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일을 하면서 종종 외롭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처럼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직장인이 아니라 대화가 통하는 동료가 없기 때문이다.
잠깐이지만 나도 조직에 소속되어 일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하는 일은 틀리지만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여자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통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홍보를, 나는 글 쓰는 일을 했는데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힘든 순간마다 위로를 해주고는 했었다. 특히 점심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느라 웃음꽃 피었던 순간이 종종 떠오른다. 15년이 지난 추억을 떠올리는 것을 보니, 좋았던 시절임에 틀림없다. (지금 나는 친구와의 수다가 너무 고픈 상태인 것일까?)
프리랜서로 혼자 일을 찾고 그 일을 해내느라 고군분투 해온 나는, 일에서 오는 그 어떤 감정도 공유할 사람이 없다. 일을 잘 해냈을 때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사람도 없고, 잘못되었을 때 괜찮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없으니 말이다. 직장 다니며 월급 받는 남편은 이런 나의 속도 모르고 자유롭게 일함이 부럽단다. 회사에서 월급 받으며 일하는 그 심정도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입을 다물어버린다.
그때였다. 제이에게 전화가 왔다. 제이는 3년 전, 만난 두 살 어린 친구다. 당시, 누군가 지역 맘 카페에 '작가 지망생들 모임'을 주선했고 정말 큰 용기를 내어 나간 적이 있었다. 그때 제이를 만났는데, 처음에 제이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관찰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어떤 알 수 없는 느낌이 있었다. 제이가 결국은 나를 좋아할 것이라는 사실을.
제이가 나를 관찰한 이유는 나의 종교 때문인 것 같았다. 훗날 알고 보니, 제이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성장한 사람이었는데 이런저런 일들로 상처가 많았다. 그런데 뒤늦게 하나님을 만난 나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통해, 나 또한 제이가 알고 있는 위선적인 종교인은 아닐까 탐색했던 것이다. 이를 알게 되었을 때, 적잖이 당황했지만 곧 이해가 되었다. 나 또한 34년 동안 기독교인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던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마음도 이해가 되었기에, 제이를 잠잠히 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제이가 결국은 나를 좋아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의 근거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제이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현재는 오히려 기독교를 배척하는 편에 섰지만, 그 깊은 마음속에는 다시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열망이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제이와 나는 작가 지망생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기독교 이야기 외에 할 말이 많았다. 제이와 내가 한 번 전화 통화를 하면 2시간 이상 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사실 나는, 누군가와 통화할 때 15분을 넘겨본 적이 없다. 아무리 친한 친구와 시시콜콜한 농담을 신나게 해도 30분 이상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런 내가, 제이와는 참 할 말이 많다. 서로 티카 티카 말을 주고받으며 '내가 더 할 말이 많다'는 듯, 다음 말을 준비할 정도로 말이다.
제이는 나와 다른 인생을 살아왔고, 다른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에 대한 관심 그리고 좋은 작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있어 할 말이 많다. 나보다 나이가 어리기도 하고, 괜히 나의 감추고 싶은 면이 드러나 제이가 하나님을 더 멀리 하는 계기가 될까 봐 조심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제이가 먼저 손 내밀어 연락을 해주니 나도 모르게 제이의 두드림에 마음이 열려버렸다. 제이는 최근 극심한 우울 증상에서 빠져나와 다시 글 쓰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고 했다. 나 역시 작가로서 이렇다 할 작품을 내놓지 못함에 슬퍼하다가 최근에는 책 쓰는 일에 빠져 있다. 그래서 나는 제이와 공유할 말들이 참 많다. 여태껏 나와 같은 꿈을 가진 사람과 이토록 길게 소통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늘 제이와의 소통이 기다려진다. 그리고 정말 간절히, 나의 성공적인 작가 인생을 바라듯 그녀의 성공적인 작가 데뷔를 바라게 된다.
프리랜서로 글 쓰는 일을 하며 깊이 소통할 사람이 없음에 허탈해하던 나는, 제이와 일 년에 서너 번 소통으로도 마음의 갈증이 해소되는 기분이다. 인간은 정말 혼자 살 수 없는 것 같다. 곁에 가족만 있어도 아무 문제없이 살 것 같은데, 이처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그 누군가를 찾게 되니 말이다. 무엇보다 내가 제이와의 소통을 좋아하는 이유는, 제이가 나를 살려주는 말을 잘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재능이 없으니 여기서 포기할까' 물어보면 제이는 몇 번이고 놀라며 나를 응원해준다.
"작가님, 작가님 포기하지 마요. 작가님 잘 쓰잖아요. 재능 있어요. 그걸 왜 몰라? 조금만 더 힘을 내요. 할 수 있어요."
나는 제이가 응원해주는 말이 좋아서, 통화할 때마다 징징댄다.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제이의 응원을 받고 싶어지나 보다. 그리고 진심으로 제이가 좋은 작가가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