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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Feb 06. 2018

[Part3] 나중에 효도하겠다는 거짓말

[Part 3 : 행복하지만 불안한, 퇴사 이후의 삶]

2017.5.8(월) / 회사를 떠나고 109일 후.



어버이날이었다.


오천원, 만원, 오만원짜리 지폐를 이어붙여 '오천만원'을 만들어 봉투에 넣었드렸다. SNS에서 100번쯤 본 것 같지만, 엄마에게는 신기한 아이템이다. 그리고 편지를 썼다.


편지의 마무리 즈음 "나중에 내가 성공해서 호강시켜 드릴게요." 라고 쓰다가, 문득 그 "나중에"라는 말만 한 20년째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편지를 고쳐쓰기 시작했다.


엄마, 나는 좋은 대학 가고 좋은 회사 가면 호강시켜줄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여전히 겨우 내 입에 풀칠할 만큼이어서 미안해. 내가 앞으로 꼭 성공해서 나중에는 진짜 오천만원 줄게.




어릴 때 나는, 어른이 되면 대단한 글로벌 리더, 대단한 커리어 우먼이 될 줄 알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한 우리 엄마아빠도 이렇게 '평범'하게 우리 세 남매를 예쁘게 키우셨으니까. 부모님의 뒷바라지 덕분에 부모님보다 훨씬 많은 기회가 주어진 나는, 훨씬 더 여유롭고 성공한 삶을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글씨를 배운 이후로 한 20년간 그렇게 자신있게 "나중에 효도하겠다"는 공수표를 날렸나보다.




요즘들어 엄마는, 자꾸만 내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라고 재촉한다. 낳기만 하면 본인이 키워주시겠다며.


그런데 나는 지금 엄마가 일을 그만두고 내 아이를 봐주신다고 해도, 지금 엄마가 버는 월급만큼을 엄마에게 드릴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수 없다. 능력도 안되면서 대책없이 애를 낳아놓고, 엄마가 어떻게든 키워주겠지 눈을 감아버리는 것 밖에 안되는 것이다.


'일단 저질러놓고 뒷수습은 엄마에게 맡기는' 그런 짓은, 학비가 아주 비쌌던 고등학교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던 열일곱살로 끝인 것이다.


엄마는 무슨 죄로, 그 인형처럼 예쁘던 우리 엄마는 무슨 죄로, 자신의 젊음을 다 갈아 넣어서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고, 숨 돌릴 틈도 없이 또 딸의 자식을 키우느라 또 한움큼 늙어가야 하는 것일까.


특별히 대단할 것도 없는 인생이었지만, 그래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열심히 살았는데, 쉬워보였던 '평범한 행복'은 어째서 여전히 요원한 걸까.







취준생부터 퇴사 이후 새출발까지, <나의 똥같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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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 : D-Day, 회사를 나서다 (☞ 첫 글 보기)
Part 1 : 취업 준비  (☞ 첫 글 보기)
Part 2 : 직장 생활  (☞ 첫 글 보기)
Part 3 : 퇴사 이후  (☞ 첫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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