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마주한 얼굴.
평범해 보이는 친구들의 집. 낡은 빌라촌, 작은 빌라에 사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100평짜리 땅에서 살고있었음에도 그랬다.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집이 아닌 교회였기 때문이다.
그 옛날, 어린 날의 충청도 소년은 목사가 되고 싶었다. 작은 목표 하나로 성인이 되자마자 홀로 서울로 상경했다. 작은 고시원 하나를 구해 간신히 살아내며 신학 대학을 졸업했고 큰 교회의 부목사가 되었다. 하지만 소년의 야망은 컸다. 소년은 부목사가 아닌 담임 목사가 되고 싶었다. 그 길로 교회에서 만난 아내와 결혼 후 군포라는 작은 동네에 개척교회를 세웠고, 두 딸을 낳아 비로소 아빠가 되었다. 그렇게 언니와 내가 태어났다.
아빠의 야망은 상가 교회를 넘어 자신이 직접 세워올린 건물을 갖는 것으로 커졌다. 그리고 그 야망에 따라 가족들의 집은 점점 작아졌다. 그러다 결국 교회 안으로 들어가게 된 거다. 100평 땅에 지어진 2층짜리 교회 건물 안, 거실이랄 것도 없는 작은 창고 3칸이 우리 집이었다. 집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어린 나에게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무엇보다 집에 가기 위해서는 꼭 교회 문을 통과해야 했다.
“오늘 너네 집에 놀러가도 돼?”
묻는 친구의 말에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학교가 끝나고 귀가하는 길에는 항상 우리집에 먼저 도달했고, 같이 하교하는 친구들은 우리집을 지나쳐갔다. 그때마다 나는 집을 지나쳐 다른 골목으로 들어가며 친구들에게 인사하곤 했다. 그리곤 길을 돌아 돌아 집에 도착했다. 번거로운 거짓말은 단순히 쪽팔림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날은 집에 가도 되냐는 친구의 물음에 내 거짓말이 먼저 나를 찔러왔다. 그동안 다른 골목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들킬 수 없었을 뿐더러 3칸 뿐인 작은 집에 데리고가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또 다른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친구에게 오늘 가족 약속이 있어 놀지 못한다는 말을 내뱉었다.
학교가 끝나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무 약속이 없지만 혼자 보내야 하는 오늘을 생각하며 집 앞에 다다랐다. 곁에 아무도 없이 혼자인 상태였지만 나는 관성처럼 그대로 집을 지나쳤다. 평소처럼 골목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아빠가 멀리서 나를 불렀다. 집을 지나치는 내가 이상했는지 교회 앞에서 나에게 어디가냐고 물어왔다. 순간 온 몸에 열이 오르는 듯한 느낌에 '잠시 어디에 갔다오겠다'는 어설프고도 두루뭉술한 말만 내뱉고 골목으로 사라졌다. 이미 뱉어버린 말 때문에 곧바로 집으로 향할 수도 없었기에 길에서 시간을 때울 수 밖에 없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어느때보다도 멀었다. 분명 집이 있었지만 갈 곳이 없었다. 그렇게 하릴없이 골목만 서성거렸던 하루였다.
100평에 2층짜리 교회는 다시 무너지고,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새로운 땅에 4층짜리 교회가 지어졌다. 스물 네 살이 되어 이제는 모든 사건이 하나의 해프닝이 되었을 때 나는 우리 교회와 가족에 관한 다큐를 찍기로 했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아빠의 앞에 앉은 나는 아빠에게 어떤 얘기부터 꺼낼지 고민했다. 아빠와 평소에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었기에 어릴 적 내가 교회로부터 느꼈던 창피함과 괴리감을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렇게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고, 아빠는 내 얘기를 듣다가 문득 자신의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신학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고시원에서 지냈을 시절 밥 한 끼 먹을 돈이 부족해서 한 봉지에 4개가 들어있는 땅콩 빵을 하루동안 나눠먹은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근데 있잖아, 그냥 길을 걸어가면서 빵을 먹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뭐라고 하지 않잖아? 근데 아빠는 그때 뭐가 그렇게 창피했는지 그 빵을 화장실에 가서 먹었어. 화장실 칸에 앉아서 엉엉 울면서 바보처럼. 엉엉엉. 이렇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웃긴지 아빠는 말을 하다 웃음이 터졌다. 내 앞에서, 그리고 카메라 앞에서 빵을 먹었던 기억을 우스꽝스럽게 재연하는 아빠를 보고 나도 웃음이 터졌다. 아빠의 장난스러운 모습에 터진 웃음이었지만 왜인지 모르는 안도감과 위로가 뒤섞인 웃음이었다. 아빠는 나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둘은 카메라 앞에서 누구보다 숨기고 싶었던 쪽팔림을 웃으며 털어놓았다. 그렇게 서로의 쪽팔림에 대한 첫 공유는 <100평짜리 작은 집>_mp4라는 파일로 남겨졌다.
나의 어느 한 부분을 드러낸다는 것은 수치심을 동반하는 일이다. 드러낸다는 것은 나를 타인에게 보여지게 한다는 것이고, 나라는 사람이 타인의 생각을 경유하도록 놔두는 것이기 때문에. 그건 타인이 나름대로 나를 판단할 수 있는 자유를 넘겨준다는 거다. 수치심은 거기에서 오는 듯 하다. 어떤 방식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생각. 거기서부터다.
드러냄으로써 겪는 수치심을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일을 내가 선택했다. 하지만 이 일은 선택했음에도 어려운 일이다. 나의 과거를, 아빠의 과거를 카메라 앞에 놓고 전시한다는 일은 무수한 다짐이 필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내가 카메라에 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과 아빠가 카메라 앞에 설 수 있었던 것에는 사랑의 힘이 존재한다. 나의 일을 사랑하는 힘과 딸을 사랑하는 아빠의 힘이다. 사랑으로 선택한 드러냄과 사랑으로 이겨낸 수치심은 내게 존재하던 어느 한 겹의 표피를 벗겨냈다. 그리고 나만의 일이었던 일은 우리의 일로, 아빠의 일로 확장된다. 내가 아닌 아빠의 일을 들어보게 되는 것. 나는 그 과정으로 이전보다 덜 별로인 사람이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