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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Dec 29. 2017

[Part1] 세상 모든 열매를 맛보고 죽으리라!

[Part 1 : 낙관적 운명론자, 취업준비생의 일기]

2013.6.1(토) / 회사를 떠나기 1329일 전.



소백산 등산, 소요시간 약 7시간, 18km. 토요일 새벽 6시반 기차로 가서 9시부터 5시까지 등산을 하고, 식사 후 저녁 6시반 기차로 돌아오는 빡빡한 당일치기 일정. 난 목요일 오후에 무리를 하고 쓰러져 자다가 금요일 오후 1시에 일어난 때부터, 아 등산은 그냥 밤새고 가겠구나 각오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늦어도 새벽 4시엔 일어나야 하는데 역시나 새벽 3시가 넘도록 정신이 말똥말똥. 삼십분이라도 눈을 붙여야 할 것 같아서 누워있는데 갑자기 귓가에 윙윙대는 벌레 소리. 기겁해서 벌떡 일어나서는 혼자 온 방 안을 방방 뛰어다니며 벌레와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고등학교 1학년부터 혼자 살면서 얻게 된 습관이 하나 있다. 아무리 무서워도 도망치지 않는 것. 쉽게 말해서, 나는 벌레를 아주 무서워하지만, 내가 벌레를 외면한다고 해서 내 방에 있는 벌레가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신 잡아달라고 달려가서 울 사람도 없었다. 내가 덜 무섭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당장의 무서움을 꾹 참고 벌레를 잡는 것이다. 


내가 벌레를 죽이려는 건지 나를 질식시키려는 건지 모를 정도로 에프킬러를 마구 뿌려서 결국 벌레 시체를 조심조심 변기에 넣고 물을 내리는데 성공했지만, 시계는 이미 네 시를 넘기고 있었다.




소백산 산행은 최고였다. 등산하는 8시간 내내 고도와 능선에 따라 달라지는 절경에 감탄하다가, 이어지는 저녁식사 자리에서도 감탄을 연발하자 선배 한 분이 피식 웃었다. 너 오늘만 몇 번을 감탄했는지 셀 수가 없다고. 그만큼 좋았다. 경치도, 꽃도, 바람도, 음식도!



산철쭉은 금방 피었다 금방 지기 때문에 만개한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이번 산행에서 그 보기 힘든 철쭉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멀리는 미술 교과서에서만 보던 진경산수화가 펼쳐져있고, 가까이엔 명도와 채도가 각기 다른 초록들이 가득, 발 밑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하얗고 노란 알록달록 들꽃이 가득했다. 바람도 좋고 구름도 예쁘고 하늘도 예뻤다.


같이 간 언니오빠들에게도 그랬겠지만,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나에게는 산에서 내려다보이는 경치, 길가에 보이는 풀꽃 하나하나가 다 새롭고 신기하고 감동적이었다. 등산을 시작하면서 경험하는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멋진 신세계다. 세상에, 이 좋은 걸 모르고 살았다니. 행복해, 행복해, 행복해서 견딜 수가 없다. 역시 세상에는 재미난 것들이 너무나 많고 인생은 너무나 짧다.


빨리 취업해서 돈 벌어서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다. 세상의 모든 열매를 맛보고 죽으리라!








취준생부터 퇴사 이후 새출발까지, <나의 똥같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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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 : D-Day, 회사를 나서다 (☞ 첫 글 보기)
Part 1 : 취업 준비  (☞ 첫 글 보기)
Part 2 : 직장 생활  (☞ 첫 글 보기)
Part 3 : 퇴사 이후  (☞ 첫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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