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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아론 Dec 17. 2021

[내담자 치료 일기] 8화 모든 걸 다 해주는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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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현정동장애(조현병+조울증) 진단을 받은 내담자가 직접쓴 글입니다.

1화부터 보셔야 내담자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aronsong/511

(1화)

https://brunch.co.kr/@aronsong/512

(2화)

https://brunch.co.kr/@aronsong/514

(3화)

https://brunch.co.kr/@aronsong/516

(4화)

https://brunch.co.kr/@aronsong/517

(5화)

https://brunch.co.kr/@aronsong/518

(6화)

https://brunch.co.kr/@aronsong/520

(7화)




부모님이 사과하셨지만 내 입장에서는 여전히 사과만 하셨을 뿐 나에 대한 예전 사고방식을 그대로 갖고 있을 거 같아 편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예전 사고방식이란 예를 들면 나는 공부를 잘해서 좋은 직업 얻어야 한다. 네가 잘해야지 왜 내 탓을 하느냐. 부모로서 그 정도 희생은 당연한 거 아니냐. 를 말한다.


그래서 부모님이 예전 사고방식이 드러나는 듯한 말을 할 때마다 나는 갑자기 예민해지고 격하게 화를 냈고 그때마다 집안 분위기는 싸해졌다.


학교 문제에 관해선 특히 심했다. 부모님은 내가 남들보다 뛰어난 무언가가 되기보다는 대학교 졸업은 해야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내가 대학 졸업장으로 남들보다 더 대접받길 바라는 마음은 오래전에 포기했고 이제는 최소한 남들 만큼이라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부모님이 학교 얘기만 하면 옛날에 공부하라고 닦달했던 때가 오버랩되었다. 부모님이 여전히 자기의 기준을 강요하는 것만 같아 울분이 터졌다.

아니, 나는 부모님이 이제 나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그저 건강하게만 살길 바라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건강함의 기준이 학교를 다니는 것이라는 전제만으로도 열불이 나 견디기 어려웠다.


부모님이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도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기제였다. 엄마가 옆에서 일일이 밥 뭐 먹을 거냐고 물어보면 좋던 기분도 갑자기 가라앉았다. 그렇게 여러 번(매끼마다 몇 년 이상) 물어봤으면 나는 내가 먹고 싶은 건 내가 알아서 챙겨 먹는다는 걸 차츰 깨달을 법도 한데 엄마는 계속 물어봤다. 


"미역국 먹을래?" 

"아니." 

"오징어볶음은?" 

"아니." 

"볶음밥 해줄까?" 

"아니." 


이런 식으로 메뉴를 바꿔가며 계속 물어봤고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다 큰 성인이 자기가 원하는 건 자기가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옆에서 여전히 어린애 떠받들듯 다 해주려 하는 그 태도만으로도 껄끄러워서 피해 다니고 싶었다.


몇 년 동안이나 의미 없는 짓을 반복하는 엄마를 보면 생각 자체를 안 하는 사람 같았다. 사소한 변화도 귀찮거나 두려워하고 도망가고 싶어 하는 엄마의 성격이 드러나는 듯해서 더 싫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자기 의지가 없는 사람으로 보였다. 아버지는 한 번도 자기가 원하는걸 가족들한테 직접적으로 제안해본 적이 없었다. 제안할 때는 항상 자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고 했다.


아버지가 정말로 다른 사람만 위하는 마음뿐이었다면 화는 좀 덜 났을 것이다. 정말 화가 난 건 아버지가 겉과 속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아버지는 본인 의사가 뚜렷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본인이 원하는 걸 제안할 때는 "나는 이걸 하고 싶다. 그러니까 같이 하자."가 아니라 "너희를 위해서 이거 하려고 하는데 어떠니?"였다.


내가 제안을 받아들이면 다른 사람한테는 "아들을 위해서" 하고 있다고 했다. 거절하면 서운한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자신이 하고 싶다는 말은 결코 하지 않았다.


항상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남에게 친절하고 매사에 반복하는 "너를 위해서"라는 말이 너무나 싫었다. 아버지 기준에서는 사람 간 누가 더 높고 낮은지(누가 더 마음에 들고 아니고 가 아니다.) 그 고하가 분명했다. 그럼에도 겉으로는 항상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칭찬도 많이 했다. 나는 그게 비겁해 보였다.


나는 거짓말을 많이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머니가 주는 압박, 아버지의 말 습관이 영향을 받았다. 심리치료를 받기 전에는 사람은 왜 겉과 속이 다르면 안 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거짓말은 아주 당연한 거 아닌가?


본인이 제일 싫어하는 게 거짓말이라는 사람과, 거짓말 때문에 신뢰를 잃어버렸다는 사람은 나에게 아주 낯설었다. 없는 칭찬은 안 한다는 말도 이상하게 들렸다. 나는 항상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의 눈치를 피하기 위해 늘 거짓말을 했다. 아버지는 나를 무조건 칭찬했다. 내가 못하든 잘하든, 항상 칭찬했다. 그 과거의 억하심정 때문에 부모님이 나에게 호의를 베풀면 나는 갑자기 화가 나고 복잡해졌다. 학교 얘기, 부모님의 호의만 나오면 갑자기 굳어져버렸다.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퍼주기 때문에 나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관한 도덕관념도 사라져서 나를 거절하는 사람은 무조건 괘씸했고, 객관적인 상황 판단도 할 줄 몰랐고, 사람들과의 의사소통할 때도 칭찬과 돈으로만 마음을 사려하고, 남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고 비웃었다.


나는 부모님의 무조건 퍼주기식 양육방식으로 큰 문제를 일으켰다. 그래서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고 생각했기에 부모님이 호의를 베푸려 하는 것만 보면 기운이 사라져 버렸다.




내담자가 부모님 때문에 힘들어했던 건 크게 2가지입니다.

① 어머니 아버지 모두 성적을 강요.

② 모든 걸 다 챙겨주려 했던 것.


내담자 부모님이 이 부분에 대해서 모두 사과를 했습니다.  더는 성적을 강요하지 않기로 했고, 모든 걸 채우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담자와 부딪히게 되는 건, 부모님이 '행동에 변화'를 완전하게 가져오는데,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담자는 부모님이 조금이라도 과거와 같은 행동을 할 때마다 예민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내담자가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도, 부모는 절대로 부딪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내담자가 화를 냈다고, 똑같이 감정에 휘말려 싸운다? 그러면 치료의 시간이 훨씬 늦어집니다. 싸우고 갈등을 일으키는 과정이 반복된다면 결국에는 치료도 불가능합니다. 그러면서 부모는 상담사 탓을 합니다. 나는 지난번에 사과까지 했는데, 애가 변한 게 하나도 없다고요.


사과 한 번으로 모든 게 끝난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오산'입니다.


사과가 '치료의 시작'입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나는 사과도 하고 노력하고 있는데, 애가 너무 예민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불합리하게 당하는 일도 많을 겁니다. 그래서 이 모든 걸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자녀는 몇 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 부모에게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강한 억압과, 폭언, 폭력, 학대, 부부싸움에 시달렸습니다. 방치를 당하는가 하면, 부모는 내가 학교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 무관심했습니다. 성적만 강요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봐준 적이 없습니다. 이로 인해 학교에서 왕따까지 당했습니다.


자녀는 이런 생활을 하루 이틀을 한 게 아닙니다.

자녀가 그 긴 세월을 고통받았던 걸 알았다면, 나도 각오해야 합니다.


자녀가 감정을 발산해도, 거기에 절대로 휘말려서는 안 됩니다. 변명하지 않고 무조건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합니다. 이 과도기가 지나면 자녀도 나중에 객관성을 갖기 시작합니다. 부모님은 이제 변하고 있는데, 내가 너무 심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녀도 부모를 용서하고 행동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부모는 내 자녀가 이 시기가 올 때까지 감내해야 합니다. 심리치료 때 가족이나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게 바로 '이것'임을 명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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