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의 구조를 은폐하는 메커니즘

파슈카니스가 법에 관해 우리에게 주는 비판적 통찰

by 날개

마르크스가 법에 의 한 경제적 착취의 이론을 창시했다면, 그 착취 구조가 사회에서 유지되고 재생산되는 데 법이 어떤 '형식적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가장 정교하게 분석한 구 소련의 법학자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에브게니 파슈카니스'(Evgeny Pashukanis, 1891-1937)이다. 후크 교수는 그의 이론에 대해 현대적 한계를 가지지만, 법과 경제 관계에 대한 근본적이고 정교한 비판이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고 본다. 그의 해제를 참고하여 파슈카니스의 사상과 그에 대한 비판,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살펴본다.


파슈카니스는 볼셰비키 혁명 이후 새로운 사회의 법적 형태를 고민했던 독창적인 사상가로서, 1920년대에 출간된 대표작 '법과 마르크스주의의 일반 이론'을 통해 기존 마르크스주의의 토대-상부 구조론을 심화하면서도 법에 대한 보다 미묘한 분석을 제시했다.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전제, 즉 노동을 경제적 가치의 원천으로 삼고, 경제 생산의 기술적 변화를 역사적 진보의 동력으로 파악하는 시각을 공유하며, 법을 사회 경제 구조(토대)에 종속된 파생적 특성(상부 구조)으로 규정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법이 단순히 자본가 계급의 노동자 지배를 반영하고 재생산하는 수단에 불과하며, 안정성, 공공성 같은 법치주의의 가치들 역시 찬양받을 대상이 아닌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즉, 파슈카니스는 법이 계급적 도구에 불과하다고 보았는데, 법이 착취하는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 그 법에 기반한 법치주의는 존중할 가치가 없으며 포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슈카니스는 법의 기원을 상품 형태에서 찾았다. 따라서, '상품 가치의 교환'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우리가 아는 형태의 법, 즉 "부르주아 법"을 채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법은 특정 사적 이익 간의 충돌에서 발생하며, 상품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추상적인 관계의 질서를 구체화한다. 이 과정에서 법은 실제적인 '지배와 복종'의 물질적 결과를 시장 거래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형식적 평등 관계로 환원시킨다. 그에 따르면, 법은 재산의 실제 가치의 원천을 보이지 않게 감추고, 시장 참여자들이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절대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하다."라는 고귀한 거짓말을 피지배자들에게 제공한다. 즉, 법치주의가 내세우는 추상성, 일반성, 공평성 등 모든 특징들은 상품 기반의 시장 경제를 가능하게 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것이다. 법은 시장을 시장을 진흥하기도 하지만, 잉여가치 수탈이라는 착취의 사실을 '사람들의 등 뒤'에 숨기는 '신비화'의 역할을 하므로, 법과 불의의 연결 고리는 치료 불가능할 정도로 깊다고 강조한다.


파슈카니스의 급진적 사상에 대해 약 50년 후,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톰슨'(E. P. Thompson, 1924-1993)은 중요한 반론을 제기하며 그의 이론을 확장하고 부분적으로 부정했다. 톰슨은 흑인법(Black Act, 1723)을 연구하였는데, 이 법은 밀렵꾼들이 얼굴을 검게 칠하고 다닌 관행에서 법명이 유래했으며, 왕실 산림 지역의 밀렵꾼을 표적으로 삼아 50가지 이상의 사형 범죄를 추가한 가혹한 법령이었다. 그는 이 법이 지배 계급의 이익을 위한 조악한 도구였음을 인정하면서도, 이 법에 의해 기소된 사람들이 여전히 "법적으로 잘못되었다."라고 생각되는 점에 주목했다. 톰슨은 법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단순히 계급 관계를 반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독자적인 논리, 특성, 진화를 가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법은 "보편성과 형평성의 기준"에 호소해야 하며, 때로는 실제로 정의로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톰슨은 나아가 법이 권력자들을 구속할 수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시스템 전체가 망가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결과 탄생하는 "법에 의한 지배"는 자의적인 권력 행사와는 다른 것으로, 지배 계급에게는 비록 "귀찮은 것"일지라도 "조건 없는 인간의 선"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톰슨은 법의 추상성과 보편성이 지배 계급의 도구라는 파슈카니스의 주장을 인정하면서도, 법치주의 자체가 가지는 구속력과 최소한의 정의 실현 가능성을 옹호한 점에서 파슈카니스와 구별된다.


파슈카니스는 강력한 국가를 표방하며 억압을 일삼던 스탈린주의 정권에 의해 '법은 반드시 부르주아적'이라는 그의 주장이 체제를 비판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결국 숙청당하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았지만, 그의 사상은 여전히 가장 흥미롭고 정교한 법 비판 이론 중 하나로 남아 있다고 후크 교수는 지적한다. 파슈카니스의 이론이 마르크스주의라는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배경을 넘어, 법의 형식적 특성이 시장 경제의 논리, 즉 상품 교환의 논리와 어떻게 얽혀 있으며, 그 형식적 평등이 실질적 불평등을 어떻게 신비화하고 정당화하는지를 탐구하게 한다는 것이다. 후크 교수는 비록 톰슨이 지적했듯 법치주의가 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막는 '조건 없는 인간의 선'이라는 최소한의 가치를 지닌다는 점을 간과했을지라도, 파슈카니스의 통찰은 법을 단순히 정의의 실현 도구로만 볼 것이 아니라, 경제적 지배 관계의 핵심적 구성 요소이자 착취의 매개체일 수 있다는 근본적인 경고를 던져주며, 법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더욱 깊고 비판적으로 만들어주는 계기가 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파슈카니스의 비판적 통찰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그의 사상은 몇몇 대형 온라인 플랫폼이 지배하는 디지털 경제 환경에서, 우리의 법과 규제의 형식적인 평등이 시장 경제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일 수도 있고, 그 이면에 착취의 구조를 은폐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될 수 있다는 근본적인 의심과 비판을 할 수 있게 한다. 데이터, 알고리즘, AI무형 자산이 새로운 가치 창출의 원천이 되면서 노동 중심의 가치 이론은 한계를 보이지만, 파슈카니스가 지적한 추상적인 관계의 질서로서의 법의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다. 디지털 규제 환경에서 개인정보 착취, 데이터 소유권 약탈, 플랫폼의 책임 등이 논의될 때, 형식적인 이용 약관의 동의나 계약의 자유 뒤에 숨겨진 플랫폼과 이용자 간의 근본적인 힘의 불균형과 경제적 지배의 구조를 파슈카니스의 시각으로 비판할 수 있다. 법과 규제가 단순히 디지털 시장의 효율성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는 것은 아닌지, 데이터화 및 상품화를 통해 발생하는 새로운 형태의 착취와 지배를 은폐하고 있지 않은지, 특정 빅테크의 착취 수단으로써 사용되는 것은 아닌지, 진정으로 일반 소비자를 위한 목적과 의도를 갖는 것인지, 우리는 끊임없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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