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물 안 개구리 탈출을 시도하다.
스물일곱, 4년간의 알바인생을 청산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남대문에 첫 출근을 했다.
내가 취업한 곳은 남대문 액세서리 상가였는데, 머리띠나 헤어핀, 귀걸이 등을 소, 도매로 판매하는 곳이었다. 서울역에서 내려 남대문 시장까지 걸어가 상가를 찾았고, 그 안에 들어선 순간 나는 완전히 돌처럼 굳어버렸다. 매 부스마다 액세서리들을 돋보이려 매단 조명들 때문에 눈이 아팠고, 원단냄새, 본드냄새, 음식냄새, 사람냄새 등 여러 가지가 섞인 냄새 때문에 머리가 어질 거렸다. 또한, 그곳엔 사람까지 너무 많았다. 우리나라 사람은 물론이고, 일본, 중국, 아랍 등 온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다 이곳에 있는 듯했다. 한국말에서부터 모든 나라 언어들이 동시에 들렸고, 나는 작은 지구본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나는 눈을 찡그리고 코를 감싸며 미로 같은 상가 안을 비집고 들어갔다. 처음에는 모든 매장들이 다 비슷하게 보여서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잘 가지 않았다. 상호명과 호수가 다 쓰여 있는데도 찾기가 쉽지 않았고, 결국 다른 상인분 한테 물어본 후에야 매장을 찾을 수 있었다. 어렵게 찾은 매장 앞 의자에 앉아 나는 생각했다. 과연 우울증 환자이면서 *내향형인 대문자 I인 내가 이곳에서 단 하루라도 버틸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사장님은 내가 도착한 뒤 2시간이 지난 후에 출근을 하셨고, 얼이 빠진듯한 내 얼굴을 보고 이곳에서 일할 수 있겠냐고 물으셨다. 나는 마음과는 다르게 당당하게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이상하게 이번만큼은 쉽게 포기하기가 싫었고, 왠지 이곳이 낯설지 않게 느껴져 나는 다시 한번 마음을 굳게 먹기로 했다.
사장님이 의도하신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난 그 2시간 동안 완전히 이곳에 *매료되어 있었다. 원래 내 자리는 여기였다고, 도대체 어디 갔다가 이제야 왔냐고 나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반짝거리는 액세서리에 마음을 뺏겼고, 그동안 내가 모르는 세상이 같은 하늘에 존재했다는 사실에 신기했다. 나만 치열한 삶을 살고 있었다고 자부했는데 아니었다. 이곳은 정말 치열함의 끝판왕이었다. 다닥다닥 붙어서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경쟁을 하고 돈을 벌고 밥을 같이 먹고 때론 싸우기도 하며 울며 웃는 곳, 그곳이 남대문이었다.
출근을 하고 한 시간쯤 지나면 죽 할머니와 주먹밥 아줌마가 돌아다니면서 아침을 판매했다. 점심은 거의 배달을 시켜 먹었는데 좁은 골목이 갑자기 넓어지면서 사이사이에 숨겨놨던 밥상들이 펼쳐졌다. 손님들은 그사이를 개의치 않고 누볐다. 밥 먹는 시간이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라서 빨리 먹고 치워야 했지만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매운 게 당길 때는 엽떡을 시켰고, 삼계탕과 닭볶음탕도 시켰으며, 짜장면은 기본이고 쌈에 싸 먹는 돼지불백도 많이 시켜 먹었다. 한식파인 나는 상가 지하 1층의 매점 음식을 제일 좋아했는데 그중에서도 백반한상차림을 제일 많이 먹었다. 조금 힘이 드는 날이나 바쁠게 미리 예상되는 날이면 얼박(얼음박카스)으로 하루를 시작하기도 했고,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남대문에는 맛없는 음식이 없었다.
남대문 상인들은 바쁜 탓에 한 시간이 넘짓한 은행업무를 보러 갈 수가 없었다. 때문에 남대문의 은행 시스템은 동물이 진화하듯 변화했고, 은행 직원들이 현금을 가지고 다니면서 매장마다 들려 은행업무도 봐주며 매일 입, 출금을 도와주었다. 외국상인들이 와서 물건을 주문하거나 국내 거래처등에 물건을 배달해야 할 때도 퀵 아저씨들을 통해 배달료만 주면 전달이 되었고, 수금까지 해주셨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 모든 것이 희한하게도 순조롭게 흘러가는 곳 또한 남대문이었다.
평생을 거의 모든 것에 심드렁만 할 줄 알고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나였는데 남대문 안에 모든 것들은 전부 재미로 다가왔다. 사람이 흥에 겨우면 힘이 드는 줄 모른다는 걸 이곳에서 일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한국어 밖에 들어보지 못한 나의 귀에 영어, 일본어, 중국어, 아랍어 등이 들렸고, 그 사람들과 나는 하루에 몇 번이고 마주치고 웃고 대화했다. 물론 언어를 유창하게 했다는 것이 아니라 판매에 필요한 말들과 *바디랭귀지, 번역기의 도움을 통해 짧은 영어로 대화할 수 있었다. 그렇게라도 의사소통이 가능 하다는 것이 신기했고 재미있었다. 나에게는 여기가 신세계였고 놀이터였다. 그렇게 나는 우물 안 개구리에서 탈출하게 되었다.
* 내향형
모든 인격의 활동이 내부로 향하고 외부의 인물이나 사물에 대하여서는 소극적인 성격 유형.
* 매료
사람의 마음이 완전히 사로잡혀 홀리게 됨.
*바디 랭귀지
음성 언어나 문자 언어에 의하지 않고 몸짓이나 손짓, 표정 등 신체의 동작으로 의사나 감정을 표현, 전달하는 행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