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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너 지금 떨고 있니?

by 메이슨 Mar 28. 2025

브런치스토리에 늦깎이 입문을 하면서 지난 한 달 간 ‘순수 문예’ 수필을 찾아 읽었다.

단순한 나 개인의 취향이긴 하겠지만,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는, 마음의 산책을 돕는 글들을 접하면 행복했다.

나도 언젠가는 저런 글을 다시 쓸 수 있겠지 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다시 쓸 수 있다고?  


캐나다 생활을 이십 년 넘게 하면서, 글 고픔이 손끝에 아릴 때면 여기 한국일보나 중앙일보 등에 칼럼을 쓰곤 했는데, 신문사의 입맛에 맞추다 보니 주로 시사성 있는 주제를 에세이 형식으로 써왔던 것 같다.  시류에 영합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 풍각쟁이 역할을 너무 오랫동안 한 것 아닌가 하는 회한이 들었다.   

그래서 플롯이나 클라이맥스를 필요로 하지 않는 오랜 친구에게서 받은 편지 같은 글을 다시 쓰고 싶어 졌다.

하지만, 이는 내공이 필요한 부분이다.

사소한 것들에 대한 욕심으로 달팽이 껍질처럼 안으로만 움츠려 든 폐쇄적인 모습이 더 펴지고 속 살도 더 드러나야 써질 것이다.

하여, 브런치스토리의 문을 열게 되었고, 나름 보물찾기 하는 기분도 들었고, ‘남모’ 작가님 같은 분의 찐 글을 만나면 행복했다.  



그런데 ‘브런치북’이란 것을 처음으로 시도해 보면서, 이번 한번은 다시 시사성 있는 글을 써야 되지 않을까 싶다.  타성에 이끌려서라기 보다는 지금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혼란한 상황들을 어떻게든 글로 남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 때문이다.

물론, 이보다 훨씬 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잔잔한 서사문을 남기는-일례로, 포화가 쏟아지는 가자 지구에서 이슬처럼 명징한 글로 세상의 양심을 찌르는, 끝내는 글과 같이 산화한 가산 카나파니(Ghassan Kanafani) 같은-훌륭한 작가도 있지만 나에게는 넘사벽일 뿐이다.  


수필이란 자고로 수필가가 꾹꾹 눌러쓴 신변잡기(身邊雜記)라 하였다.  


그 신변이 지금 여유롭지가 않다.

마음을 가다듬고 깊은 호흡을 하며, 차를 마시듯이 관조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참 좋겠지만, 눈이 떠지고 귀가 열리면, 라디오를 틀던 TV를 켜던, 마트에 가던 길거리를 걷던, 화가 난 캐나다 사람들의 모습이 프레임을 꽉꽉 채운다. 한마디로 난리 북새통이다.

미국 대통령으로 새로 부임한 트럼프가 캐나다를 향해서 대놓고 막말을 해대니, 캐나디언들이 격노해서 ‘hate America’를 외쳐 댄다.   

이 심뽀는 그게 전략인지, 주정인지, 카메라 앞에 광대가 되고 싶은 것인지 모를 맹탕을 계속 날리고 있는데, 왜 그게 하필 가장 가까운 이웃을 타겟으로 하는 것인지 캐나다 사람들은 심사가 몹시 불편하다. 길 가던 모르는 사람한테 당해도 억울한데 가장 친한 친구한테서 뒷통수를 맞은 것 같다고 표현한다.

그만큼 캐나다 사람들이 겪는 충격과 배신감은 패닉에 가깝다.

애국심에도 불이 붙어’ buy Canada’ 운동에 너도나도 뛰어든다.  



우리는 No Japan 운동을 심하게도 했다가 가볍게도 했다가 변주하듯 하는 민족이지만, 세상 처음 당해보는 일에 단단히 뿔난 이 사람들은 마치 불구덩이에 던져진 벌집 같다.  미디어들이 요즘처럼 한 목소리로 떠들어 대는 것도 참 드문 일이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일본제품 불매 운동을 대차게 벌였지만, 금방 냄비 근성만 보인 한국 사람들하고는 이들은 뭔가 다르겠지 싶으면서도, 경제규모도 인구도 열 배나 크고, 군사력은 백배도 더 되는 미국을 상대하면서, 골리앗 앞에 선 다윗처럼 이들이 떨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도 해본다.   

해서 주변을 세밀하게 둘려보며 이 총성 없는 전쟁을 글로 써 볼 참이다.  에세이가 아닌 수필을 써보고 싶은 심정이니 톤은 최대한 낮추어서...


물론, 거대한 골리앗을 이긴 소년 다윗의 승리를 기억하고, 다시 한번 그리 되길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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