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발언, 표현의 자유와 경계에 대한 법철학적 고찰
'혐오 발언'(hate speech)은 인종, 종교, 성별, 장애여부, 국가, 민족, 연령, 계층, 출신지, 방언, 주거지, 건강상태, 경제적 지위, 정치적 견해, 성적 지향 등의 차이를 근거로 하여 자기와는 다른 특정 집단에 대하여 극단적인 불쾌감을 유발하고 비방할 목적으로 행해지는 언어적 비언어적 모든 '표현'으로 정의된다. 이는 사회 내의 '취약한 정체성'(vulnerable identity)이나 집단적 특성을 표적으로 삼아 적대감, 차별, 폭력을 부추기는 모든 표현을 포괄하며, 직접적인 폭력 선동은 아니지만 모욕적이거나 경멸적인 표현을 통해 대상 집단의 존엄성과 자존심에 상당한 해를 끼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영국 철학자 워버턴 교수는 혐오 발언의 본질과, 이것이 극단적인 '표현의 자유'(freedom of speech)의 관점에서 어떻게 다뤄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의 핵심을 관통하는데, 그는 혐오 발언이 다른 표현과 달리 검열에서 면제될 가치가 없는 특수한 범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으며, 많은 국가에서 법적으로 제한을 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동시에 이와는 반대되는 '혐오 발언 보호론'의 근거와 미국 수정헌법 제1조의 극한 관용을 소개하면서, 이 입장의 몇 가지 강력한 근거를 설명한다.
첫째, 그들은 표현의 자유가 모든 종류의 표현을 기소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최고 가치라고 본다. 이 관점에서 혐오 발언은 단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치러야 할 "막대한 비용"의 일부일 뿐, 전반적인 사회적 보상이 검열보다 크다는 것이다. 둘째, 반론(counter-speech)의 효용성이다. 밀의 자유주의 전통에 따라, 혐오 발언에 맞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침묵이 아닌 공개적인 비판과 반박을 통해 그 허점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본다. 극단적인 의견을 억압하면 불만은 다른 덜 바람직한 방식, 즉 지하에서 곪아 터지도록 방치될 수 있다는 우려를 지적한다. 셋째, 표현의 자유에 대한 법적 금지가 점진적인 제한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 즉 "쐐기의 얇은 끝(the thin end of the wedge)" 논리이다. 특정 표현을 금지하는 선례는 더 광범위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쉬운 길을 열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미국의 경우이다.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는 언론의 자유를 매우 폭넓게 보호하며, 이는 혐오 발언에도 적용된다는 판례가 확립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스코키 사건'(Skokie Case, 1977)이 있는데, 이 사건은 일리노이주 스코키 마을(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다수 거주)을 나치 제복과 스와스티카(십자형 모양에 네 개의 팔이 꺾여 있는 형태의 상징)를 들고 행진하려던 신 나치주의자들의 권리를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이 수정헌법 제1조를 근거로 변호하여 연방항소법원에서 합헌 판결을 받은 사례이다. 이 사건은 극단적인 불쾌감을 주는 표현이라 할지라도 '표현의 자유'를 방패 삼아 허용된 결과, "극단적인 관용"의 상징이 되었다. 영국의 사회철학자이자 작가인 '케난 말릭(Kenan Malik, 1960-)은, "편협한 사람을 제외한 모두를 위한 언론의 자유는 전혀 언론의 자유가 아니다(A freedom of speech that is for everyone but the bigot is no freedom of speech at all)."라고 말했는데, 이는 표현의 자유가 편견을 가진 사람들의 발언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누구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될 수 없다는 의미로서, 이 입장을 대변한다.
그러나, 이러한 극단적인 자유주의 입장에 대해 영국의 분석철학자 '제니터 혼스비'(Jennifer Hornsby, 1951-)는 비판을 제기하는데, 그들의 혐오 발언은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대상 집단에 대한 커뮤니케이터로서의 능력을 손상시키고 실질적인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이들의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은 오히려 가장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의 자유를 위협한다고 강조한다. 혐오 발언의 대상은 대개 사회의 취약하고 소수에 속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들의 존엄성을 보호할 필요성이 표현의 자유가 가져다주는 이익보다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 세계 많은 국가는 미국과는 달리 혐오 발언에 대한 정당한 제한을 인정하는 법적 입장을 취한다. 영국에서는 법원이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여 허용되는 표현과 허용되지 않는 표현의 경계를 정하며, 특히 특정 표현으로 인해 타인의 삶이 훼손될 수 있는 요인을 중요하게 본다.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 캐나다, 뉴질랜드 등 다수의 국가들은 인종, 종교 등을 이유로 한 특정 집단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예컨대, 인종 차별 금지법)을 통해 혐오 표현을 규제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혐오 발언이 공동체의 평화와 공존, 개인의 존엄성에 미치는 해악을 보다 중대하게 평가한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와 같은 극단적인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법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제1항에서는 언론·출판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제4항에서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라는 명시적인 제한 조항을 두고 있다. 이는 표현의 자유가 타인의 권리와 공익의 보호를 위해 내재적 한계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혐오 발언에 대한 직접적인 포괄적 법률은 없지만, 형법상의 모욕죄 및 명예훼손죄, 정보통신망법상의 명예훼손,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법상의 차별 행위 금지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규제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극단적으로 심화되는 세대별, 성별, 지역별, 이념별 갈라치기와 혐오 현상을 고려할 때, 혐오 발언의 규제는 단순히 법철학적 논쟁을 넘어 시급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타인의 표현과 선동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이러한 표현이 사회 전체의 신뢰와 연대를 훼손하는 것은 명백하다. 워버튼이 제시한 극단적 자유주의의 논리, 즉 '규제는 지하에서 곪게 한다'는 우려에는 부분적으로 동의할 수 있지만, 현재 우리 사회 갈등의 폭발적인 양상을 볼 때, 무규제는 취약 집단에 대한 일상적인 폭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결국 현재 표현의 자유와 타인의 존엄성 및 평등이라는 상충하는 가치 사이에서 적절한 선을 찾는 것은 필연적으로 법원의 몫으로 남겨진다. 이것이 사안에 따라(case-by-case) 결정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혐오라는 감정이 주관적이며, 표현의 맥락(context), 의도(intent), 피해의 정도(severity of harm)가 끊임없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인간이 편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한계 속에서, 판사 개인의 성향에 의존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지만, 이는 법관들이 사회의 일반적인 통념과 헌법적 가치를 반영하여 합리적인 기준을 도출해 내도록 요구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한편, 혐오 발언에 대한 법적 규제는 국가 권력의 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늘 동반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수준의 상호 혐오와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미국식의 무한정한 관용보다는, 유럽과 같이 취약 집단 보호에 중점을 둔 균형 잡힌 규제가 적절할 수 있다. 즉,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지 않도록 명확하고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노력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궁극적으로, 혐오 발언을 해결하는 것은 법적인 처벌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말릭의 지적처럼, 감정을 지하에 묻어두기보다 개방된 토론과 반론의 장을 통해 관용을 확장하고 "사회적 자정 능력"을 키우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 중요하다. 한국 사회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혐오 발언의 명확한 기준과 규제 방안을 숙고해 나감과 동시에,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가 절실하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분노와 증오의 원인이 되고 이를 조장하는 사회구조적인 부조리, 불공정, 모순,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존경과 가치의 부재, 기득권의 '내로남불'의 행태 등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병행해야 한다. 이는 매우 어렵고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는 숙제이기는 하지만, 단언컨대, 이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과 필사적인 개선노력 없이는 정상적인 법치주의와 건강한 민주주의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정상작동을 기대할 수 없다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