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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이 기록의 시작이 있기까지.

신입 같은 질문을 던진 경력직 기획자

지난해 봄, 사수 없이 우당탕탕 일을 배우며 8년 동안 얻은 노하우를 기록하기로 결심했고..


한 해를 보내며 올해 1월, 처음 계획했던 11편의 글 중 마지막 게시글을 올리며 하나의 시리즈를 완성했다.


1) IT 서비스 기획, 교과서가 없다고?

2) 혹시 벤치마킹으로 '따라 하기' 중이었을까?

3) 개발자의 마음을 들여다 본 적 있나요?

4) IT 서비스 기획의 구멍, Flow로 발견하자!

5) 의견이 다른 상대를 설득하는 3가지 노하우

6) 논리를 만드는 상위기획

7) 기능은 가설이 있을 때 살아난다.

8) 론칭 전 붐업장치를 미리 생각하기!

9) 론칭을 했는데 데이터가 안 쌓인다!?

10) 검색포털에서 내 서비스가 상위 노출되게 하는 법!

11) '나'라서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11개월이나 걸린 걸 보면 생각보다 게을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 과정에서 브런치 작가도 되고 주니어기획자들을 만나 강의도 할 수 있었다.


오늘은 에필로그를 통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에 대해 작성하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고 한다.




에필로그


5년의 경력이 쌓이고서야 처음으로 이직을 할 수 있었다. 첫 직장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보고 졸업 같은 퇴사를 하고 싶었다.


5년의 시간이 쌓이며 부족한 시스템에 대해 불평도 할 수 있을 만큼 머리가 커서 ‘이제는 때가 되었다.'며 회사를 나올 땐 새로운 설렘에 자신만만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경력으로 이직을 하면 부담이 된다더니... 사실이었다.


신입으로 시작한 첫 직장에서는 아마도 나에 대한 기대 같은 건 아무도 없었을 테지만, 이직한 곳에서는 경력이라는 기대 위에 앉아, 3개월의 수습기간을 무사히 지나 보내야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게다가 이직한 곳은 프로젝트가 끝나면 관련 부서가 모두 한 자리에 모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부족했던 부분에 대해 토론하고 개선 방법을 찾아 공표하는 룰이 있었다. 대부분의 화살이 프로젝트 매니저에게 날아오는 살벌한 룰.


여러모로 마음의 부담을 안고 적응해 가던 어느 날, 팀장님과 회의를 하던 중 이런 말을 들었다.


"신입도 아니면서 신입 같은 질문을 하네요?"


당황했다. 신입 같은 질문.

왜 신입 같은 질문이라고 생각하셨을까. 너무 당연한 걸 질문한 걸까.


사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그때의 질문이 뭐였는 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약간의 PTSD처럼...


그렇다고 너무 터무니없는 질문을 했을 나는 아니었다.

워낙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인 데다가, 6년 간 사회생활을 하며 말을 하기 전 여러 번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으니까.


어쨌든 그 코멘트는 강렬했다. 나의 기대는 '역시 이래야 경력자지. 아주 잘 뽑았어.' 같은 말을 향했는데, 현실은 '아직도 신입 같네?'라던가, '신입도 아니면서 이런 걸 물어?'같은 뉘앙스의 말을 들을 줄이야.


팀장님은 나와 8살 정도 차이나는 대기업 출신의 여성 임원이었다. 팀장님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런 말이나 듣다니.


그러나 자괴감 보다 더 크게 느껴진 건 '이러다가 내 자리, 위태로운 거 아닌가?'에 대한 불안함.


'혹시 어떤 부분이 신입 같았을까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랬나요? 하하."라고 사람 좋은 척 웃으며 알짤 딱 깔센으로 알아들은 척했다.


그러나 자려고 누워도 자꾸 생각나는 그 말.

'신입도 아니면서.'

'신입 같은.'


면접을 준비하며 팀장님이 일하는 방식에 대해 작성한 글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

팀장님만의 철학이 느껴지는 글. 경력이면서 나만의 철학도 없는 질문을 해서였을까.


고민의 고민을 하던 중, 그 당시 회사에는 1대 1로 팀장님과 정기 면담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 질문이 팀장님에게 경력자의 질문답지 않아 보인다면 나는 오히려 더 많이 물어보고 팀장님의 답을 들어야 빠른 시간 안에 거슬리는 질문들을 가지치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후로 면담 때마다 팀장님이 생각하는 일하는 방식, 업무 과정에 대해 궁금한 내용들을 질문지로 준비해 갔다.


팀장님은 면담 때마다 인터뷰하듯 자꾸 질문지를 가져오는 나를 당황스러워했지만 '준비성이 있네요.'라고 하셨고, 난 그 시간 덕분에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경험과 경력을 쌓아 리더의 자리에 오른 팀장님의 노하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8번의 면담으로 팀장님의 노하우들로 질문지의 답을 채워가는 동안 나는 다행히 수습을 통과하고 더 큰 프로젝트들을 맡으며 또다시 우당탕탕 경력을 쌓아갈 수 있었고 그런 날들이 더해지며 나 또한 팀장님처럼 일하는 방식에 대한 나만의 소소한 철학들이 생겨났다.


팀장님이 먼저 다른 회사로 이직하게 되며 팀장님을 배웅하던 날, 팀장님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팀장님 알려주신 내용 참고해서 제 철학이 생기면 나중에 꼭 기획 관련 글을 쓸게요.'

'하하. 완성되면 보여줘요.'


팀장님이 떠나가고 회사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어느 날, 팀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잘 지내나요? 우리 회사로 올 생각 있어요?'


말로만 듣던 스카우트 제안인가! 당장 해야 할 프로젝트들이 아른거려 이직을 하진 않았지만 팀장님께 받은 연락은 수습을 통과했다는 안정감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드디어 경력직으로 인정받았구나.'


그 연락이 받고 나서야 나는 이 노하우에 대한 글을 쓸 수 있었다.


아 물론, 아직 팀장님께 보여드리지는 못했다.

"신입도 아니면서, 신입 같은 글을 썼네요?"라고 하실지도 모르니까. (또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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