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반도는 그 모양을 두고 장화처럼 생겼다고 하기도 하고, 조금 더 세밀하게 표현해 보라면, 롱부츠를 신고 길을 가던 여인이 큰 돌멩이(시칠리아)에 발끝이 걸려 넘어지는 무릎 아래 다리 모습을 그려 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공업 지역은 독일 프랑스와 거리가 가까운 북부 지역에 밀집되어 있고, 대부분의 인구도 직장을 따라 그쪽에 몰려 있으니 소득의 지역 편차가 극심하다. 물자를 운송을 위한 항구들도 자연스럽게 북부에만 개발되어 <아드리아> 바다 북쪽(이탈리아 중심으로 보면 북동쪽)에 있는 <베네치아> 옆에 위치한 <트리에스테>나, 지중해 쪽은 북서부에 위치한 <제노아> 주변 항구들로 대형 상선들은 입항한다.
공산품 수출 외의 수입원은 관광업인데 관광지마저 북쪽이 많고 남쪽에는 적어 수입 격차를 더욱 증폭시키는데, 그나마 나폴리가 남쪽에서 비교적 가깝지만 그마저 서쪽으로 치우쳐 있어, 장화의 하이힐 부분을 포함한 <시칠리> 섬이 마피아의 본고장이 되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상선을 타고 이탈리아 항구에 입항했던 건 적게 잡아도 열 번은 넘는데, 북쪽 항구들에서 가까운 제노아나 베네치아는 시내 구경을 지주 할 수밖에 없었지만, 로마로 가는 길도 잘 정비가 되어 있고 교통도 편리해서 5~6번은 관광을 다녀왔던 것 같다.
그런데 내 아내와 동승하던 1984년에, 배가 하필이면 장화 뒷굽에 위치한 <브린디시>라는 작은 항구에 입항을 했는데, 이탈리아까지 와서 로마 관광을 시키지 않을 수 없어서 방법을 알아보니 쉽지가 않았다.
비행기를 타고 갔다 오면 비교적 간단하겠지만, 작은 도시라 비행기 편이 자주 없고, 비행기를 타려면 관광 비자로 바꿔야 하는데 시일이 걸릴 수도 있다는 게 대리점의 설명이었다.
그래서 무리를 하더라도 기차 여행을 하기로 했다. 2박 3일인데 기차 안에서 2박을 하는 고난의 여정이었다. 미리 기차표를 끊어 놓고 오후 늦게 밤열차를 타면 새벽 일찍 로마에 도착하고, 로마에서 밤열차를 타고 다시 돌아오면 그다음 날 오전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비행기 값을 아꼈고 숙박비도 절약했으므로 기차는 가족실이 있다기에 통째로 빌려 가는 도중에 잠을 조금이라도 잘 생각이었다. 그러나 둘만 있어서 그런지 여행 때문에 들뜬 것인지 쉽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렇게 뒤척이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려서 문을 열어 봤더니 키는 우리보다 훨씬 컸지만 야위고 어려 보이는 아가씨 하나가 몸을 떨며 잠시 들어가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가냘픈 여자아이 혼자서 특별한 사고는 치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어 잠시라는 단서를 제차 확인하고 들어오게 했는데, 손짓발짓 해가며 설명하는 말은, ‘지금 쫓기고 있는 신세인데, 허기지고 피곤하지만 밖은 더 위험하니, 옆에 있는 소파에서 잠시 쉬다가 나가고 싶다.’ 대강 그런 뜻인 것 같았다.
머리가 짧은 걸 봐도 그렇고 입은 옷을 보면 아무래도 죄수인 듯한데, 숨겨 줘도 되는지 걱정되어 머뭇거리고 있는데, 아내는 벌써, 우리가 밤참으로 먹으려고 싸 온 음식들과 음료수를 꺼내 그녀에게 먹이며 등을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불을 맑혀 보니 키도 껑충하고 목도 긴 미녀였다. 2충 침대 중에 아래층을 그녀에게 내주고 우리가 소파에서 머물다가 졸리면 위층으로 올라가서 자자고 아내가 말했다.
침대에 눕히고 담요를 덮어 줬더니 금방 코 고는 소리를 냈지만, 자면서도 불안한지 작은 소리만 나도 눈을 떴다. 우리 부부는 본의 아니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소파에서 서로 기대앉아 있던 우리가 잠깐 졸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녀가 사라지고 없었다. 아내에게 얼른 가방에 있던 돈을 챙겨 보라 했더니 이상이 없단다. 웅성거리는 걸 보니 로마에 도착 시간이 가까운 것 같았다.
기차가 멈춰서 우리도 짐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짐작했던 대로 <로마>라는 글자가 보여 우리는 기차에서 내렸다. 시계를 보니 새벽 네 시경이었는데, 먼동이 트려면 아직도 먼 것 같았다.
우리가 내린 기차 쪽을 돌아봤더니 어젯밤 우리 품에 날아 들어와 자고 사라진 그 아가씨가 눈에 띄었다. 양쪽에 선 경찰들이 그녀의 팔을 붙잡고 있었지만, 그녀는 생생하게 되살아나 있었다. 우리를 발견하고는 ‘그라치에(고맙다)’하고 소리를 쳤다. ‘쁘레고(천만에요)’라고 답하면서 범인을 은닉해 준 고백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아차 싶었다.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아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축축한 안갯속에 갇혀 있는 로마는 가까이 서 있는 가로등 불빛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기차역 앞 광장은 함께 내린 승객들이 한바탕 썰물처럼 빠져나간 후에는 인적이 끊겼다.
초가을이라 얇은 겉옷을 입고 왔더니 새벽에는 약간 춥게 느껴져서, 포장마차에서 뜨거운 어묵 국물이라도 한 컵 얻어 마시면 좋을 날씨인데, 열어 놓은 가게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곧 날이 밝아 올 텐데 택시를 타고 호텔을 찾기도 어중간한 시간이라, 아내와 손잡고 목적지도 없는 길을 걸으며 막막해하고 있는데, 24시간 영업하는 편의점이 하나 눈에 띄어서 반가운 마음으로 들어갔다. 조금 전까지는 안개 때문에 발견하지 못했던 것 같다.
간밤에는 불청객 아가씨 때문에 굶고 잠을 설쳤기 때문에 약간 피곤하고 출출해서 먹을 것을 찾다가 진열대 구석에서 조각 피자를 발견했는데, 절 됐다 싶어 따뜻한 커피와 함께 그것을 샀다.
드디어 이탈리아 본토 피자를 맛보는구나 하며 기대를 잔뜩 갖고 먹기 시작했는데, 웬 걸, 소금에 절여 놓은 것처럼 짜기만 한 게 종류도 모르는 나무껍질을 씹는 것처럼 느껴졌다.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고, 계산대의 뚱보 아줌마에게 사정을 얘기했더니, 전자레인지에 덥혀 먹어야 하는데 그대로 먹더란다. 말을 해 주지 그랬느냐 했더니 이미 아는 줄 알고 설명하지 않았는데 이런 일이 생겼다며 다시 주문하겠느냐고 물었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일 것 같아서 도넛으로 품목을 바꿔 사 먹었다.
그러는 사이에 시간이 흘렀는지 버스가 지나가는 게 보였다. 바티칸으로 가는 버스의 번호를 묻고 승강장을 확인한 후 가게를 나섰다. 그런데 차비를 어떻게 지불하면 되는지를 물어보지 않았다.
부딪혀 보면 해결 방법이 나오겠지 생각하며 차에 올랐다. 타면서 운전수에게 물어보니 뭐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혹시 영어를 하는 사람이 없는지 주위를 둘러봐도 웃기만 할 뿐 답을 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할머니 한 분이 미소를 지으며 그냥 타고 있다가 내리면 된다는 듯 눈을 깜빡거렸다. 그래서 자리에 앉았는데, 조금 더 가니 서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뒷문 쪽으로 몰리더니 한꺼번에 내렸다.
거의 다 온 것 같아 우리도 내리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제복을 입고 앞문으로 탄 사람들이 제지를 했다. 검표원들이었다. 표가 없는데 야단 났다.
얼마냐고 묻고 돈을 지불하려고 했더니 손을 저으며, 무임승차라 벌금은 잔돈이 아니라 큰돈으로 내야 한단다. 탈 떼 운전수에게 돈을 지불하려 했는데 그가 받지 않더라며 정상 요금만 받으라고 설득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때 조금 전에 눈을 찡긋거리던 할머니가 우리에게 다가와서 오랜만에 만난 지기라도 되는 듯 나를 끌어안으며 인사를 하면서 그 틈에 차표 두 장을 내 손에 쥐어 줬다. 나는 방금 그것을 주머니에서 찾은 듯 검표원에게 넘겨주며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어젯밤에 우리 품에 날아왔던 약한 새가 보은을 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날 하루에 대해서는, 바티칸과 성베드로 성당 등을 본답시고 종일 걸어 다녀서 파김치가 되었던 기억 밖에는 남은 게 없다. 세계적인 관광지라 깨끗할 줄 알았는데 뒷골목이 지저분했다는 것과 화장실이 귀해서 본의 아니게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여러 번 했는데 대부분의 음식은 입맛에 맞지 않아 그대로 버렸던 기억도 난다.
밤늦게 돌아오는 기차를 타고 밤새 골아떨어졌다가 <브린디시>에 도착하니 오전 10시쯤 되었는데 날씨도 따뜻해졌고 활짝 개어 있어서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멀리까지 보이는 바다와 뒤를 돌아보면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 교대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실려 오는 갯냄새와 풀 냄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로마와 비교하니 해변에서 사 먹는 해산물도 천상의 음식이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옛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