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 사회와 질병
의사가 내 무릎에서 주사기 네 개 분량의 물을 빼내는 것을 보았다. 그토록 좋아하던 배드민턴 동호회를 4개월째 나가지 못하는 이유다. 등산 답사 후 살짝 시큰거리는 정도였는데, 토요일 배드민턴, 화요일 배구로 이어지면서 결국 무릎이 견디지 못했다. 이제는 무릎 보호를 위해 되도록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한다.
밤 9시가 넘으면 임플란트를 한 부위가 욱신거린다. 어제도 교회 모임에서 늦게까지 교제를 나누다가 결국 타이레놀을 먹었다. 신경성이라고 자가 진단하지만, 통증이 잦아질수록 다른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
동료가 왼쪽 눈에 안대를 차고 출근했다. 눈에 세균이 들어가 고생 중이라고 한다. 옆자리 동료는 이틀에 한 번꼴로 허리 물리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간다. 중년의 나이가 되니 몸은 여기저기서 신호를 보낸다.
연수 중에 있었던 일이다. 그룹 대화 시간에 한 동료가 눈물을 보였다. “저는 최선을 다해 회사 업무도 하고 대인 관계도 잘해보려 노력했어요. 그런데 동료들과의 관계는 자꾸 틀어지고….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어요.” 늘 밝은 얼굴로 인사하던 후배였는데, 웃음 뒤에 숨겨진 아픔을 몰랐다. 지금은 팀장이 되어 부서원들을 잘 이끄는 후배는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가진 후에야 진정한 리더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의 하루 업무 시간은 10시간. 정규 근무 시간은 8시간이지만, 요즘 밀려드는 업무를 감당하려면 이 정도는 기본이다. 회사에서 유일하게 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은 점심시간뿐이다. 야근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만 하게 되어서, 차라리 집에 일감을 가져와 2시간 정도 처리한다. 그것이 그나마 내 건강에 덜 해로울 것 같아서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의 ‘2023 직장인 건강실태 조사’는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직장인 73.2%가 과로로 인한 건강 위협을 느끼고 있으며, 특히 40대의 82.5%가 만성피로를 호소한다고 한다. 더 충격적인 것은 국립정신건강센터의 조사다. 직장인 65.3%가 번아웃을 경험했으며, 특히 30대가 72.8%로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단순한 피로 누적이 만성질환이 되고, 작은 통증이 큰 병으로 이어진다. 건강검진에서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안심하기엔 우리 몸이 보내는 경고가 많다. 주 52시간 근무자의 66.7%가 수면장애를 경험한다는 통계는 우리의 밤이 얼마나 불안한지 보여준다.
반면에 대한상공회의소의 ‘2023 일하기 좋은 기업 보고서’는 직원 건강관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준다. N사는 하루 2시간의 운동 시간을 의무화한 후 직원 병가율이 32% 감소했다. S사의 멘탈케어 프로그램은 1년 만에 직원 이직률을 절반으로 줄였다. L 사는 스탠딩 데스크와 사내 운동 공간 도입으로 근무 만족도가 27% 상승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해외 기업들은 이미 10년 전부터 ‘웰니스 프로그램’을 운영해 직원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나도 작은 실천을 시작했다. 업무 중 40분마다 스트레칭하고, 퇴근 후에는 되도록 핸드폰을 멀리하려고 한다. 토요일에는 아이들과 함께 배드민턴을 친다. 무릎 통증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알려준 신호였는지 모른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는 말이, 이제는 남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신호등 앞에서 멈춰 설 때마다 깊은숨을 들이쉰다. 작은 쉼표들이 모여 건강한 하루를 만든다. 번아웃을 겪은 후배가 알려준 교훈이다. 자신을 돌보는 시간이 있어야 타인도 돌볼 수 있다는 말처럼, 항상 건강할 것만 같은 나의 몸과 마음을 지금부터라도 소중히 다루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