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 권장 프로젝트」 마음의 장바구니 - 13
화요일과 금요일에 브런치북을 번갈아 올리던 중 문득, 두 세계관을 결합시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치 권장 프로젝트」 '마음의 장바구니'에 실릴 도서를 금요일에 연재 중인 「삶의 레시피」 '쓸데없지만 쓸모 있는'의 글과 짝을 이뤄 선정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글은 「삶의 레시피」 건강한 이기주의와 세계관이 연결됩니다.
"뭐 이런 책이 다 있지?"
처음 이 친구를 봤을 때, 딱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천둥벌거숭이 같은 녀석이
뾰로통한 표정으로 서 있는 표지가
사뭇 인상적이었다.
날카로우면서도 거친 선으로 가득 찬 그림 톤이
녀석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 보였는데
빨간색과 초록색만으로 표현해 낸
작가의 과감함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런데 첫 문장이 더 가관이다.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투박하고 삐딱한 이 친구, 그의 태도가 건강해 보였다.
제목은 『태어난 아이』인데,
첫 문장이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라 하니 그 끝이 어떠할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하지만 그 결과에 다다르기까지의 여정이 궁금했다.
시간이 흘러 브런치 속 내 글의 페어링을 생각할 때,
'건강한 이기주의' 타이틀을 보는 순간 바로 『태어난 아이』를 떠올렸다.
'건강한 이기주의'는 '나부터인 삶'을 강조하고자 사용한 표현이다.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녀석만큼 자신을 잘 알고, 자신을 인정하는 캐릭터가 또 있을까 싶었다.
무엇보다 『태어난 아이』가 마음에 들었던 건, 전적으로 아이의 선택과 의지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점이었다. 보통 태어난 혹은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존재를 이야기할 때, 그들은 선택되는 존재처럼 그려지는 일이 다반사이지 않았던가. 내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그렇다. 그런데 이렇게 완벽하게 주도권을 쥐고 자기 삶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멋졌다. 물론 선택에 따른 책임 역시 오롯이 스스로가 감당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완벽하게 자유로웠다.
태어나지 않았으니 그 어떤 일에도 구애받지 않았고, 그 어떤 상관도 없었다.
이 문장이 참 의미심장했다.
태어나지 않았으니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가끔 어떤 문제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이들을 볼 때가 있다.
그 무게를, 그 결과를 감당하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상관되고 싶어 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볼 때가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변주해서 들려주면 좋겠다.
우리는 태어났으니 상관이 있을 수밖에 없고, 우리는 태어났으니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이 그림책의 묘미 중 하나는 아이의 표정에 있다.
저 작은 존재가 보이는
'상관없음'의 태도가 가히 놀랍다.
개가 따라오든
개가 짖든
누가 개에 물리든
철저히 무심하고 무신경하고 무책임하다.
그런 아이에게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는 사건은
의외로 소박하다.
하지만 아이의 눈빛에서
강렬한 호기심이
강력한 욕구가 엿보인다.
마침내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태어나기로 결심한다.
태어난 아이는 이제,
우리가 아는 아이의 눈빛과 표정을 장착하고 엄마의 품에, 엄마의 그늘에서 머문다.
삶이 건네는 희로애락을 느끼면서..
그것이 진짜 살아가는 일이라는 걸, 태어난 아이는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이다!!!
Book. 『태어난 아이』, 사노 요코 글 · 그림 / 황진희 옮김, 거북이북스, 2016.
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