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전국 기온이 뚝 떨어졌다.
드디어 한반도에 겨울 시그널이 왔다. 여름 날씨가 치열하게 무덥고, 가을 단풍이 황홀해도, 지구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공전궤도를 시속 10만 킬로로 달리며 계절을 만든다. 지금은 지구가 태양과 아주 멀리 떨어져서 달리고 있는 것이다.
영하의 온도로 떨어진 새벽 기운이 구룡산 산길을 얼음처럼 딱딱하고 차갑게 만들었다. 마음을 다잡고, 신발을 벗고, 신발을 허리 배낭에 맸다. 발바닥에 걸리는 돌과 바위들이 차갑고 거칠게 느껴지고, 딱딱해진 땅과 차가운 기운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올해 처음으로 맨발에 오는 강한 압박감이다.
티셔츠와 조끼 차림으로 집에서 나왔는데, 제법 찬바람이 몸을 오싹하게 만든다. 거리의 사람들은 벌써 패딩으로 꽁꽁 몸을 싸맸다. 갑작스러운 추위에는 그럴 필요가 있다. 우리 몸이 아직 겨울 환경에 적응하기 직전으로 몸을 따뜻하게 감싸야한다.
환절기에는 겨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몸이 바이러스에 취약하다. 전국에 독감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나 보다.
산길에는 솔입과 참나무등의 낙엽들이 양탄자처럼 언 땅을 덮고 있다. 여름내 광합성 활동으로 생명을 살린 후, 전사자처럼 땅 위에 쓰러져있다. 그 낙엽 시체위를 밟으며 내 발은 온기를 느낀다.
늦가을 햇빛은 사선으로 가늘게 비치며, 뼈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줄기의 그림자를 숲 깊숙하게 이어 놓는다.
이 시기는 대자연이 겨울 생존을 위해서 버리는 작업을 하는 계절이다. 나무 끝에 매달려 있는 이파리들도 세포 작용이 완전히 소멸된 후 검고 누렇게 변했다. 찬서리가 내리면 모두가 땅으로 떨어질 것이다. 먹을 것도 없고, 햇빛도 연약해진 겨울에 나무는 더 이상 먹여 살릴 수 없으니 스스로 구조 조정을 하는 것이다.
아직도 욕망의 덩어리가 일어난다. 건강과 미래에 대한 걱정, 경제적 활동에 대한 욕구등이 가끔씩 스멀스멀 피어난다.
최근 삶의 루틴이 자주 무너진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TV를 보지 않겠다고 했던 각오도 자꾸 무너진다.
삶의 걱정 근심을 잠재우려면, 삶을 간결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삶의 활동을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게 시계처럼 정형화시키면 간결해질 것이다. 그냥 지구가 태양을 돌듯이 묵묵하게 계획을 실천하면 되는데, 게으름과 욕망이 삶을 자주 무너뜨린다.
늦가을 대자연처럼 버릴 것은 버리고, 더 이상 욕망의 광합성 작용도 멈춰야 한다.
추운 겨울을 대비해서 서릿발처럼 나를 세워야 한다.
게으름을 추구하는 마음 작용으로 루틴이 무너진 오늘 아침, 집에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춥지만 가벼운 옷차림과 맨발로 서늘한 땅과 차가운 공기를 맞서니, 정신은 다시 물결에 반짝거리는 빛무늬처럼 반짝거린다.
능선길에 바람이 벌써 날카롭다. 바람의 방향을 보니 북풍이다. 산길 옆에 북풍에 밀려, 낙엽이 수북이 쌓였다. 발로 밟아 보니, 발목까지 차고 바스락 거리며 부서진다.
여름내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우거졌던, 수없이 다양하고 많았던 잡목과 풀들이, 이미 자취를 감췄다.
산기슭은 발가 벗겨졌고, 그 위로 흑갈색의 낙엽들이 가득 쌓였다.
이젠 텅 빈 공간들이 줄기와 가지 사이로 더욱 넓어져서, 바람의 놀이터가 되었다.
여름에 산길은 우거진 숲으로 덮여 있다. 그래서 무성한 가지와 가지마다 달린 녹색의 이파리들이 강한 햇빛을 차단하여 그늘을 만들어, 덥지 않고 시원한 느낌이 인다.
하지만 나무가 없는 능선길 중간중간 강렬한 햇빛이 직접 살결에 닿으면, 온통 세상이 햇빛 투성이라는 짜증이 인다. 사이사이 아주 작게 부딪치는 햇빛이 성가시고 귀찮게만 여겨진다.
지금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고, 이미 이파리들도 많이 떨어져, 온통 햇빛이 빈 공간들을 가득가득 쌓여서, 나무줄기 그림자 절반, 가늘고 연약해진 햇빛 절반인데, 햇빛이 어디 갔는지 도통 보이지 않고, 차가운 그림자 투성이라는 느낌이 인다.
얼마나 간사한 마음인가? 여름에는 5%의 햇빛이 100%로 느껴지고, 겨울에는 50%의 햇빛이 5%로 여겨진다.
내 몸은 정상까지 올랐는데도 아직도 찬공기에 움츠려 들어, 손발은 시리고 땀조차 흘리지 않는다. 아직 배낭 속에 담은 물을 꺼내지도 않았다. 지난 한 여름 폭서가 있던 날, 이곳을 오르는데 비 오듯이 쏟아지는 땀과 헉헉대는 숨에 여러 번 멈췄지만, 오늘은 전혀 멈추지 않고, 가볍게 올랐다.
산은 여름에 타는 것보다, 가을과 겨울에 오르는 것이 더 쉽다. AI에게 물어보니 다음과 같이 답한다.
체온유지가 운동을 도와준다. 사람 몸은 걷기만 해도 열이 생긴다. 한여름에는 이 열을 식히느라, 에너지를 소모하지만, 겨울에는 이 열이 그대로 체온 유지 역할을 하면서 에너지 낭비를 줄인다. 겨울에는 똑같은 경사라도 호흡이 덜 차고 다리는 가볍다.
인간도 어쩔수 없는 생명체이고 자연법에 종속된다.
겨울에는 심박수 상승이 억제된다. 여름에는 10분만 걸어도 땀이 폭발하고 심박수가 금방 150까지 치솟는다. 겨울에는 같은 속도로 걸어도 심박수는 훨씬 낮게 유지된다. 몸의 피로 신호가 덜 들오니 체감 난이도는 한 단계 낮아진다.
땀 스트레스가 적어 지친 느낌이 줄어든다. 겨울에는 땀이 나도 빠르게 식거나 증발하면서 몸이 과열을 막기 위해 고생하지 않는다.
맑은 공기 넓은 시야로 정신적 피로가 급격히 낮아진다. 시야가 넓게 트이면 뇌는 안전하고 안정된 환경으로 인식하고 몸 전체의 긴장도가 낮아진다.
그렇지만 겨울등산에 주의할 점도 있다. 겨울산에서 가장 흔한 실수는 처음부터 빨리 걸어서 땀을 과하게 내는 것이다. 땀이 증발하면서 체온을 빼앗아 저체온 직전 상태까지 떨어진다. 초반에는 천천히 호흡이 안정될 때까지 느리게 걷는 것이 원칙이다. 하산할 때는 옷을 좀 껴입고 내려오는 것이 몸에 좋다.
또 면티셔츠처럼 땀을 흡수하는 옷은 겨울 산에서는 독이다. 땀이 식는 순간 냉기가 몸을 파고든다. 겨울 등산은 두꺼운 하나 보다 얇은 옷 두세 겹을 입고, 필요하면 옷을 하나씩 벗는 레이어링 원칙이 중요하다. 그래서 겨울 등산 배낭은 크면 좋다.
겨울 등산에서 추우면 목이 안 마르다고 착각해서 물을 덜 마시지만, 그러다 보면 탈수증이 찾아와서 근육 경련 집중력 저하, 저혈당성 피로가 이어진다. 물을 조금씩 자주 마셔야 한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대학 동기들과 청계산 산행을 했다. 여러 명이 모처럼 산행을 해서 즐거웠지만, 혼자서 산행하며, 사색하는 재미는 없는 듯하다. 대학동기 중에 산행 고수가 있다. 그는 지금까지 거의 2000번 이상 산행을 한 듯하다. 대기업 대표이사를 하면서, 평일에는 새벽에 일어나, 북한산을 올라갔다 내려온 후 출근을 하고, 주말에는 아주 먼 산까지 간다고 한다.
암을 치료한 후 산행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산행을 하고 있다. 역시 시련은 인간을 강하게 만든다. 물론 시련을 겪는다고 해서 모두가 강인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선택의 문제일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크게 아파본 적도 사고를 당해서 다친 적도 없다. 물론 수술을 받은 적도 없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삶의 루틴을 정하고도 매번 무너진다.
올해는 북한산 조차 멀리 느껴지고, 주로 집 근처 맴돌기 수준이다.
다시 추슬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