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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희랍어 시간>을 끝으로

노벨문학상 작품과는 잠시 안녕하겠습니다.

by 뉴욕사서 Feb 20. 2025

지난 세 달 동안 한강 작가님의 책을 그야말로 꾸역꾸역 읽었다.


<소년이 온다>, <희랍어 시간>,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은 내내 한강 작가님과 동행한 느낌.


작년 10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소식이 전해졌을 때, 나를 포함한 많은 국민들이 한강 작가님의 책을 모두 다 읽으려고 했으리라. 그 누구도 예상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에 더 많은 책들을 인쇄하기 위해서 주말까지 반납하고 인쇄소들은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는 소식이 뉴욕까지 들렸으니.


우려했던 거에 비해 책들이 도서관에 빨리 들어왔다.

이제 읽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선뜻 손이 안 갔던 건 왜였을까. 지금 생각해 보니 책을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수년 전에 <채식주의자>를 읽었을 때의 그 충격적이고 묵직했던 느낌을 몸이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하지만 내가 읽는 책은 도서관 책이라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분을 위해 얼른 읽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커버가 마음에 들었던(내용은 전혀 달랐음) <작별하지 않는다>를 집어 들었다. 그다음으로 <소년이 온다>와 <희랍어 시간>을 올해 북클럽 책으로 정한 나를 원망 아닌 원망을 하며 다 읽어 냈다.


3개월 동안 한강 작가님과 뭔가 끈끈해진 느낌을 받았지만 결코 나에겐 읽기 쉬운 책들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내용들이 2024년 연말, 연초에 벌어지는 슬프고 안타까운 소식들이 얽히고설켜 있어 나같이 읽은 후에 후유증을 겪고 있는 사람을 여럿 만났다.


<희랍어 시간>은 삶이라는 벽 앞에서 말을 잃은 여자와 육체라는 벽 앞에서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가 ’ 희랍어 시간‘을 통해 만나 상처받은 두 영혼의 치유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책에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을 인용한 부분이 나온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이 말을 인용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불행할 수 있는 이유는 너무도 많구나. 돈이 없어서 불행할 수도 있고, 몸이 불편해서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어서 일수도 있고..


이 책에서 나오는 두 주인공은 엄청나게 불행하다.


여자는 이혼을 하고 자식을 남편에게 빼앗기고 언어까지 잃어버린다. 남자는 자신의 눈이 언젠가는 먼다는 사실을 안고 살아간다. 이 두 사람의 접점은 무엇이 될 수 있나. 말을 못 하는 사람이 눈이 안 보이는 사람과 수화로 대화할 수도,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이 말을 못 하는 사람과 말로 대화를 할 수가 없다. 이 들 둘에게는 서로의 벽이 하나씩 있다. 그런 그들이 만났고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서로의 결핍을 통해 상처를 치유한다.


행복한 가정의 모습이 모두 비슷한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까. 불행해지는 데는 무수한 이유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각각의 불행을 치유할 수 있는 건, 인간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 애정과 사랑일 테다.


책을 읽으면서도 스스로 반성도 많이 하고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성찰의 시간도 가졌다. 가까운 사람에게, 늘 거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고마워해야 하는 게 맞는데 오히려 그러지 못하는 나를 반성하고..


한강 작가는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여러 책을 썼지만 결국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내가 살면서 무엇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지,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이해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리고 그게 ‘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가 아닐까 싶다.


한강작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유가 너무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좀 쉬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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