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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lish Oct 08. 2024

격식 없는 차생활

마음을 챙기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 - 차를 올리다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도덕시간에 여얼씨미 살아야 한다고 배워 왔기 때문에 게으름은 공공의 적이었으며 한가로움은 배부른 소리로 여겨진다. 이 주는 시련과 어려움을 치열하게 극복하고 근면성실하 살면 좋은 날이 온다고 한다.

하지만  필리핀이나 인도 또는 가까운 다른 동남아 여러 나라들이나 퇴근  후 전화하는 직장에 벌금을 매기는 법을 만든 유럽 사람들은 한국인의 그런 치열한 삶을 어느 정도는 낯설게 바라본다. 그렇게까지는 열렬하게 근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삶에서 개인의 워라벨, 사생활, 평안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보답받지 못하는 근면성실이나 치열하게 살고 있는 나에게 삶이 뜬금없이 내미는 레몬을 차마 삼키지 못하고 불행 안에서 허우적대며 자살률 높은 나라, 출산율 낮은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아마도 전쟁과 여러 역사적인 이슈들을 겪는 동안 피땀 흘려 생존해 온 우리 민족만의 문화적 배경도 있으리라.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의 권력자들은 백성들에게 모범이 되거나 힘없는 성들을  이끌주기보다는  의병이나 독립군 같이 벼랑 끝의 치열함으로 삶을 불태운 재주 있는 백성들에  의해 여기까지 이끌려 왔기 때문에 근면성실은 그들이 백성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가장 온건한 신념었을 수도 있다. 건전한 문화적인 창의성이나 발상은 치열한 경쟁구도보다는 적당한 긴장감은 필요할지 모르나 욕심 없고 내려놓고 비우는 안빈낙도의 정신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삶의 여러 족쇄와 명예를 벗어던지고 청산으로 돌아간 이들이 만난 강과 들은 글이 되고 그림이 되었다. 살아있는 동안 인정을 받지 못하고 사후에야 제 몫의 평가를 받는 예술가들을 비롯해 재능 있는 문화예술인은 현실의 장애나 인정에 급급하지 않다. 여유라는 이름의 게으름은 가끔 아주 훌륭하고 뛰어난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거나 적어도 삶의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완벽한 여백이 되어 주기도 하는 것이다. 다른 이의 속도에 종종거리며 쫓아가기보다는 나의 속도를 찾아 내면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차는 숨 돌릴 틈 없는 우리의 삶에 멈춤과 쉼, 그리고 명상을 준다. 그래서 옛 선인들은 다도라는 말로 차생활을 설명하였다.

다도의 의미를 담아 스님들은 명상과도 같이 아침저녁으로 차를 내려 첫 차를 부처님께 올린다.

일 년에 한두 번 정해진 날에는 산중턱의 마애불에 차를 올리는 큰 행사를 하여 다인들이 다 모이기도 한다.

차는 이처럼 도를 구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대학 시절에 절을 좋아하는 친구와 마애불이 있는 해인사 뒷산 몇 번 오른 적이 있는데 그때 들렀던 절에서 우연히 만난 스님이 내어주신 차에서도 같은 향을 맡게 된다. 마애불이 있는 높거나 험하지 않뒷산을 오르면 지 천천히 한발 한발 근육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걷게 된다.

차를 마실 때 배웠던 호흡의 법칙을 곱씹으면서 완만한 산길을 따라 마애불을 만난다.

스님의 안내로 해인사와 통도사에서 하계 수련회라는 이름 단기출가경험한 적이 있다. 삶과 철학, 인간에 대해 다양한 고민을 하는 이들과의 만남이 지금까지 따뜻하고 인간적인 추억으로 남아있다. 서로 나눈 대화들, 먹은 사찰의 정갈한 음식들, 산을 올라 흙길을 걸어 산중턱 마애불에게 차를 올리던 정성 어린 마음들.. 모든 것이 인연이 있는 이들만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기억들이다. 그때 내 마음을 두드린 여러 가지 일들과 사들이 나의 내면의 소리를 일깨워 준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재미있는 것은 통도사와 해인사의 지형학적인 차이와 거기 사람들의 성향의 차이에 대해 알게 된 사실이다. 두 산의 모양새가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이고 각각의 산에서 만난 사람들을 보면서 알게 된 것이다.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의 지형은 산세가 험하고 바위가 많아서 파도치는 바다의 형상이고 해인사는 그 바다 위에 떠있는 배와도 같은 형국이라고 한다. 해인사에서 정진하는 비구스님들의 성향이 남성적이면서도 기세가 있고 에너지가 넘치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활하면서 몸으로 느낄 수 있다. 반면에 통도사는 주변 산세가 작은 언덕과 아기자기하고 둥글둥글한 산들이 많아 진달래꽃 피는 파스텔톤의 봄에는 정겨운 ‘고향의 봄’을 연상시킨다. 통도사의 스님들은 그때 우리를 지도해 주시던 스님을 비롯하여 새벽예불에 참여하는 모든 스님들이 풍기는 분위기가 우아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면서 고운 비구니 스님과도 같은 따뜻한 느낌을 주는 것이 마음에 와닿았다. 산세와 지형이 사람을 만드는 것을 그때 몸으로 느끼며 실감했다.     

산은 마음을 멈추게 하고 차는 비우면서 마시게 된다.

마애불이 있는 그 산에서 밑 빠진 독처럼 끝없는 욕망의 독을 채우기보다는 비우고서야 비로소 풍요로워지는 삶의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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