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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Feb 05. 2018

[Part3] '자랑스러운 딸' 그만두기

[Part 3 : 행복하지만 불안한, 퇴사 이후의 삶]

2017.4.18(화) / 회사를 떠나고 89일 후.



내 생일이었다. 가족들과 식사를 하려고 집에 다녀왔다. 사실 나는 가족들에게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를 아직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집에 가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오늘은 말해야지, 오늘은 내 생일이니까 조금 덜 혼나지 않을까, 라는 유치원생 같은 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했다.


집 근처 횟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집 근처에 새로 개업을 한 집인데, 엄마가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단다. 차를 타고 가자니 술을 먹을 수가 없고, 버스를 타고 가자니 번거로워서 여태 가보지 못했다고 했다.


얼마 전 운전을 배운 나는 호기롭게 "내가 운전할게"를 외치고 식사를 하러 갔다. 별 것 아니지만 왠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반주를 곁들여 간단히 식사를 하고, 나는 습관처럼 계산대에서 카드를 내밀었다. 통장에 모아놓은 돈을 헤아려가며 가계부를 쓰는 주제에. 회사를 그만둬서 월급도 안나오는 주제에. 백수 주제에, 외식비 몇 푼으로 좋은 딸인척 유세를 부리고 싶은 나 자신이 조금 우스웠다.




회사를 그만뒀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용기가 나지 않아서 맥주를 자꾸만 들이켰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나는 입을 뗄 수가 없었다.


동생은 고시생이다. 어려운 시험인데 올해 1차에 합격하고 2차를 앞두고 있었다. 1차와 2차를 같은 해에 합격하는 사례는 손에 꼽는다고 하니, 아마도 내년까지 고시생활을 이어갈 것이다. 기특하게도 동생은 1차 시험 준비를 하며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었다. 그러나 2차 시험은 시간이 너무 빠듯해서 아르바이트를 병행할 수가 없다. 학원을 다니느라 서울에서 하숙을 하고 있기도 했다.


헉 소리나게 비싼 재수학원을 다니던 남동생은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갔다. 여동생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 본격적인 고시 공부에 들어갔다. 엄마는 혹시나 '잘난 내 자식들' 앞길이 막히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초인적인 힘으로 그 뒷바라지를 계속 해오고 있었다.


결국 나는 여름에 여동생의 2차 시험이 끝나고, 엄마도 동생도 한 숨 돌릴 수 있을 때에 이야기하자는 핑계를 앞세워, 나 자신과 타협하고 말을 삼켰다.




나는 남부럽지 않은 대학에 갔고, 남부럽지 않은 회사에 취업도 했다. 많지 않은 월급이었지만 무슨무슨 날이 되면 용돈도 드리고 선물도 드리는, 가장 걱정할 일 없는 딸이었다.


그래서 나는 회사를 그만둔 결정에 대해, 가족들에게 떳떳하다고 생각했다. 그만두더라도 부모님께 금전적으로 손을 벌릴 것도 아니었고, 무슨무슨 대학, 무슨무슨 대기업에 대해 부모님이 딸 자랑하실 기회도 지금까지 충분히 드렸으니까.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나는 엄마에게 미안했다. 엄마와 동생이 돈 걱정을 할 때, 비록 내가 큰 돈은 없어도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오니 이런 건 내가 해줄게, 라고 얼마라도 턱 내밀지 못해서 마음이 아팠다.




자취방으로 돌아오고서 나는 동생에게 용돈을 부쳐주었다. 푼돈이지만, 그냥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처음으로 나는, 그 지옥같은 회사를 뛰쳐나온 것에 눈물이 났다.







취준생부터 퇴사 이후 새출발까지, <나의 똥같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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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 : D-Day, 회사를 나서다 (☞ 첫 글 보기)
Part 1 : 취업 준비  (☞ 첫 글 보기)
Part 2 : 직장 생활  (☞ 첫 글 보기)
Part 3 : 퇴사 이후  (☞ 첫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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