 여김.' 내지는 '남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하고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도움을 베풂.'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난 저 두 가지를 다 실행하고 있던 거다. 상대가 힘들면 나도 힘들었고, 상대방이 힘들어 보이면 굳이 내가 자처해서 상대방을 도와주겠다고 설쳐댔다.


하지만 보통 동정하게 되는 상대방들의 대부분은 자존감도 많이 낮고, 본인만의 세계가 확실하고 너무 단단하게 구축되어 있어 약간의 자기 방어적 공격성도 내포하고 있는 길고양이 같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 상대방들의 그런 수치들을 평균적으로 만들려면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된다. 다가가기만 해도 경계를 시작한다. 마치 본인의 영토가 위협받고 있는 것처럼 공격적으로 나를 대한다.


대부분은 여기서 상처를 받거나 생각과 너무 달라 마음을 접고 관심을 끊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았냐고 물어본다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사랑했기에 안타깝지만 서로를 지킬 수 있던 방법을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짝사랑 중이라면 이 사람이 내 애인도 아니고, 내가 무엇인가를 이뤄내주어야 할 의무도 없다. 나도 편하고 상대방도 편하려면 좋아하는 쪽이 포기하는 게 맞는 거다. 내가 신경을 쓰면 챙김에 부족함을 느끼는 나는 나대로, 필요 없어하는 상대방은 상대방대로 힘든 거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 둘 듣다 보면 보통 우울함의 극을 보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실제로 글을 쓰고 있는 본인도 그런 상대방을 잘못 짝사랑했다가 심리적으로 크게 요동치는 일이 생겨서 자해를 하기도 했었다. 아직도 내 왼팔엔 큰 흉터로 남아있을 정도로 크게 자해를 해서, 요즘은 이 상처를 보면서 늪에 잠기지 않도록 노력 중이다.


사랑은 동정보단 동경에 가깝다. 마음이 스스로 들떠서 안정되지 아니한 상태 말이다. 계속 웃으며 방방 뛰고 마음표현을 시원하게 해도 시간이 모자란 마당에, 서로 힘들기만 하다면 과연 그걸 사랑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동정으로부터 시작된 사랑은 감정쓰레기통 내지 감정여과기 정도로만 사용될 수도 있다. 내 마음이 그렇게 커서 상대방을 도와주지 않으면 주체할 수 없을 것 같다 싶을 수도 있지만 그때가 가장 위험할 때다. 나나 상대방이나 전혀 서로에게 긍정적인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태까지 알게 모르게 무너져 내린 거다.


하지만 만약 지금 나의 감정이 헷갈린다면 머리를 비우고 객관적으로 두 사람의 관계성, 상대방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객관적인 판단을 내려보길 바란다. 그럼에도 좋아 죽겠다면... 딱 내가 괜찮을 만큼만 노력하라고 말하고 싶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나와 상대방이 괜찮아질 정도까지만 말이다. 절대 섣불리 행동하지 말고 성급하게 앞서나가서 확대해석하지도 말아라. 그걸 '극성'이라고 하는 거다.


정말 마지막으로 꼭 해주고 싶은 말은, 상대방을 동정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내 아래로 본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내가 이 상대를 사랑한다면, 계속 진지한 만남을 가져보고 싶다면, 의심 가득한 동정보단 신뢰 가득한 동경의 눈으로 바라봐주는 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본다. 사랑은 같은 위치에 있을 때 가장 눈을 맞추기 쉽다. 어느 한쪽이 올라가거나 내려가고 관계 사이에 갑을이 생겨버린다면 그 관계는 거기서 끝인 거다. 이미 좋아져 버린 마음을 통제하기는 많이 힘들겠지만, 그럼에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남아있다면 상대방을 위한 길이 어떤 길인지를 한번 더 생각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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