텀블벅에서 <벼랑 끝, 상담> 오디오북을 펀딩 합니다.
종이책에 있는 핵심 사례 11개를 뽑고,
종이책에 없는 추가 사례 8개를 녹음했습니다.
선착순 혜택 이벤트도 있으니 놓치지 마세요!
이 글은 조현정동장애(조현병+조울증) 진단을 받은 내담자가 직접쓴 글입니다.
1화부터 보셔야 내담자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aronsong/511
(1화)
https://brunch.co.kr/@aronsong/512
(2화)
https://brunch.co.kr/@aronsong/514
(3화)
https://brunch.co.kr/@aronsong/516
(4화)
https://brunch.co.kr/@aronsong/517
(5화)
https://brunch.co.kr/@aronsong/518
(6화)
https://brunch.co.kr/@aronsong/520
(7화)
https://brunch.co.kr/@aronsong/519
(8화)
나는 학교를 가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학교를 졸업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나는 상당히 늦은 나이여서 이제 뭔가를 해보기엔 너무 늦었다는 생각에 그 어떤 도전도 쉽게 시도해볼 수 없었다. 부모님은 대놓고 학교를 강요하진 않았지만, 내가 학교를 가지 못하면 어떤 희망도 없을 거라는 전제를 깔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 관해서라면 굉장히 예민해지고 쫓기는 기분이었다. 미래도 불투명했다.
그러나 이 복잡해 보이는 듯한 문제도 명쾌히 해결되었다.
원장님에 의하면 학교는 나에게 필수적인 게 아니라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수단일 뿐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내가 학교를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정하고 그것에 매진하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멀게 보이는 성공도 사실 5년만 노력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한다. 성공하는 사람이 적은 이유는 5년 동안 쭉 노력하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 다니는 것에 대해 개의치 않고 열심히 심리치료에 전념하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차분히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보겠다고 다짐했다. 당장 내가 뭔가를 하지 않는다 해서 너무 조급하지 않기로 했다.
덕분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굉장히 해소되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정리되자 사람들을 원망하며 괴로워하는 시간도 줄었다.
내가 사람들을 원망하기 시작하는 건 나 자신이 뭔가를 성공적으로 해내지 못한다고 느낄 때였다.
뭔가를 해내지 못한 다는 건 내가 무능하다는 뜻이었다. 나는 이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래서 내 탓이 아니라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는 과정에서 원망을 했던 것이다.
그 원망은 이미 13년 이상도 더 지난 아이들에 대한 원망, 부모님에 대한 원망(당시엔 달리 원망할 대상도 없었다.) 등 현재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고, 오히려 날 무기력하게 만들어 자신감만 떨어뜨리기만 할 뿐이었다.
이처럼 나는 불안을 느끼면 불필요한 감정 낭비를 했다. 그래서 불안을 느낄만한 것들을 최대한 치워내는 게 필수적이었다. 특히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장 컸는데, 원장님께서 내 불안이 매우 비합리적이라는 걸 깨닫게 해 주셨다. 그때부터 나는 불안에 빠져들지 않았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생길 때면, 게 비합리적이라는 걸 즉시 되새기고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다.
불안이 비집고 나오는 주요 틈새 하나를 막아낸 것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아직 불안이 들어올 틈새가 많이 남아 있었다.
바로 대인관계 문제였다.
나는 18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외톨이처럼 지내기 시작했다.(새로 친해지더라도 여전히 어색했다.)
19살~21살까지는 학교에서 한마디도 안 했고 재수학원에서도 한마디도 안 했다.
22살 대학 들어와서도 한마디도 안 했고, 말을 하더라도 눈치를 심하게 보았다. 나보다 어린 친구들인데도, 나는 괜히 겁을 먹고 피해 다녔다. 당연히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22살부터 27살까지 간혹 친해지는 사람이 있었지만 형식적이었고, 그들을 한 번도 진심으로 내 친구라고 생각해본 적 없었다. 항상 주눅 들었고 내 주장은 꽁꽁 숨겼다. 특히 학교폭력 트라우마에 시달려서 나는 더욱 나 자신을 드러 내는 걸 두려웠다.
친구라는 건 나에게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이렇게 대인관계에서 실패만 거듭하자 나는 나 자신이 한심했고 미웠고 믿을 수 없었다. 내 생각이나 행동을 스스로 못 미더워했다. 나는 아무한테도 도움이 못되고 짐만 되는 존재라고 믿었다.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력한 인간이라고 믿었다. 간혹 누군가가 나를 칭찬해주어도 믿지 않았다. 누군가의 칭찬은 날 이용하려는 미끼라고 생각해 오히려 괘씸하게 여겼다.
이런 식이니 내가 사람을 신뢰 할리도 없었고 다른 사람들도 나를 신뢰 할리가 없었다. 어떤 속임수가 있을까 봐 예의 주시했고 사소한 말이나 행동도 의심하면서 경악하거나 말도 없이 인연을 끊어버렸다.
당초에 내가 원장님께 상담을 받기 시작한 것도 내가 사람을 너무 신뢰하지 못하는 것만 같아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대인관계 문제도 나를 만만치 않게 괴롭혔다.
다음 상담 시간에서 난 이 얘기를 꺼냈다.
나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간혹 저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있어도 전 그 사람을 신뢰하지 못해요. 그래서 그 사람에게 미안해요. 이 사람은 분명 나에게 잘해주는 거 같긴 한데... 왜 난 이 사람을 못 믿겠고 끝까지 의심하게 될까.... 전 아무도 못 믿고 누구랑도 친해질 수 없어요. 그게 너무 힘들어요.
원장님이 도구를 꺼내셨다.
원장님
그러면 여기다가 이렇게 써봐. '나는 나를 신뢰하는 사람도 믿지 못한다.'
나
네.
원장님
나를 신뢰하는 사람도 믿지 못한다고 했어. 그런 생각은 어떤 경험으로 인해 생긴 거야?
나
사람들이 간혹 절 칭찬해주더라도 속으로는 비웃고 있는 거 같고 옛다 먹어라 라는 식으로 던지는 것만 같아 진짜 저 자신을 몰라봐주는 것 같을 때 이런 생각을 하게 돼요.
원장님
이런 생각을 계속 유지하게 되는 이유는 뭐야?
나
어... 그러니까 괜히 마음을 열었다가 버림받을까 봐요. 신뢰 못 하는 것도 싫지만 버림받는 건 죽는 것과 같아서요. 그래서 여전히 거리감을 느끼는 거 같아요.
원장님
이 생각을 갖고 있을 때 마음 상태는 어때?
나
피폐하고.. 그러니까 단단한 아스팔트라서 삭막하고 아무것도 못 받아들이는 거 같아요.
원장님
이 생각 때문에 자존감은 높아져? 떨어져?
나
자존감은 올라가는 거 같은데요.
원장님
어떤 면에서?
나
이 생각 덕분에 저는 사람들한테 버림받을 일도 없고 제 쪽에서 사람을 쳐낼 수 있잖아요. 그러니 자존감이 올라가면 올라갔지 떨어질 일은 없죠.
원장님
그렇구나. 사람한테 버림받는 건 어떻게 생각해?
나
버림받는 건..... 끔찍해요... 딴 건 몰라도 그것만은 절대 안 돼요.
원장님
그렇다면 버림받는 건 두려운 거구나?
나
네.
원장님
방금 네가 버림받을 일이 없어서 자존감이 올라간다고 했어. 그러면 버림받는걸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자존감을 올라가게 하는 거야. 그렇지?
나
맞아요.
원장님
그렇다면 이 자존감이 올라가는 건, 두려움에서 비롯된 자존감이네.
나
아... 그렇네요..
원장님
사실 두려움에서 비롯된 자존감은 진짜 자존감이 아니지. 그렇지?
나
네 맞아요... 그러니 이 자존감도 좋은 건 아니네요.
원장님
맞아. 이런 생각이 가치관에는 맞아?
나
아뇨. 절대로 안 맞아요.
원장님
생각은 발전적일까?
나
글쎄요.. 좀 부정적인 거 같은데요... 이래서는 누구랑도 친해질 수 없을 테니까.
원장님
이 생각 덕분에 뭘 얻을 수 있어?
나
음.. 그러니까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도 신뢰하지 않고 의심하는 건데 그건 제가 순진하게 당하는 게 아니라 용의주도하게 상대방을 면밀히 파악하는 거라 제가 좀 똑똑하고 대단한 거 같아요. 그래서 사람을 내려보는 듯한 느낌이 아주 좋아요.
원장님
그게 꼭 내려보는 걸까?
나
글쎄요... 그렇지 않나요?
원장님
사실 너는 버림받는걸 두려워하고 있다고 했지? 그래서 버림받지 않으려고 사람을 의심한다고 했어. 그러니까 너는 버림받는 게 두려워서 이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그렇지?
나
그렇죠.
원장님
그러면 이 생각 덕분에 사람을 내려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사람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사람이 날 버릴까 봐 두려워서 이 생각을 계속하고 있는 거지. 그러니까 너는 두려워하고 있을 뿐이지 사실 사람을 내려보는 게 아냐.
나
아... 그렇네요.. 사실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거니까.
원장님
그러니까 사람을 내려보는 듯한 느낌은 사실 없는 거야. 오히려 두려워하고 있을 뿐이지.
나
맞아요..
원장님
그럼 나를 신뢰하는 사람도 믿지 못하면 잃을 수 있는 건 뭐야?
나
제 인격이요. 사람을 내려보고 있고, 신뢰하지도 못하고 의심하니까 제 인격이 망가질 거 같아요.
원장님
이 생각이 네가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어떤 영향을 끼칠까?
나
저를 신뢰해줬던 사람을 잃어버릴 것만 같아요. 그러면 전 제 목표도 이루지 못하겠죠. 자신감은 더욱 떨어지고.
원장님
이런 생각을 쭉 갖고 있으면 미래의 너의 모습은 어떻게 될 거 같아?
나
자괴감에 빠져있고 고독하고 대인관계도 포기할 거 같아요.
원장님
이 생각을 통해 너는 뭘 기대하고 있어?
나
처음엔 나름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없네요.. 오히려 불안하기만 할 뿐.
원장님
얻을 수 있는 결과는?
나
없어요.
원장님
됐어. 이제 내가 이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 읽어줄 테니까 한번 잘 들어봐. 그리고 너는 제삼자로서 이 사람이 어떻게 보이는지, 그리고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지 말해봐.
나
네.
원장님
현재 이 사람의 생각은, 나를 신뢰하는 사람조차 믿지 못하는 거예요. 어떤 경험 때문에 믿지 못했냐면, 사람들이 나를 겉으로는 칭찬해 주지만 속으로는 비 웃고 있는 걸 느꼈기 때문이래요.
나를 신뢰하는 사람도 믿지 못하는 이유는, 마음을 열었다가 버림받을까 봐 둘 원서 그런대요. 이 생각 때문에, 마음 상태는 피폐하고 삭막한 아스팔트 같대요. 자존감도 올라간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서 형성된 가짜 자존감이었어요. 이 생각이 본인의 가치관에 맞는지 묻자 절대 안 맞는대요. 발전 적이지도 못하대요.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물어보니까, 사람들을 내려다볼 수 있어서 좋대요. 그런데 따지고 보니까 사실은 내려다보는 게 아니었어요. 두려워하고 있을 뿐이었어요. 잃을 수 있는 건 본인의 인격이 망가질 거 같대요.
또 나를 신뢰하는 사람도 믿지 못하면, 목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거 같은지 물어보니까, 나를 신뢰해줬던 사람들을 잃어버릴 것 같고, 아무 목표도 이루지 못할 거래요. 미래의 모습은 자괴감에 빠져, 고독하고 대인관계도 포기할 거래요.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없어요. 얻을 수 있는 결과도 없어요. 제삼자로서 이 사람이 어떻게 보이나요?
계속 듣고 있는 동안 약간 웃음도 났지만 이대로 가면 이 사람이 진짜 위험해지겠다는 생각이 팍 들었다.
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 게 사람을 순진하게 믿지 않고 용의주도하게 관찰하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나의 장점이고 나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거라 믿었다.
그러나 이 생각 때문에 대인관계는 계속 실패했고 나는 감정적으로 너무나 큰 고통을 겪었다. 존재감도 없어지고 나 자신도 더 이상 믿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이런 생각을 유지한 이유는 위에서 말했듯 그런 습관이 마치 내가 용의주도한 것 같고 대단한 것처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원장님을 통해서 제삼자로서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나를 보자 너무나 불안해 보였고 이대로 가다간 반드시 무너지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나 혼자 머릿속으로 생각했을 때는 잘 못 봤지만 제삼자로서 보니 내 문제가 더 뚜렷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나
이 사람은 절벽 끝에 매달린 것처럼 위험해 보여요. 죽을 거 같아요.
원장님
그래 네가 쓴 것들을 보니까 위험해 보이지? 그러면 생각을 바꿔야겠지?
나
네.
원장님
좋아. 여기다가 새로운 생각을 적어봐. 너에게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생각.
나
어떻게 적어야 하죠? 잘 모르겠어요.
원장님
그들은 나를 신뢰한다. 단지 생각이 다를 뿐이다.
나
사람들이 날 신뢰한다고요?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사람들은 절 안 믿어요. 다 절 싫어하거나 우습게 보지.
원장님
어떤 면에서?
나
그러니까 제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절 신뢰하는 사람이 아닌 거 같아요. 저보고 틀렸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속으로 무시하거나 비웃거나 하겠죠. 그런 사람이 절 신뢰하겠어요?
원장님
그 사람들이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 해서 널 틀렸다고 생각할까?
나
......... 뭐 꼭 그렇지는 않지만 절 버리거나 하겠죠.
원장님
그건 아냐. 사람은 제각기 다 달라. 서로가 완전히 똑같은 사람은 없어. 다 다르게 태어났어. 그러니까 거기다 대고 네가 틀렸다, 네가 맞았다 할 수는 없는 거야. 그러니 사람들도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돼.
흔히들 하는 얘기 있지? 난 저 사람 인정할 수 없다. 저 사람 믿을 수 없다. 이런 말들은 잘못된 말이야.
서로 신뢰하는 건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는 걸 인정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해. 상대방이 틀렸다고 생각해봐. 그럼 그 사람을 신뢰할 수 있겠어?
나
아니요...
원장님
그러니까 만약 누군가가 너를 신뢰한다면 그 사람은 네가 자신과 다른 말을 해도 받아줄 거야. 왜냐면 너의 다름을 신뢰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내가 상대방과 다른 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은 날 여전히 신뢰하고 있으니까 넌 신뢰는 받을 거야.
나
그렇군요...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막혀있던 의문들이 시원하게 해소가 되었다.
나는 나만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 외는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자기만 맞고 나는 틀렸다고 생각할 거라 믿었다.
때문에 나는 사람들이 보내는 신뢰라는 걸 믿지 않았다. 늘 의심했다.
그러나 이건 처음부터 내 생각이 틀렸기 때문이었다. 바로 나와 다른 건 다 틀렸다는 생각.
애당초 나 자신부터가 나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다른 사람들도 나를 받아들일 수 있을 거란 걸 믿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상대방과 다른 말을 했다 해서 상대방이 날 버릴 거라는 두려움도 없었을 것이다.
왜냐면 내가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임으로써, 상대방도 그래 줄 거란 걸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오직 나만이 맞다고 생각했기에 자신과 다른 사람을 받아줄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나에게 있어서 나와 다른 사람은 버리는 게 당연했으니까 말이다.
결국 나는 나와 다른 사람을 배척하듯,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배척할 거라 믿었다. 그래서 사람들 간의 신뢰라는 걸 믿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잘 받아들였다. 사람들이 날 버린다고 원망했지만, 실제론 내가 사람들을 버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날 버린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그걸 깨닫자 나는 생각 외로 사람들이 나를 신뢰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실제로 그런 경험이 떠올랐다.
밴드에서 만난 어떤 분이 자신과 생각은 다르면서도 나를 신뢰했고 일정 부분은 내 말이 맞다고 인정했던 게 떠올랐던 것이다. 그런 경험이 떠오르자 내 오랜 생각이 틀렸음을 다시 확인했다.
내가 봐도 이런 생각이 훨씬 더 안정적이었다. 늘 거리감을 느끼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나를 신뢰해주고 있다는 걸 믿는 생각이 말이다.
'그들은 나를 신뢰한다. 단지 생각이 다를 뿐이다.'
나는 원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생각이 훨씬 더 긍정적이고 발전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 생각을 갖고 살면 내 삶이 더 윤택해질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나는 위 사진처럼 바꾼 생각에 대해 글을 썼다. 그리고 상담을 마쳤다.
이렇게 불안이 침투하는 또 다른 틈새를 봉쇄한 것이었다. 나는 심리적으로 더욱 안정되는 듯한 기분으로 상담소를 나왔다.
###################### 덧붙임글
예전에는 "이렇게 하면 상대방이 이렇게 보지 않을까?" "저렇게 하면 저렇게 보지 않을까?"라는 계산을 해가며 사람을 대했다. 그래서 없는 말을 지어내거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 하다가 멍해져 버렸다.
그러나 심리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나는 좀 더 편하게 내 말을 할 수 있었고, 전달하려는 핵심도 뚜렷해졌다. 마음도 무게가 생겨서 한결 안정적으로 내 본심이 뭔지 알고 드러낼 수 있었다
이런 변화가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난 왜 진작에 이렇게 쉬운 걸 못했지? 내가 좀 바보였던 거 같아"라며 약간 우습기도 했다. 그러나 그 힘은 내가 원장님으로부터 몰랐던 삶의 지혜를 배웠기 때문도 있지만 진짜 비결은 내 마음속에 켭켭이 쌓인 채 썩어가던 불안과 죄의식, 분노가 원장님의 수용에 덕분에 녹아내렸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걸 모르고 한 생각이었다.
그 사실은 몇 달 전에 깨달았다. 몇 달 전 나는 다시 한번 주눅 들고, 겁을 내고, 갈팡질팡 할 때가 있었다. 몇 달 전이면 원장님이 알려주신 삶의 지혜도 이미 많이 배운 상태였다. 그럼에도 나는 또다시 주눅 들고 겁을 내고 혼란을 겪었다.
그때 원장님이 점검차 나를 다시 부르셨다. 나는 원장님에게 나에게 들이닥친 분노와 원망, 털어놓았다. 원장님은 흔쾌히 공감해주시고 이해해주시면서 내가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다는 걸 납득시켜주셨다.
점검이 끝나자 나는 다시 한번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그 이후로 나는 다시 한번 자신감을 얻었고 무게 있게 내 뜻을 관철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아무리 삶의 지혜를 배우더라도 그걸 실천할 수 있으려면 내 마음이 안정되고 힘이 있어야 한다."라는 걸 깨달았다. "반면 안정되지 못하고 힘이 사그라들면 삶의 지혜를 배우더라도 실천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교사가 된다면 일단 학생을 마음으로부터 존중하고 그들을 이해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에게 아무리 유익한 지식을 가르치더라도 말이다.
지식은 그다음이어야겠다는 다짐을 계속했다. 배우는 것도 결국 힘과 지지가 있어야만 가능했다.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지지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한 지 심리치료를 통해 배운 거 같아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