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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뒤의 다짐

by 한빛나

무엇 하나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와 관련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이의 말이 또래보다 늦어지기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나 자신을 의심했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혹시 내 탓일까?’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주변 어른들은 “남자아이는 원래 말이 늦어. 걱정하지 마.”라며 다독였고,
다른 이들은 “괜히 시간 끌지 말고 전문가에게 보여보라”라고 조언했다.


나는 답을 찾고 싶었다.
육아서를 밤새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조급해하지 말자. 기다려보자.


유치원에 갈 무렵, 아이는 대화는 할 수 있었지만 또래보다 확실히 느렸다.
그리고 세상은 코로나라는 낯선 공포 속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 마스크 속에서 표정을 잃은 친구들과 하루를 보냈다.
“곧 끝나겠지.” 했던 시간은 1년, 2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 시절, 나는 아이가 유치원에서 친구들, 선생님과 잘 소통하는 걸 보며

‘이 정도면 이제 괜찮겠구나’ 안심했다.
하지만 그건 긴 터널의 시작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후, 어느 날 아이가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어… 어… 엄마…”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이 시기엔 어휘가 폭발해서 잠깐 그럴 수도 있다던데.’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 함께 지나야 할 긴 시간의 터널이었다.




아이의 말더듬은 괜찮아졌다가도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학교를 다닐 때와 방학 중의 차이는 뚜렷했고,
나는 점점 ‘심리적인 요인이 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아홉 살이 되던 해, 나에게 다가와 조심스레 말했다.


“엄마, 나 하고 싶은 말이 잘 안 나와. 나 좀 도와줘.”


그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알고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괜히 지적하면 아이 마음에 상처가 될까 봐 애써 모른 체했었다.
그런데 아이가 직접 ‘도와달라’고 말했을 때, 그동안 버텨왔던 마음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아이가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나는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걸까?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언어센터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검사와 테스트를 반복할수록 아이도 나도 지쳐만 갔다. 그러는 사이 내 마음은 점점 더 작아지고 자신감도 없어졌다.


어떤 곳은 “성인이 되어도 완전히 고치기 어렵다”라고 했고, 또 어떤 곳은 “지금 상태가 심각하다”라고 했다.
희망은 점점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에게 딱 맞는 센터를 찾았다.

“아직 어리니까 충분히 가능성 있어요. 아이 스스로 의지가 있기 때문에 더 희망적이에요. “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제부터 시작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이 고였지만, 이번엔 두려움이 아니라 다짐의 눈물이었다.



- 다음 화에 계속



[함께하는 작가님]

지혜여니, 따름, 김수다, 아델린, 새봄, 바람꽃, 다정한태쁘, 한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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