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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열 Apr 26. 2018

세상의 모든 밀맥주

4월의 맥주: 독일, 벨기에, 미국의 밀맥주, 그리고 호가든

지난 달에는 새로운 생명과 봄날의 따스함을 가득 담은 독일식 밀맥주, 헤페바이젠Hefeweizen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효모가 그대로 들어있어 뿌옇고, 밀이 들어가 하얗고, 뮌헨 특산 효모를 사용해 향긋하고 느끼한 맥주였습니다.


이번 달에는, 밀이 들어간 맥주 전반을 소개드리려고 합니다. 보리로 만든 술, 즉 맥주가 작년 10월부터 매달 소개드려도 바닥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하듯이, 밀과 보리로 만든 술에도 수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밀은 맥주가 유래하고 발전한 중동과 유럽에서 식량으로 널리 재배되는 작물입니다. 그리고 보리는 곡물에 들어있는 탄수화물을 효모가 발효를 통해 알코올로 바꿀 수 있는 단순 당 성분으로 바꿔주는 효소가 풍부한 곡물입니다. 밀과 보리를 이용해 술을 만든다는 것은 어느 누군가의 놀라운 발상이 아니라, 가장 자연스러운 음주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위 글에서 소개드린 헤페바이젠Hefeweizen은 독일 남부 바이에른 지방에서 유래한 가장 유서깊고 대표적인 장르입니다. 하지만 바이에른 지방에서 오직 헤페바이젠만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뮌헨 사람들도 평생 똑같은 맥주만 먹을 수는 없으니까요.


헤페바이젠 중 헤페Hefe가 가리키는 효모를 걸러서 투명하게 만든 크리스탈바이젠Krystallweizen, 흑맥주를 만들듯이 보리를 좀 더 태워서 어둡게 만든 둥켈바이젠Dunkelweizen, 도수를 높인 바이젠복Weizenbock 등등 수많은 종류의 '바이에른식 밀맥주'가 존재합니다. 헤페바이젠이라는 생소한 독일어 대신, 영어권 사람들은 이 맥주들을 통틀어 바이에른 밀맥주Bavarian Wheat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한편, 바이에른 밖에서도 밀을 사용해 맥주를 만든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중 개성있는 스타일을 창조해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벨기에와 미국의 밀맥주입니다. 평소에 호가든 또는 블랑을 좋아하신다면 이 글을 놓치지 마셔야겠습니다. 물론, 두 맥주를 싫어하셔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이에른의 밀맥주 메이커들


바이헨슈테판Weihenstephan


양조장마다 미묘하게 다른 밀맥주의 향기에 저마다의 취향이 있겠지만, 바이헨슈테판이 최고의 밀맥주를 만든다는 것은 대체로 인정받는 사실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Die Ältesten Bräuerei in der Welt)이라는 모토를 내세우는, 1040년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시작된 유서 깊은 양조장입니다. 뮌헨 북쪽 프라이징Freising이라는 작은 마을에 자리한 이 양조장 옆에는 뮌헨공과대학교의 양조학과가 '바이헨슈테판 캠퍼스'를 차렸을 정도로 그 권위와 기술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22년 후에 바이헨슈테판의 1000주년을 기념할 수 있는 축복받은 세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바이헨슈테판에서는 최고의 평가를 받는 헤페바이젠과 크리스탈바이젠을 비롯한 여러 가지 맥주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밀맥주가 아닌 뮌헨 스타일의 맥주 헬레스, 둥켈, 옥토버페스트비어(관련글 : 뮌헨 맥주가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은 방법) 뿐만 아니라, 코르비니안Korbinian이라는 이름의 도펠복을 만드는 것으로 이미 소개된 바 있는 곳입니다. (관련글 : 이 독한 맥주도 누군가에게는 생명이었다)


바이헨슈테판의 또다른 대표작은 바이젠복Weizenbock 스타일의 비투스Vitus입니다. 12월의 맥주 도펠복의 유래에서 설명드린 것처럼, 복bock은 어쩌다 보니 맥주의 도수가 높다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관련글 : 이 독한 맥주도 누군가에게는 생명이었다) 따라서 바이젠복은 밀과 보리를 특히 많이 넣어 높은 도수로 양조한 밀맥주를 의미합니다. 보통의 밀맥주보다 훨씬 강한 맛 때문에 보통의 밀맥주가 성에 차지 않는 분들에게 꼭 맞는 맥주입니다. 또한, 알코올 도수가 높으면서도 IPA 스타일의 맥주처럼 자극적인 맛으로 알코올 향을 덮어버리지 않기 때문에, 사케 혹은 드라이한 와인과의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맛의 맥주이기도 합니다.


바이헨슈테판의 바이젠복, 비투스 (사진 제공 : 페이스북 페이지 @Weihenstephan)


슈나이더 바이쎄Schneider Weisse


헤페바이젠의 유래에서 독일식 밀맥주를 살린 장본인으로 언급된 (관련글 : https://brunch.co.kr/@beerstory/12) 슈나이더 일가의 Schneider Weisse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유서 깊은 밀맥주 브랜드입니다. 


슈나이더의 맥주는 종류별로 번호와 함께 '나의' '우리의' 등을 뜻하는 마인mein, 운저unser 따위의 이름을 붙이는게 특징입니다. 예를 들어 1번 맥주는 TAP1 Meine helle Weisse : 나의 밝은 밀맥주라고 부르는 식입니다.


이 중 7번 맥주인 Unser Original : 우리의 오리지널이 가장 평범하고 대표적인 밀맥주인데, 슈나이더의 히트작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5번 맥주 Meine Hopfenweisse : 나의 홉밀맥주입니다. 홉펜바이쎄는 언뜻 헤페바이젠의 사투리 정도로 읽히지만, 홉펜Hopfen은 독일어로 홉Hopf으로써, 효모를 뜻하는 헤페와는 전혀 다른 단어입니다. 이 맥주는 특이하게 독일식 밀맥주에 홉을 다량 첨가한 스타일입니다. 홉 함량이 적거나 아예 없어 부드러움을 강조하는 보통의 독일식 밀맥주와는 달리 알싸함이 두드러진 색다른 맥주입니다.


바틀샵에 진열된 슈나이더 바이쎄의 맥주들


참고로, 슈나이더의 4번 맥주는 Meine Festweisse : 나의 축제밀맥주입니다. 여기서 축제는 물론 옥토버페스트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뮌헨의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에서는 허가받은 6곳의 양조장만이 맥주를 팔 수 있으며, 그 중 슈나이더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슬픈 과거가 있습니다. 슈나이더 양조장은 옛날 뮌헨에서 만들던 이 4번 맥주를 옥토버페스트에서 팔곤 했는데요. 이 양조장이 세계 2차 대전 중 무너지는 바람에 슈나이더는 조금 떨어진 켈하임Kelheim으로 양조장을 옮겼고, 뮌헨에서 양조한 맥주만을 옥토버페스트에서 파는 전통에 따라 옥토버페스트에 참가할 자격을 잃고 말았습니다. 맥주도 다 평화롭고 볼 일입니다.


아잉거Ayinger


앙탈스런 이름의 아잉거 양조장은 뮌헨 근교 아잉Aying이라는 깜찍한 마을에 위치한 수도원에서 만드는 맥주 브랜드입니다. 수도원에서 만드는 맥주답게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판매량을 늘리기보다는 얌전히 맛있는 맥주를 만드는 숨은 강자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국내에서 꽤 자주 보이는 것을 보니 꼭 그렇지도 않은가 싶기도 합니다.


바나나 향이 특히 풍성하게 나는 훌륭한 밀맥주 브로이바이쎄Bräuweisse를 비롯해, 어느 양조장에서나 비슷하게 하나씩 만드는 흔한 맛보다는 약간의 개성과 연륜이 묻어나는 맥주를 몇 종류 만듭니다. 두꺼비를 키우는 마녀가 부글부글 끓는 항아리에 넣을 것 같은 뭉툭하고 수수한 모양의 병과, 화려하지 않고 평면적이며 검소한 그림이 그려진 라벨이 인상적입니다.




바이헨슈테판이 그랬듯이, 아잉거에서도 셀레브레이터Celebrator라는 이름의 훌륭한 도펠복을 만들어 12월의 맥주 편에 이미 소개된 바가 있습니다. (관련글 : 이 독한 맥주도 누군가에게는 생명이었다)


파울라너Paulaner, 에딩거Erdinger


이 두 브랜드는 비싼 크래프트 맥주 펍보다는 편의점 맥주 냉장고가 어울리는 친구들입니다. 링크를 너무 많이 건 것 같아 다시 걸지는 않을 12월의 맥주 편에서 도펠복 스타일을 발명한 것으로 등장한 파울라 수도원에서 만들어 파울라너, 뮌헨 중심에서 20km쯤 떨어진 에딩Erding에서 만들어 에딩거라는 이름을 가진 이 두 브랜드는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독일식 밀맥주들입니다. 편의점에서 종종 4캔 만원 행사에 끼어 있으나, 편의점 맥주 주제에 그래도 다른 맥주들과 같은 취급을 받기는 싫은지 낱개로 사면 괜히 비싼 놈입니다.


가장 흔한 밀맥주, 파울라너와 에딩거


대중적인 맥주답게 앞서 소개드린 양질의 밀맥주에 비해서는 정향, 바나나 등 밀맥주 특유의 풍미가 덜 도드라지는 대신 보리와 홉 등 평범한 맥주의 맛을 조금 더 닮았지만, 아쉬운 대로 밀맥주라는 것을 먹어보기에는 충분합니다. 혹시 그 동안 파울라너 혹은 에딩거를 그냥 맛있어서 좋아하셨다면, 축하합니다, 당신은 밀맥주를 좋아하는 것이니 다음에는 대형마트나 전문 바틀샵으로 발길을 돌려 더 나은 밀맥주에 도전해 보시길 바랍니다.



벨기에의 밀맥주: 호가든의 험난한 여정


아실 만한 분들은 이미 아시다시피, 벨기에는 작은 덩치에도 불구하고 온갖 다양하고 고급진 맥주의 천국과도 같은 곳입니다. 생긴 것도 가격도 와인인지 맥주인지 헷갈리는 에일 맥주, 그 이름도 신성한 트라피스트 맥주, 상한 듯한 시큼함이 나는 람빅 맥주까지 언급하고 나면 마치 그 곳은 수제 맥주를 만 병은 먹어본 자만이 입성할 수 있는 높은 성처럼 느껴지지만, 그 유명한 스텔라 아르투아Stella Artois와 호가든Hoegaarden 역시 벨기에 맥주라는 것을 명심하셔야겠습니다.


홉이라는 식물이 보편화되기 전까지, 유럽에서는 맥주를 만들 때 그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온갖 허브와 향신료를 넣었습니다. 이를 그루잇gruit이라고 합니다. 벨기에 마을 후하르던Hoegaarden에서는 밀과 보리로 만든 맥주에 고수coriander와 오렌지 껍질 등을 넣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제가 벨기에어를 하지는 않습니다만, 구글 지도에 그렇게 번역되어 나오더군요.)


체코에서 출발한 필스너 열풍이 유럽을 휩쓸어 각 지방에서 만들던 고유한 맥주들을 멸종시킬 시절, (관련글 : 흔한 맥주라고 다 싸구려는 아니다) 이 벨기에 마을의 밀맥주도 1957년 톰신Tomsin의 양조장을 끝으로 명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젊은 시절 이 양조장에서 일손을 도우곤 했던 피에르 셀리스Pierre Celis는 곧 이 밀맥주를 그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의 레시피를 정확하게 구현해내진 못했지만, 고수와 오렌지 껍질을 넣는 등의 핵심 정보를 기억해낸 셀리스의 맥주는 꺼진 줄 알았던 벨기에 밀맥주의 불씨를 살려냈습니다.


셀리스의 밀맥주는 큰 인기를 끌어 꽤나 번듯한 양조장으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불씨를 너무 세게 살려버렸는지, 1985년 셀리스의 양조장은 화재로 무너졌고, 이를 복구할 돈이 없었던 셀리스는 스텔라 아르투아의 투자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댓가로 지분의 45%를 가져간 스텔라 아르투아는 3년 뒤 합병을 통해 인터브루Interbrew가 되었고, 상업적인 맥주 대기업의 노선을 걷기 시작합니다. 셀리스는 사람들이 점점 더 싼 원료를 사용하며 품질을 낮추기를 요구했고, 환갑을 넘긴 나이로 더이상 저항할 수 없다고 느껴 지분을 마저 팔고 미국으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Cook 2011)


당시의 인터브루는 지금은 AB InBev라는 이름의 더 거대한 회사가 되어 아직까지도 여러분들이 알고 계시는 호가든을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셀리스에 의하면 원가를 낮추기 위해 품질이 낮아졌지만, 여전히 고수와 오렌지 껍질의 전통을 잇고 있는 벨기에식 밀맥주입니다.


한편, 미국 텍사스로 건너간 셀리스는 같은 맥주를 통해 새로운 시작을 도모했고, 심지어 미국 시장에서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다시 한 번 돈을 많이 벌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얽혀 또다른 맥주 대기업 밀러Miller에 지분을 넘기는 등 순탄치 않은 삶을 살다가 2011년 돌아가셨습니다. '셀리스 브루어리'라는 이름은 이처럼 어둡고 기나긴 역사를 떠돌다가 작년 6월, 피에르 셀리스의 딸 크리스틴 셀리스가 다시 운영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Denney 2017) 하지만 이 곳의 맥주가 아직 우리나라에 수입되고 있지는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국내에서 셀리스 화이트Celis White라는 이름의 맥주를 발견하신다면, 아마 그것은 피에르 셀리스가 차렸다가 대기업 밀러와 미시간 브루잉의 손을 거쳐 지금은 벨기에의 Van Steenberge 양조장에서 만드는 맥주일 것입니다.


벨기에 밀맥주의 아버지, 피에르 셀리스 (사진 : Cook 2011)


피에르 셀리스에 의해 살아난 후하르던Hoegaarden식 밀맥주는 고수와 오렌지 껍질 등이 들어가 이국적인 향을 내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며, 피에르 셀리스의 양조장을 이어받은 호가든이 대표적인 제품입니다. 하지만 셀리스의 성공 이후로 많은 양조장에서 이를 모방한 스타일의 밀맥주를 많이 만들었고, 현대 크래프트 맥주의 매우 진취적이고 실험적인 정신에 입각해 상상을 뛰어넘는 온갖 재료를 첨가한 밀맥주가 판매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온갖 재료의 예로는 레몬 껍질, 생강, 레몬그라스, 육두구 정도를 들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밀을 보리와 함께 사용한 맥주 중, 바닐라 혹은 정향의 맛을 내는 바이에른 지방의 효모를 쓰지 않고 대신 고수와 오렌지 껍질로 대표되는 향신료를 넣어 이국적인 향을 낸 것들을 대체로 벨기에식 밀맥주, 벨지안 윗Belgian Wit이라고 부릅니다. 독특하고 이국적인 향 때문에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스타일로서, 대표적인 예로는 호가든, 블루 문, 그리고 벨기에와 문화적으로 가까운 프랑스의 맥주 크로낭부르Kronenbourg 1664 블랑Blanc이 있습니다. 윗Wit과 블랑Blanc은 각각 벨기에어와 프랑스어로 흰색을 뜻합니다.



미국의 밀맥주: 홉... 홉을 다오!


저렴하고 싱거운 대기업 맥주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진한 맛의 크래프트 맥주를 즐기는 움직임이 미국에서 시작되었지만, 이 움직임은 한편으로는 홉에 중독되어 더 자극적인 맥주를 찾는 방향으로 변질되는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홉을 통해 새로운 맥주 맛을 창출하고자 하는 일부 미국의 크래프트 양조장에서는 밀맥주에 홉을 적잖이 넣은 '아메리칸 위트 에일American Wheat Ale' 스타일을 창조했습니다.


밀맥주에 홉을 넣는게 새로운 일은 아닙니다. 많이는 아니지만 독일식 밀맥주에도 홉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고, 특히 위에서 언급한 슈나이더Schneider의 5번 맥주는 일부러 홉을 많이 넣은 밀맥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식 밀맥주를 따로 정의하는 이유는 홉의 품종이 크게 다르고, 또 바이에른 지방의 효모를 사용하지 않아 맛도 크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옛날부터 유럽에서 많이 사용하는 홉은 흙이나 허브 향에 주로 비견되는 비교적 어두운 쓴맛을 내는 반면, 요즘의 미국 크래프트 양조장에서는 열대 과일이나 솔 향처럼 시트러스하고 상쾌한 비교적 가벼운 쓴맛을 내는 홉을 많이 씁니다. 크래프트 맥주에서 자몽을 비롯한 과일, 특히 열대 과일 향을 느끼셨다면 그것은 효모와 함께 홉이 만들어낸 맛일 것입니다. 정말 열대 과일 과즙을 넣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아메리칸 위트 에일의 예시. 원재료명에 패션푸르트 주스 농축액이 눈에 띕니다.


물론 유럽과 미국의 맥주에 들어가는 홉이 항상 다른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독일에서는 쓰지 않았을 시트러스한 품종의 홉이 들어갔고, 바이에른 지방의 효모는 사용하지 않아 눅진한 바닐라와 정향의 맛은 나지 않는 밀맥주를 대체로 미국식 밀맥주, 아메리칸 위트 스타일로 분류합니다. 이 스타일의 맥주에는 때론 홉을 너무 많이 넣은 나머지 밀이 들어간건지 보리만 사용한건지는 생각조차 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밀과 보리라는 기본적인 재료의 깊은 맛과 밸런스보다는 화려한 겉치장의 비중이 높은 느낌입니다.



베를린의 밀맥주 : 숙성과 오염 사이


지금 우리에게 베를린과 뮌헨은 그저 독일의 두 도시일 뿐이지만, 독일이 처음 통일된 것은 꽤 최근의 일이기 때문에 두 도시는 상당히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맥주에 있어서는 말입니다.


유래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독일 북부의 베를린에서는 예로부터 시큼한 밀맥주를 즐겨왔습니다. 설에 의하면 17세기 후반, 프랑스와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에서 종교 탄압을 피해 베를린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가지고 온 문화라고도 하는군요. (번스타인 2015) 이 시큼한 맛은 발효 전 박테리아의 일종인 락토바실루스Lactobacillus가 젖산 발효를 통해 만듭니다. 겁내지 마세요. 김치와 요구르트를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니까요.


이러한 베를린식 밀맥주, 베를리너 바이쎄Berliner Weisse는 이름과 유래에 걸맞게 베를린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팔리는 맥주입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베를린 사람들은 기껏 신 맥주를 만들어 놓고는 그냥 먹으면 너무 시다며 시럽을 타 먹습니다. 베를린에서는 라스베리, 블루베리, 레몬 시럽 따위를 섞은 베를리너 바이쎄가 마치 서로 다른 맥주라도 되는 양 메뉴판에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럽을 타고 빨대를 꽂아 먹는 시큼한 베를리너 바이쎄


안 그래도 도수도 낮고 쓰지도 않은데 시큼한데다가 과일 시럽이 더해져 달기까지 한 맥주를, 맥주잔같지도 않은 넓적한 잔에 담겨 빨대로 빨아먹으니, 마치 레모네이드처럼 여름 갈증 해소용 음료로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한 달에 한 종류씩, '이 달의 모범맥주'와 함께 진하고 시원한 맥주 이야기를 배달합니다.

이 시리즈는 대한민국 공군 교양카페 <휴머니스트>에 <이 달의 모범맥주>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을 바탕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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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수제맥주? 맥주는 원래 수제였다.
10월: 옥토버페스트가 열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
10월: 뮌헨 맥주가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은 방법

11월: 모두가 겉으로만 아는 라거와 에일의 차이

11월: 영국, 에일, 그리고 IPA의 역사

12월: 이 독한 맥주도 누군가에게는 생명이었다

1월: 흔한 맥주라고 다 싸구려는 아니다

2월: 커피 대신 맥주로 스타벅스를 차려볼까

2월: 기네스의 질소충전포장: 맥주 거품의 과학

3월: 맥주가 너무 맛있어서 법에 구멍이 뚫렸다


참고문헌
C. Cook (2011) "Pierre Celis : A Conversation in Hoegaarden" http://belgianbeerspecialist.blogspot.kr/
A. Denney (2017) "Celis Brewery opens June 23 in North Austin, taps July 11 for grand opening celebration" https://communityimpact.com/austin/northwest-austin/business/2017/06/22/celis-brewery-opens-june-23-north-austin-taps-july-11-grand-opening-celebration/
https://www.ratebeer.com/beer/celis-white-belgian/24172/
번스타인 (2015) "맥주의 모든 것" 푸른숲
https://en.wikipedia.org/wiki/Lactic_acid_fermentation
다시 한 번 커버 사진을 제공해 주신 바이헨슈테판 페이스북 페이지 @Weihenstephan에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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