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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Feb 05. 2017

[Part1] 생존, 어른의 몸부림

[Part 1 : 낙관적 운명론자, 취업준비생의 일기]

2013.6.10(월) / 회사를 떠나기 1320일 전.


여름에는 여름잠을 자고 싶다. 물론 겨울에는 겨울잠을 자고 싶겠지만. 이렇게 더울 수가 없다. 몸은 축축 늘어지고 입맛은 뚝뚝 떨어지고. 입맛 없다고 제대로 안 챙겨 먹으니까 비실비실 어질어질 늘어진다. 뭣도 먹기가 싫어서 카페인으로 겨우겨우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느낌이다.


난 항상 짧은 하의에 얇은 민소매만 걸치고 다녀도 이렇게 더운데, 정장을 차려입고 출하는 직장인들은 얼마나 더울까? 사실 오늘 모 기업에 면접을 본다고 무릎까지 오는 H라인 스커트에 자켓까지 챙겨입었더니, 치마는 다리에 쩍쩍 달라붙고 아주 난리다 난리. 세상에, 지금까지 모든 점잖은 어른들이 이렇게 덥게 살았다니 충격적이고 존경스럽다.




어른이 된다는 건, 직장인이 된다는 건 이렇게 더워도 안 더운 척, 추워도 안 추운 척, 아파도 안 아픈 척, 슬퍼도 안 슬픈 척 살 수 있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강 다리를 넘어 달리고 있는 버스는 에어컨이 빵빵하다. 살고 싶은 대로 살았으면 좋겠는데, 정신없이 취업을 준비하는 요즘은 어딘가에 실려 떠밀려가는 기분이다. 내 인생이 그냥 마구마구 흘러가버린다. 붙잡고 싶어도 손가락 사이사이로 빠져나가버리는 순간의 연속이다.


난 어디를 향해 이렇게 숨차게 달려가고 있는 걸까? 한참동안 한 곳을 향해 달리다가 갑자기 네비게이션이 고장난 기분이다. 타이어에 펑크가 나버린 기분이다. 다른 차가 지나가다 도와주기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까, 그냥 차를 버리고 걸어서라도 어딘가로 가야 하나, 이 삼복 더위에 고장난 차를 밀어가며 삐질삐질 나아가야 하나.


취업이라는 건 정말 어려운 거였다. 이제야 그것을 체감하고 있다. 하루하루 내가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새삼 깨달으면서 살고 있다. 그리고 아주 고되기도 하다. 아주 많은 정신력을 빼앗아 가는 활동이다. 학교에서 공부했던 논리와는 다른 지점에 서 있는, 기업의 입장과 논리를 공부하고 그에 맞추어 나를 홍보해야 하는 시간들. 이제까지 살아온 나의 인생을 고용주의 입맛에 맞추어 포장하고 덧붙이고 때로는 부정해야 하는 과정들이다.


과잉친절과 과잉스펙과 과잉충성이 요구되는 과잉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는 과잉몸부림 치고 있다.


 생존을 위한, 어른이 되기 위한 몸부림이다.






취준생부터 퇴사 이후 새출발까지, <나의 똥같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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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 : D-Day, 회사를 나서다 (☞ 첫 글 보기)
Part 1 : 취업 준비  (☞ 첫 글 보기)
Part 2 : 직장 생활  (☞ 첫 글 보기)
Part 3 : 퇴사 이후  (☞ 첫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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