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선택의 연속
집 근처 육아지원센터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블록 쌓기 프로그램에 신청했습니다. 당일날 가서 복지카드를 내밀었더니 직원이 당황하더니 내규를 확인해 보고 따로 나와서 하는 얘기가,
“특수교사가 없기 때문에 받아줄 수가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나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미 아이는 신발과 양말까지 벗고 들어가서 탐색하는 중이었는데 불려 나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따지고 싶었으나 아이가 보는 앞이라 화를 억누르고 다음부터는 명확히 공지해서 헛걸음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하고 아이 손잡고 나왔습니다.
사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닙니다. 1:1의 상황도 아니고 다른 아이들과 함께 하다가 혹여나 생길 수 있는 사고에 대비하기 위함이겠지요. 하지만 복지카드를 발급받은 후에 처음으로 공공복지 시설에서 거절당할 수 있구나라는 것을 경험하고 충격에 빠지긴 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다니다 보면 가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혹은 사람으로부터 거절당하거나 혹은 회피하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그동안 잘 유지했었던 평정심이 정말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사실 이건 쉽사리 둔감화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엄마인 제가 이겨나가야 하기에 빨리 그 구렁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이런 거절이나 회피의 경험을 겪으면서 나름 터득한 대처법을 적어봅니다.
그럴 수 있지
상대방이 고의든 아니든 내 아이를 거절할 것 같으면 저의 예전 모습을 그려봅니다. ‘내가 그때 저 자리에 있었다면 똑같이 하지 않았을까?’ 아니, 더 나쁘게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대부분은 나쁜 의도는 없는 행동이나 말이지만 듣는 입장에서 스스로 더 부풀려서 생각할 수 있으니 혼자 소설 쓰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부정적인 의식의 흐름을 끊어내자
이런 스트레스의 상황에 닥쳤을 때 맥주를 좋아하던 예전의 저는 분명 괴로운 현실을 잊고자 도피를 택했을 것입니다. 자폐 진단이 나오고 일을 그만둔 이후에 술을 끊다시피 했습니다. 회사를 안 나가니 술 마실 일도 줄어들고 이상하게 술 자체가 당기지 않았습니다.
자꾸 어두운 굴 속으로 들어가려는 본능을 끌어내어 주변을 볼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이때 저를 때린 말 중에 하나가 정회일 작가님이 말씀하신 ‘긍정적 역세뇌’라는 말이었습니다. 부정적인 인풋으로 쉴 새 없이 노출되는 우리 자신에게 그것 이상으로 긍정적인 정보를 투입하는 ‘역세뇌’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독서를 거의 안 하던 제가 1주일에 1-2권의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멋지고 아름답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같은 책들을 읽다 보면 내 상황에 함몰되어서 지나친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었습니다.
내가 만약 이렇게 했다면?
대부분 거절당했을 때의 1차 반응은 분노입니다. 하지만 되돌이켜보면 부끄럽고 부질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순간적인 감정에 휩싸이는 것보다 차라리 바로 대안을 생각해 보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예를 들면 거절당한 육아지원센터에서도 ‘혹시 그럼 제가 같이 들어가서 아이를 볼 수 있을까요?’라고 제안을 했다면? 물론 그럼에도 거절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최선을 다했으니 안되면 그만입니다.
어차피 제 선에서 해결되지 않으면 부득이하게 아이에게 그 나쁜 기운이 퍼져나가기 마련입니다. 매 순간 우리의 인생은 선택인 것 같습니다. 독기 품은 한 많은 파이터가 될 것인가 아니면 현명하게 대처하고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아는 멋진 엄마가 될 것인가.
“수용소에서는 항상 선택을 해야 했다. 매일같이 매 시간마다 설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 그 결정이란 당신으로부터 당신의 자아와 내적인 자유를 빼앗아가겠다고 위협하는 저 부당한 권력에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판가름하는 것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