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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Mar 10. 2018

[Part3]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를 이해한다

[Part 3 : 행복하지만 불안한, 퇴사 이후의 삶]

2017.12.5(화) / 회사를 떠나고 320일 후.


집에 왔다. 드디어 엄마에게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를 해야 했다. 나는 약속이 있어서 늦은 엄마를 굳이 굳이 기다려서 열한시가 넘은 시간에 마주앉았다. 그리고 어렵게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엄마는 우선 1년이나 감쪽같이 거짓말을 한 것이 섭섭하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다음은 내 결혼과 출산과 육아에 대한 걱정이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학교를 다니는 것 때문에 결혼과 출산과 육아가 늦어질 것이 걱정되시나보다.


정작 나는 회사를 다녀도 아이를 빨리 가질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육아와 커리어를 모두 가지고 싶은 욕심에 회사를 그만둔 것이기도 했다.


엄마는 내가' 육아휴직이 가능한 좋은 회사'를 다니고 있으니, 결혼을 하면 당연히 바로 아이를 낳으라고 했다. 이미 30대니 더 늦기 전에. 하지만 나는 '그 좋은 대기업'에서 길어야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육아휴직을 쓰고, 아직 돌쟁이인 아기를 집에 두고 회사를 다닐 자신이 없었다.


퇴근이 밤 9시가 될지 12시가 될지 예상이 되지 않는 삶. 야근이 없는 날에는 회식에 차출되는 삶. 당장 내일이 연차여도 '급한 업무가 생기면' 취소해야 하는 삶. 아이가 아파도 달려가지 못하는 삶. 아니면, 이 모든 '암묵적인 의무'들을 외면한 채 정해진 업무만 마치고 바람같이 퇴근해서 가정에 충실하다가 '저럴거면 애나 보지 왜 회사를 다니냐'는 말을 들으며 월급도둑으로 살아야 하는 삶. 회사를 계속 다닌다면 내게는 이 선택지밖에 주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이 중 어떤 삶도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은 나를 힘들게 낳고 길러주신 분들이니 부모님은 내 인생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이 있다. 그리고 자식으로서 나는 그것을 가만히 앉아서 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내게는, 뒤돌아서면 내맘대로 할 자유도 있다." 친구가 어떤 유명한 스님이 한 말이라며 내게 해준 말이었다.


어차피 부모님을 완전히 설득시키고 이해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부모님과 나는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세대가 다르고 기대치가 다르니까.


엄마는 겨우 스물세살에 회사에서 사내커플로 아빠를 만났다. 회사에서 '미스김'으로 불리던 80년대 후반, 결혼 전 몇년 간 회사생활을 경험했다. 결혼을 하면 여자는 당연히 회사를 그만두던 시대였고, 엄마 역시 결혼을 하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런 엄마에게 나의 회사생활을 이해하라는 건 무리다.


회사에서 내가 부딪히는 크고작은 현실적인 문제들, 좋은 엄마이고 싶은 만큼 회사에서 당당하고 인정받는 구성원이고 싶다는 욕심, 커리어에 대한 고민같은 것들이 완전히 이해될 수는 없을 것이다. 결혼하면 회사를 그만둬야 했던 엄마에게는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른다.


엄마 입장에서 내가 다니던 회사는, 월급도 잘 나오고, 결혼하고도 자르지 않고, 임신을 하면 단축근로도 가능하고 아이를 낳으면 육아휴직도 주는 아주 좋은 회사이니까.


그 시대에는 그랬고 나의 시대에는 이러하니까. 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를 이해하고, 내 방식대로 내 삶을 꾸려가야겠다. 나는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장 큰 효도라고 믿는, 엄청나게 이기적인 딸이.







취준생부터 퇴사 이후 새출발까지, <나의 똥같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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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 : D-Day, 회사를 나서다 (☞ 첫 글 보기)
Part 1 : 취업 준비  (☞ 첫 글 보기)
Part 2 : 직장 생활  (☞ 첫 글 보기)
Part 3 : 퇴사 이후  (☞ 첫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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