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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남자 홍 씨는 왜 그날 아이에게 몸을 던졌나

기대에 부푼 그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by 이열 Jan 18. 2025

24일 목요일


목요일 아침, 홍길동 씨는 진정 밖에 나가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지만, 중요한 미팅이 있어 스스로를 다잡고 억지로 집을 나섰다. 불운이 다시 돌아왔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계단을 걸어 내려가야 했고, 횡단보도를 건너다 신호를 무시한 차에 치일 뻔했다. 회의에서 상사가 팀원들 앞에서 그를 심하게 꾸짖었다. 점심시간에는 커피를 쏟아 새로 산 정장을 망쳤다. ‘ㅆ 이건 말도 안 돼.’


퇴근길, 그는 골목에서 폐지를 담은 리어카를 끌고 가는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저 사람을 도와주면 이 불행이 끝나는 걸까?’ 마침 눈앞에서 수레에 실렸던 폐품이 와르르 쏟아졌다. 헐레벌떡 뛰어간 그가 할아버지와 함께 짐을 들어 올렸다.


“고맙습니다.” 홍길동 씨는 어딘가에서 찰랑이는 소리를 들었다. ‘신호다.’


놀랍게도, 그는 다시 평온한 밤을 맞았다. 그가 침대에 누워 중얼거렸다. “이제 그냥 받아들여야겠어.”



25일 금요일


오랜만에 상쾌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난 그는 거울을 보며 다짐했다. ‘작은 일이라도 계속해야 한다.’


출근길에 마주친 환경미화원에게 굉장히 어색한 목소리로 “수고 많으십니다.”라고 인사했다. 청소를 하다 고개를 든 아저씨가 웃으며 꾸벅 인사했다. 일찍 여는 빵집에 들러 팀원들에게 나눠 줄 간식거리를 샀다. 팀원들은 의아해했지만 이내 감사를 표현했다. 막내에게 시키던 휴지통 비우는 일도 자신이 직접 했다. 업무 시간 중에 부하 직원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가끔 화장실에서 만나면 쌩하니 무시하던 청소 아주머니에게 먼저 밝게 인사했다.


마치 퀘스트를 깨나 가 듯 선한 일을 이어가니 금세 몸에 배어 어색함이 많이 덜어졌다. 그는 이기적인, 자기중심적이었던 사람이었을 뿐 멍청한 사람은 아니었다.


직원들이 그의 변화를 의아하게 여겼다. 밝은 표정의 홍길동 씨를 보고 궁금함을 참을 수 없던 과장이 물었다. “부장님, 혹시 따님들 한국에 오신 거예요?”


“아냐, 지금 한창 시험기간 일 때야.” 그가 부드럽게 대답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구나, 휴.’ 홍길동 씨는 자신의 기분이 좋은 게 불운이 찾아오지 않아서인지 선한 일을 해서 그런 건지 잠깐 혼란스러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가 세탁소에 들렀다. 사장에게 처음으로 밝게 인사를 했다. 뚱한 표정으로 홍길동 씨를 맞이한 세탁소 사장이 놀라 어색하게 인사를 받았다. 그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문이 닫히려는데 공동현관에서 사람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는 홍길동 씨에게 이웃 주민이 감사함을 표현했다. 홍길동 씨도 자연스럽게 미소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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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토요일


아침에 그는 공원 산책을 나섰다. 발걸음이 산뜻했다. 멀리서 웃고 떠드는 아이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부모들의 모습을 보며 잠시 감상에 젖었다. ‘지수랑 재이가 보고 싶다.’ 두 딸은 영국에서 유학 중이었다. 아내가 그녀들을 돌봤고, 홍길동 씨는 한국에서 기러기 아빠 생활을 했다.


그의 앞으로 축구공이 굴러왔다. 달려오는 아이에게 웃으며 공을 건넸다. 아이가 꾸벅 인사하더니 다시 친구들에게 돌아갔다. 마음 한구석이 촉촉했다.


공원 한 편에 버려진 쓰레기를 발견하고는 영차 하며 주워 쓰레기통에 넣었다. 주머니에 손을 꼽고 걸어가다 안면이 있는 이웃을 만나 그녀에게 밝게 인사했다. 아주머니는 멈칫하다가 어색한 미소로 인사를 받았다. 동네 가게에 들러 물건을 사고 나오며 주인에게 “많이 파세요.”라고 이야기했다.


‘좋은 아침이로구나.’ 홍길동 씨의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저녁에 딸들과 영상 통화를 했다. 화면 너머 아이들은 아빠의 변한 모습을 대번에 눈치챘다. “아빠, 웬일로 얼굴 좋아 보이네?”, “니들 얼굴 오랜만에 봐서 그렇지.” 홍길동 씨는 행복했다. 얼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던 마음이 어느새 녹아 잔잔하게 일렁이는 것 같았다. “사랑한다, 우리 딸들.”, “으, 아빠 뭐야. 징그러.”


기분 좋게 통화를 마치고, 홍길동 씨는 침대에 누워 하루의 여운을 즐겼다. ‘내일은 또 무얼 해볼까?’ 기대에 부푼 그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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