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직업인 이유
기억에 강하게 남은 사건 위주로 쓰다 보니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너무 부정적으로 보인 것 같다. 오늘은 좋았던 점!
일 자체가 재미있다.
특히 포스터같이 강렬한 비주얼을 만들어 내는 작업을 하다 보면 내가 진짜 창조적인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몇 개의 단어로 된 개념을 시각적으로 구현해 내는 일은 과정만으로도 재미있다.
어떤 상징과 은유를 만들 것인지, 그걸 얼마나 직접적으로 표현할 것인지, 어떤 복선을 깔고 어떻게 세계관을 유추하게 할 것인지 이런 생각을 하며 작업하다 보면 내가 꼭 한 편의 시각적 문학작품을 만드는 것 같다.
반면에 클라이언트의 말을 해석하고, 여러 협업자와 소통하고, 사용자에 입장에서 생각하고 분석하는 일은 상업적인 활동이다. 사실 작업 중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어떻게 하면 디자인이 매출에 좋은 영향을 미칠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디자인이 재미있다. 예술적 과정과 상업적 과정이 모두 섞여 있기 때문이다.
시각적 감각이 예민해졌다
디자인을 하기 전에는 잘 몰랐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타이포그래피가 그랬는데 전에는 다 똑같아 보였던 고딕체가 다 달라 보였을 때, 적절한 자간과 행간을 찾기 위해 몇 번씩 시뮬레이션해볼 때 내 눈이 예민해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타이포그래피 책을 찾아보면서 이런 차이들이 생각보다 무척 과학적, 역사적이어서 재미있었다. 흰색도 다 똑같은 흰색이 아니고, 검정도 무한에 가까운 수의 검정이 있으며 내 디자인엔 어떤 검정이 좋을지 고민하는 순간도 좋았다.
여러 사람들에게 빠른 피드백을 받는 것
나는 극 내향인이라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 스트레스도 많다. 특히 일의 특성상 여러 분야의 사람들에게 빠르게 평가받는 일이 많아서 더 그렇다. 디자이너들의 의견뿐만 아니라 기획자, 마케터, 대표, 나아가서는 최종 사용자까지 디자인에 대해 직관적으로 판단을 내린다.
내 디자인을 설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디자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듣는
것도 중요하다. 무조건적으로 그들의 의견을 수용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그들의 다양한 상황과 심리에 대해 시선을 확장시킬 수 있다. 그건 다른 어떤 일을 할때도 큰 도움이 된다.
그 무엇보다 좋은 것은 이거다.
내 디자인이 세상에 나온 모습을 보는 것
프리랜서로 첫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였다. 한 페스티벌의 디자인을 했을 때였는데 몇 달 동안 매달렸었다. 마지막 디자인을 내보낸 후 그 페스티벌을 찾아갔는데 공원 곳곳이 내가 만든 디자인으로 가득했다. 몇 달간의 피로가 싹 없어질 만큼 벅찼다.
ps. 소소하게는 이런 것도 좋았다.
단정하게 정리해서 주고받는 이메일, 서로의 일감을 줄여주기 위한 배려, 일이 끝난 후 협력자들과 주고받는 감사 메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