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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Mar 12. 2018

[Part3] 스무살로 돌아갈 수 있다면.

[Part 3 : 행복하지만 불안한, 퇴사 이후의 삶]

2017.12.14(목) / 회사를 떠나고 329일 후.



《고백부부》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다. 장나라-손호준 부부가 십여년을 거슬러 올라가 스무살의 과거로 돌아간다는 이야기.


타임 슬립이라는 소재는 장르와 국경을 넘어 지겨울만큼 넘쳐난다. 그렇게 흔한 소재임에도 끊임없이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늘 뒤를 돌아보고 후회를 하며 사는 존재인 것 같다. 인생의 어떤 지점을 지나고 있는지에 따라, 또는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에 따라 후회의 내용도 제각각이다. 결국 타임슬립은 그것을 스토리로 풀어내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인생에서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후회하는가, 무엇을 되돌리고 싶은가에 관한 것이다.


 《고백부부》는 가장 평범한 이야기로 가장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확실하게 파고드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현실에는 일찍 떠나고 안 계신 엄마를 만나 효도하기, 좀 더 능숙한 방식으로 첫사랑을 쟁취하기, 회사 일에 치어서 뒷전으로 미뤄뒀던 가족들 돌아보기, 그리고 끔찍하게 힘들고 끔찍하게 행복한 결혼과 육아에 관한 이야기.




나는 딱 10년을 돌아서 새로운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다. 새내기 시절로 돌아가 '만렙' 상태로 대학생활을 다시 해내는 장나라의 모습이 남 일 같지 않았다. 고작 몇 살 위인 선배들의 위압적인 행동에 겁 먹지 않는다거나, 일일주점에서 팔을 걷어붙이고 제육볶음을 쓱싹 해내는 장면들이 깨알같은 재미였다.


나와 드라마 속 장나라의 차이가 있다면, 장나라는 진짜 스무살로 돌아갔고, 나는 서른살의 상태로 스무살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내게는 지난 10년이 '없던 일'이 되지 않았다는 것.


나는 먼 길을 돌아 서른을 눈앞에 두고서야 나의 꿈과 인생과 삶에 대해 고민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려고 하고 있다. 그 10년이 '없던 일'이 된 스무살의 장나라가 부러워졌다. 나도 지금 느끼고 깨달은 모든 것들을 스무살의 나에게 전해 줄 수 있다면.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이 모든 것은 직접 겪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회사를 그만두고 교대 입학을 앞둔 서른살의 내가 과거로 돌아가, 스무살의 나를 만난다고 치자. 과연 스무살의 나는 서른살의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까? 절대 그렇지 않을 걸.


스무살의 나는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어 뭐든 척척 해내고, 대단한 글로벌 리더로 성장하는 삶을 꿈꾸었다. 치열하게 살고 싶었다. 영화와 드라마로만 본 막연한 이미지가 있었다. 커피와 핫식스에 절어서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왔어도,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을 얹고 하이힐을 신고 피곤한 기색을 감추고 악착같이 맡은 일을 해내는 그런 능력있는 사람.


그런 내게 "행복하게 살라"고, "조금 내려놓고 너 자신을 돌아보라"고 말한들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심심하고 시시한 삶은 싫다고 손사래를 치겠지.


나는 풍파를 겪으며, 그 풍파에 휩쓸려가지 않기 위해 죽을똥 살똥 정신줄을 붙잡는 와중에 인생과 행복과 삶과 커리어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느꼈기 때문에 과감히 접고 돌아설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10년 전에 교대에 가서 선생님이 되었더라면, 거꾸로 "치열하고 멋진 커리어우먼"을 꿈꾼다며 학교를 뛰쳐나왔을 지도 모를 일이다. 역사에 "if"는 없다고 하지 않는가. 나의 지난 모든 발자취가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뿐이다.


그러니 지난 10년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말자. 내게는 "똥같은" 날들이었지만 그걸 내 인생의 소중한 거름으로 삼는 것은 나의 몫이다.







취준생부터 퇴사 이후 새출발까지, <나의 똥같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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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 : D-Day, 회사를 나서다 (☞ 첫 글 보기)
Part 1 : 취업 준비  (☞ 첫 글 보기)
Part 2 : 직장 생활  (☞ 첫 글 보기)
Part 3 : 퇴사 이후  (☞ 첫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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