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마음 영혼이 조율된 삶
처음 건강 리셋 버튼을 누를 때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면(예를 들어 건강한 식단만 엄격하게 따르면), 건강이 완벽하게 세팅되고 활기찬 새 일상을 선물 받을 줄로 착각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무엇이든 못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3화에 쓴 '직업 리셋' 버튼은 '건강 리셋' 버튼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귀담아듣기로 선택했고 그 후 빈번하게 건강 리셋 버튼을 누르며 살았다.
하지만 아무리 리셋 버튼을 꾹꾹 정성스럽게 눌러도 완벽하게 건강한 상태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완벽한 건강이라는 것이 신기루라는 걸 한참 후에야 알았다. 우리 몸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동감 있는 생명력 그 자체이기에 고정불변의 건강한 상태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10년 간 숱하게 건강 리셋 버튼을 눌러온 결과, 지금은 적당히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살고 있다. 어떨 땐 좀 피곤하고 어떨 땐 생기 넘친다. 어떨 땐 통증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병원이나 약의 도움 없이도 알아서 사라진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병원이 필요 없어졌다.'라는 거만하고 어리석은 마음은 전혀 아니고 웬만한 증상은 스스로 알아차리고 돌보면 치유된다는 걸 알기에 건강에 대해 염려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지금은 목표로 하는 어떤 상태에 몸과 마음을 도달시키려는 시도에서 손을 떼고 생명력의 흐름에 맞춰 리듬 있게 살고자 한다. 나는 이러한 삶을 몸 마음 영혼이 조율된 삶이라 부른다.
<건강 리셋 버튼> 2016 ~ 현재
01 마음 리셋 - 12주간의 내면글쓰기
02 몸 리셋 - 7일간의 포도단식과 레몬관장
03 몸 리셋 - 자연식물식 공부와 실천
04 몸 마음 리셋 - 건강자립 공부와 실천
05 몸 마음 영혼의 조율 (현재 진행형)
건강 리셋 과정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를 찾아줘>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30년 가까이 내 몸의 상태를 오롯이 병원에 의존하고 살았기 때문에 중심 잡고 스스로 일어서는 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여러 번의 부작용과 과도기도 겪었다.
자연식물식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는 건강 강박이라는 부작용에 시달렸다. 육식을 하지 않는 비건식에 가공식품도 먹지 않았기 때문에 음식을 먹는 모든 과정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살았다. 물론 자연식물식을 실천하며 살이 빠지고 만성피로가 사라지고 만성적인 편두통과 위염도 사라지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1년 정도는 꽤 만족스러운 생활을 유지했다. 하지만 음식에 제한이 많으니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가 불편했고 매 끼니를 손수 만들어 먹어야 하니 몸과 마음도 조금씩 지쳐갔다.
지금 돌아보면 몸을 해부학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몸속의 찌든 때를 남김없이 씻어버리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다행히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고 몸도 생리를 멈추며 나의 지나친 엄격함에 반기를 들었다. 그리고 나는 순순히 몸과 마음의 의견을 반영하여 강박을 내려놓기로 선택했다. 건강을 위해 공부하고 실천하는 것인데 그 노력이 건강을 해친다면 지속할 이유가 없었다.
이후에는 건강자립을 공부하고 실천하며 지냈다. 이 과정에서는 몸의 전체적인 면역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감기에 거의 걸리지 않게 되었고 감기 증상이 있어도 하루이틀 푹 쉬면 의학적 도움 없이 스스로 깨끗하게 나았다. 한번 감기에 걸리면 약을 먹어도 한 달씩 증상이 지속됐던 과거는 싹 털어냈다. 반갑게도 생리를 다시 시작했고 그 후로 4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매달 일정한 주기로 맞춰가고 있다. 주기가 늘 들쑥날쑥하고 3~4달씩 건너뛰기도 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확실한 변화였다.
가장 크게 변화한 건 나의 마음가짐이었다. 몸을 고쳐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 몸은 내가 애쓰지 않아도 알아서 호흡하고 소화시키고 치유한다. 그러한 몸의 생명력을 존중하고 생명의 에너지가 자유롭게 흘러갈 수 있게 한다면 몸은 스스로 치유하는 힘이 있다는 걸 몸소 실천하며 배웠다.
하지만 이후에도 또 한 번의 부작용과 과도기가 있었는데, 몸에게 모든 해독과 치유 과정을 떠맡기고 막(?) 살았다. 사실 이 부작용은 과도하게 엄격한 식단을 유지했던 시간으로 인한 것이기도 했다. '그래, 마음 편한 게 최고지. 내 몸이 알아서 할 거야.'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건강 리셋 버튼을 손에서 놓아버렸다. 매일 커피를 두어 잔씩 마시고 치킨도 일주일에 두어 번씩 먹고 귀찮을 때마다 습관적으로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음 편하자고 선택한 생활인데 마음이 전혀 편안하지 않았다. 내 몸을 방치하는 느낌, 삶의 중요한 부분에서 주체성을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꽤 그럴싸한 완성형의 건강을 얻었다고 자부했으나 이번에는 게으름의 늪에 빠져 또 한 번 한심한 나와 마주해야 했다. 다행히도 그동안의 건강 리셋 과정을 통해 몸과 마음을 돌보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고 기본적인 면역력도 올라간 상태이기 때문에 과거의 만성질병이 다시 도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뒤로 일보 후퇴할 뿐 모든 게 물거품이 되는 일은 없었다. 프롤로그에 쓴 것처럼 '리셋 버튼은 처음으로 돌아가는 초기화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재조율 하고자 하는 태도'이므로, 지금부터 다시 조율하며 나아가면 그뿐인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은 비건식은 하지 않지만 유연한 자연건강식을 추구하며 살고 있다. 외식할 때는 자유롭게 먹고, 집에서는 깨끗한 식재료와 조미료로 요리해서 먹는다. 극단적으로 깨끗한 식단을 고수했던 시절에 터득한 감미료 없이도 맛있게 요리하는 방법은 지금의 유연한 식생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또, 몸을 따뜻하게 하고 자주 걷고 제때 쉬고 충분히 잔다. 매일 가볍게 뛰며 땀을 내고 글을 쓰며 감정을 흘려보낸다. 내가 좋아하는 산책과 독서는 빼놓지 않고 챙기고, 목적 없이 재밌게 노는 것도 잊지 않는다.
잘 먹고 잘 움직이고 잘 쉬고 잘 자며, 몸 마음 영혼을 조율하며 살아가고자 한다. 가뿐한 몸, 고요한 마음, 즐거운 영혼이 조화를 이룰 때 삶에서 기쁘고 만족스러운 순간이 늘어난다.
편안한 마음은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사는 태도가 아니라 주도적으로 나를 돌보기로 책임지고 행동할 때 자연스럽게 솟아난다. 그리고 그럴 때라야 삶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나를 잘 돌봐주고 있다고 느낀다.
몸과 마음을 리셋하는 과정 그 자체도 어렵고 힘들었지만, 그보다 더 혹독했던 건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는 일이었다. 비건을 실천할 때는 가족들 조차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남편은 자유롭게 식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남편을 불쌍하게 여겼고 어른들은 대놓고 나를 나무라기도 했다. 친척들은 내가 비건을 멈춘 지 4년이 지난 지금도 밥을 먹을 때면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너 이제 고기 먹니? 나 그때 너 진짜 또라이인줄 알았잖아."
사람마다 타고난 몸과 마음의 기질이 다르다. 단편적으로 아무거나 먹어도 건강한 사람이 있고 남들보다 잘 챙겨 먹어도 잔병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다. '왜 쟤는 아무거나 먹는 것 같은데도 건강한 거야?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라는 마음은 내려놓아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 몸과 마음에 관심을 갖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나와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내가 편안한 방향으로 조율하며 나아가는 것이다. 누가 어떤 식단이 좋다고 해서 맹신하는 게 아니라 그 방법이 정말 내 몸에도 좋은지 스스로 판단해 보는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누가 하는 운동이 멋있다고 해서 무리해서라도 따라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운동을 경험해 보고 나에게 활력을 주는 운동을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가 시행착오를 겪는 걸 가만두지 않았다. 나를 너무 사랑해서일까. 나 대신 나로 살아줄 것도 아니면서 무슨 권리로 나를 비난한단 말인가. '그냥 나를 좀 내버려 두라고!' 소리치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너는 너 먹고 싶은 거 먹어. 나는 나 먹고 싶은 거 먹을게 좀!' 왜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까지 검열받고 남들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인지, '밥을 먹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우리 사회의 문화가 그때는 참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나를 오해할 권리가 있고 나는 해명할 의무가 없다'라는 말을 되뇌었다.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는 것에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절실히 경험했고, 그 경험은 은근히 짜릿했다.
그리고 남탓하기 전에,
우리는 나부터 나를 좀 내버려 둘 필요가 있다.
나를 좀 그냥 내버려 두자. 숨 좀 쉬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