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등대의 빛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흔들리며 가는 배와도 같으니까.
삶이란, 등대의 빛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흔들리며 가는 배와도 같으니까.
금주 23일째, 루틴을 마치고 새로운 책을 선택해 읽기 시작했다. 어제 읽었던 벤저민 프랭클린이 내 인생 30~40대 중반까지 성공 멘토였다면, 40대 중반 이후부터 내 인생에 영향을 준 인물인 “브라이언 트레이시”이다. 우연히 발견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법칙”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약 15분 분량으로 편집해 놓은 유튜브 영상이었다.
당시 무료하고 지친 삶을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던 영상에서 그가 던지는 말들은 내게 이정표를 제시해 주는 느낌이었다. 나의 이 무료함과 지침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머릿속에서만 변화를 꿈꾸고 실지로 행동하는 것은 무엇이 있는가?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된 것이 바로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강연이었다.
이후 그의 15분짜리 강연을 하루에 5번 이상씩 듣고 그의 강연 내용을 거의 전부 외웠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어느 정도 그의 강연을 영어로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그의 책이 새로 출간되어 확인을 해보니 이 책은 내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제목이 <행동하지 않으면 인생은 바뀌지 않는다>였다.
이 문장은 내가 인생의 좌우명으로 선택한 문장으로 얼마 전 앞으로 평생 이 문장의 의미를 신념으로 살기 위해 팔목에 새긴 문장 <If you do nothing, nothing will happen.>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와 같은 의미를 가진 문장이었다.
새로 시작한 나를 위해 “브라이언 트레이시”가 보내준 선물 같은 책을 희망과 설렘이 가득 한마음으로 첫 페이지를 펼쳐 나갔다.
오전에 중간까지 읽고 잠시 책을 덮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름 잘 하고 있구나” 하고 나 스스로에 칭찬을 해주고 싶었다. 그동안 영상에서 그가 했던 7가지 원칙 중 대부분은 잘 따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5분짜리 편집 영상에서 볼 수 없었던 그만의 다른 비밀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루틴을 위해 페달을 밟았고 영상을 켰다. 오늘의 “하와이 대저택”에서 본 영상은 러셀 로버츠의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 이었다. 살면서 무수한 선택의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주는 내용이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늘 <답이 없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 문제의 예로 들은 것이 우리가 아는 학자 찰스 다윈의 고민을 예로 들었다. 찰스 다윈의 가장 큰 고민은 결혼을 할까? 말까? 였다고 한다. 숫자형 인간인 그는 결혼의 장, 단점을 상세히 적고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나 영상에서 과연 결혼이라는 것이 장, 단점을 나눠서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인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는데 그 기준은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생의 정말 중요한 문제 즉 저자가 말한 답이 없는 문제는 이런 이익과 그동안의 자신의 경험으로 선택할 수 없는 영역의 고민에서도 우리는 좁은 시선으로 이익만을 보며 선택하는 실수를 범한다는 것이다.
영상은 그런 선택의 과정에서 중요하게 여겨야 할 기준은 “성장”이라고 말한다.
“혹여나 지금도 이 ‘답이 없는 문제들’ 앞에서 여전히 뭔가를 열심히 막 측정하고, 비교하고, 견주고 있으시다면 그리고 그 저울질이 제아무리 본성일지라도 에러는 발생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공식을 찾지 마세요. 공식은 단순하고 명쾌하죠.
그런데 삶은 단순하지 않잖아요, 삶이 가능한 이유는 오로지 끝나지 않는 알 수 없는 불확실성 때문입니다.이게 바로 인간이고, 인간의 삶입니다……
더 의미 있고, 심오한 즐거움들은 절대로 확실하게 측정할 수 없습니다.”
출처: 하와이 대저택
오늘도 여전히 어두운 내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며, 내 앞을 밝혀주는 등대 같은 한 줄기의 빛을 발견했다. "하와이 대저택"이라는 영상 속에서 건져 올린 한 문장. 짧고도 묵직한 그 문장은 내 가슴 한가운데에 닻처럼 내려앉았고, 나는 그것을 곱씹으며 스스로에게 되묻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선택한 이 길이 단순히 나만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맞는가? 만약 그렇다면, 이 선택을 어떻게 성공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은 마치 바다 위의 파도처럼 끊임없이 출렁였지만, 나는 그 불확실함 속에서 묘한 확신을 느꼈다. 비록 지금은 어둠 속에서 작은 빛에 의지하고 있지만, 그 빛이 내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가리키고 있다는 믿음이 나를 붙잡았다.
무엇이 진정한 성공인지, 무엇이 나를 온전한 나로서 성장하게 할 수 있는 선택인지에 대한 고민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어쩌면 중요한 건 그 끝없는 질문들 속에서도 스스로를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걸어나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삶이란, 등대의 빛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흔들리며 가는 배와도 같으니까.
운동을 마치고 땀에 젖은 몸으로 문을 열자, 마침 막내가 자기 방문을 열고 나왔다. 여전히 잠에서 덜 깬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 모습조차 왠지 애틋하고 사랑스러웠다. 점심을 챙겨준 뒤 식탁에 마주 앉아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올해 고3이 된 막내는 대학 진학을 두고 나름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내신이 부족하니까, 인천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다른 방법들을 찾아보고 있어요.”
막내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의연한 결심이 담겨 있었다. 어른처럼 보이려는 말투였지만, 그 안에 담긴 불안함이 내게는 선명하게 느껴졌다.
지난해, 엄마의 큰 사고로 인해 막내에게 신경을 제대로 써주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진로를 고민하고 계획을 세워나가며, 아빠인 내 앞에서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는 아들의 모습이 기특하고 대견했다.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이제 엄마도 많이 좋아졌으니, 앞으로는 아빠랑 엄마가 옆에서 더 잘 도와줄게.”
내 말에 막내는 밝게 웃으며 고맙다고, 그 말만으로도 힘이 된다고 했다. 그 웃음 속에는 스스로 감당해야 했던 많은 것들을 뒤로 하고, 누군가의 응원이 주는 위로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아이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문득 깨달았다. 오늘의 막내는 더 이상 막내 같지 않았다. 오히려 나보다 더 단단해진 어른처럼 보였다. 그 안에서 성장한 책임감과 의지를 느끼며, 나는 고개 숙여 감사했다. 아이는 이렇게 하루하루 자라나고 있는데, 나는 과연 그 속도에 맞춰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던 걸까?
마치 막내가 나를 가르치는 것 같았다. 성장이란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며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걸. 오늘의 대화가 그 과정을 더욱 단단히 만들어준 것만 같았다.
늦은 점심을 계란과 두유로 간단히 해결하고 책상 앞으로 돌아왔다. 따스한 오후의 고요함 속에서 잠시 의자에 기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불현듯, 정말 갑작스레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매일 쓰는 일기 말고, 내 어린 시절부터의 이야기를 한번 써볼까?”
이전에도 떠올랐던 생각이었지만, 오늘은 유독 그 생각이 마음 깊이 자리 잡았다. 에세이를 쓰겠다는 목표를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었고, 그걸 위한 파일도 이미 만들어 두었지만, 첫 문장을 쓰는 건 늘 미루고 있었다. 시작은 두렵고 어렵다. 마음속엔 수많은 이야기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그것을 단 하나의 첫 문장으로 풀어내는 일은 마치 멈춰 있던 시계를 처음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어딘가 막막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묵혀둔 파일을 열고, 떨리는 손으로 첫 문장을 적었다. 글씨를 하나하나 눌러 적는 그 순간, 마치 오래 닫혀 있던 문이 서서히 열리는 것 같았다. 단순한 문장이었지만, 그것이 시작이었다. 시작이란 언제나 크고 거창해야 하는 게 아니었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것, 오늘 내가 떠올린 기억들에서 한 발 내딛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첫 문장을 적고 난 뒤, 나는 파일을 잠시 닫아놓고 가만히 그 여운에 잠겼다. 내 어린 시절, 그리고 지금의 내가 만나는 지점이 처음으로 생긴 듯한 기분이었다. 마치 그 문장 하나가 시간을 거슬러 다리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오늘은 비로소 내가 오래 꿈꾸던 에세이의 첫날이었다.
“기억은 희미하고, 조각나 있다.
하지만 그것들을 꺼내 본다는 것 자체가 어떤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걸 나는 안다.
어디까지 떠올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두서없이 써 내려가 보려고 한다.
52년을 살아왔다. 이쯤 되면 돌아봐야 할 순간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지나온 시간들을 정리하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채울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시작일지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의미라는 것은 시작을 붙잡고 꾸준히 밀고 나갈 때 생겨나는 법이니까. 흐릿하고 어딘가 불완전한 기억들을 꺼내 한 문장씩 적어본다.
그것이 언젠가 나라는 사람을 설명할 무언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으면서.”
1973년부터 시작한 내 인생 기록 중에서~~~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언제의 이야기부터 꺼내야 할지, 또 누구의 이야기를 가장 먼저 써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끝도 없이 얽힌 기억의 실타래를 푸는 작업은 생각보다 벅차게 느껴졌다. 그러나 오늘, 나는 이미 첫 문장을 적었다. 그 시작의 의미가 지금은 무엇보다 크다고 믿고 싶었다.
비록 막막함과 두려움이 뒤섞인 출발일지라도, 매일 조금씩 시간을 투자해 써보자는 다짐이 나를 붙잡아 주었다. 오늘을 계기로, 내게는 하나의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더 많은 에세이를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따라왔지만, 그마저도 나쁘지 않았다. 이제 내가 읽는 문장들은 단순히 흡수되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실마리가 되어줄 것이라는 생각에 한층 더 진지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늘 이 도전을 시작하면서 느낀 그 짜릿한 전율이 잊히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였다. 새로운 무언가에 발을 들이며, 내가 또 다른 나로 성장할 기회를 만들어냈다는 성취감이었다. 그 전율은 희미했던 나의 목표에 생기를 불어넣었고, '시작'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행복한 감정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은 감사를 느꼈다.
나는 이제 글로 시간을 엮어가기로 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그러나 매일 조금씩. 시작은 작았지만, 그것이 만들어낼 파장은 분명 내 삶에 또 다른 지도를 그려줄 것이라고 믿는다.
오후가 되어 아내의 퇴근 시간을 맞춰 부엌에 섰다. 오늘 저녁 메뉴는 간단하게 짜장. 돼지고기와 신선한 야채를 손수 볶아 간짜장을 만들면 더욱 그럴싸하겠지만, 아직 그런 수준의 요리 실력은 나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물론 언제나 나를 지켜주는 백종원 선생님이라는 든든한 존재가 있지만, 한 끼 식사를 위해 직접 짜장을 만드는 열정까지는 아직 생기지 않았다.
대신, 집 앞 반찬가게에 들러 짜장과 무채를 사왔다. 어제 어머니가 보내주신 생굴이 떠올라, 무채와 함께 버무려 곁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밥상은 생각보다 훌륭했고, 우리 세 사람은 따뜻하고 맛있는 저녁을 배불리 즐겼다.
6시에 저녁을 먹고 나면, 취침까지는 약 4시간 남짓. 남은 시간은 각자 자신의 공간에서 조용히 보내는 것이 어느새 우리 가족의 소박한 일상이 되었다. 저녁 식사 후 우리는 차 한 잔을 마시며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나누고, 사소한 이야기들로 웃음을 나누었다. 이렇게 하루를 함께 마무리하는 시간은 마치 아침 루틴처럼 자연스럽게 우리 가족의 새로운 약속이 되어가고 있었다.
퇴근한 아내는 소파에서 자신의 시간을 보내고, 막내는 저녁 식사 후 스터디 카페로 향한다. 그리고 나는 서재로 들어가 일기를 정리하거나 책을 펼친다. 이런 평범하지만 소중한 루틴이 가능하게 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결국 그 중심에는 내가 술을 끊은 결심이 있었다.
예전에는 술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던 시간이 이제는 가족과의 대화와 각자의 시간으로 채워졌다. 내가 내린 작은 결심 하나가 우리 가족에게 이렇게 큰 변화를 가져다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 변화가 가족 모두에게 더 따뜻하고 안정된 하루를 선물하고 있다는 사실이 금주를 결심한 내게 큰 보람으로 다가온다.
이제 나는 매일 저녁, 가족과 함께한 시간이 내 삶의 가장 큰 선물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 소소한 저녁의 풍경들이 내 삶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