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퍼런서 살롱] 홍현진 창고살롱지기
창고살롱 시즌3 두 번째 레퍼런서 살롱은 창고살롱지기 현진이 <쉴 줄 모르는 여자의 '번아웃 관통기' - 정확하게 욕망하며 '나만의 방' 찾기>를 주제로 최근 겪은 심한 번아웃 경험을 나눴어요.
사회생활 12년 차. 기자, 에디터, 창업가 등 세상에 없지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콘텐츠와 서비스를 만드는 일을 해온 현진님. 창고살롱 시즌2를 마무리하며 창업한지 반년 만에 심각한 번아웃을 겪었어요.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아 도망가고 싶은, 사라져 버리고 싶은 기분"을 처음 느꼈다고 해요.
이때의 경험이 큰 충격이었고 아직도 여파가 남았는데요. 몸과 마음으로 겪은 고통과 어려움, 그리고 번아웃에서 건너기 위해 스스로 던진 질문과 시도하고 있는 실험 등을 진솔하게 나눴어요.
현진님은 레퍼런서 살롱 발표 준비를 하며 지난 시간을 회고하고 정리했는데요. 일을 시작한 후부터 10년 이상 정말 쉴 틈 없이 달려왔더라고요.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일이 곧 나인 것처럼 일해왔고, 그러면서도 하고 싶은 게 많아 끊임없이 사이드 프로젝트를 이어왔어요. 양육자가 된 이후에는 아이 핑계 대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일과 육아를 붙들고 늘 "벼랑 끝에 서있는 기분"으로 살았죠.
그런 사이사이에 번아웃이 찾아오기도 했는데요. 웹진 <마더티브> 창간, 책 <내 일을 지키고 싶은 엄마를 위한 안내서> 출간 등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연결된 비슷한 상황의 여성들이 힘이 됐어요. 서로 위로와 응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런 연결을 더 많은 사람이 경험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창고살롱' 창업을 결심했죠.
창업하면 이전처럼 힘들지 않을 거라고, 새로운 길이 보일 거라 생각했어요. 마음 맞는 동료들과 유연하게 일하며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하고 있는 일을 일치시킬 수 있을 것 같았죠. 일도 육아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지일 거라 믿었고요.
그렇지만 0에서 1을 만들어야 하는 창업은 생각 같지만은 않았어요. 공동 창업 초창기의 변수 많고 잔일이 끊임없는 업무 환경에 일을 끊지 못하고 과몰입하는 현진님의 완벽주의 성향은 독이 됐죠. 거기에 육아도 해야 하고, 독서・영화보기 등 취미도 일로 연결되면서 빠져나갈 틈이 없는 것 같았어요. 자신이 선택한 길이라 민폐 끼치기 싫은 마음, 욕 먹기 싫은 마음에 가족들에게 죄책감은 더 커졌고요.
스트레스가 심해지면서 몸에도 증상이 나타났어요. 처음엔 크게 두근거리던 가슴이 점점 답답해지고 급기야 쥐어짜듯 아파왔어요. '공황장애'를 의심하는 지인들의 조언으로 정신과를 찾기도 했죠.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퇴사하고 창업까지 했는데, 회사 다닐 때도 가지 않던 정신과 병원까지 가게 된 게 속상했어요.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몸이 아프고, 마음도 힘드니 억울하기도 했고요.
'대체 뭐가 문제지?',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자책이 시작됐어요. 자책은 자기혐오를, 자기혐오는 자기연민으로로 이어졌고요. 그러다 나에게만 화살을 쏘는 '자책 회로'는 내게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죠. 그리곤 화살 같은 질문에서 나를 살리기 위한 질문으로 질문을 바꿨어요.
현진님은 두 문장을 공유하며 자신이 스스로 던진 질문을 나눴어요.
"'내일 죽는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지면 오늘 할 일이 명확해진다고 한다. 같은 의미로 '내일 우리가 망한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망하기 전날, 우리가 할 일을 무엇일까?" - 모빌스그룹 <프리워커스>
책 <프리워커스>에서 만난 문장을 통해 '내일 창고살롱을 그만둔다면 무엇이 가장 후회될까?'라고 자신에게 물었는데요.
"일에서 아쉬운 건 있을지 몰라도 후회되는 것은 없어요.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은 다했거든요. 후회되는 건 '내가 또다시 나를,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구나'라는 거예요. 일을 충분히 즐기면서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일을 시작하도록 이끈 첫 마음은 너무 오래돼 희미해지고, 이 일을 계속하도록 미는 만족감은 귀한 만큼 드물어서, 우리는 종종 이 마음들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까딱 방심하는 사이 일의 괴로움, 권태, 의심 같은 것들이 우리를 압도해버리니까요." - 정지혜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
레퍼런서 두란님에게 선물 받은 책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의 문장은 '창고살롱을 시작했던 첫 마음이 어땠는지' 생각하게 했어요.
"너무 하고 싶어서, 즐거울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일에 매몰되다 보니 시작하는 마음은 잊게 되고 일을 잘,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압도됐던 것 같아요."
자문하고 답하며 더는 그냥 있을 수 없던 현진님은 번아웃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시도할 수 있는 것들을 시작했어요. 다른 두 창고살롱지기도 번아웃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가장 먼저 지속 가능한 업무 환경을 고민했어요. 창고살롱 시즌2를 마치고 3개월간 과감하게 시즌 OFF를 하기로 결정했고, 이후 주 4일 근무를 하기도 했죠.
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기도 했어요. '일이 곧 나'였던 현진님은 일에서 성과가 나면 자신이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지고 일이 잘 안되면 한없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어요. 그러면서 일을 멈추는 게, 쉬는 게 더욱 두려웠지만 이제는 다시 생각해야 할 것 같았죠. '나에서 일을 빼면 뭐가 남는지', '일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 것인지' 곱씹으며 일 외의 나의 것을 챙기고 내가 정말로 가닿고 싶은 것을 알게 됐어요.
눈치의 굴레를 벗어나 가족과 솔직하게 대화하며 때론 배우자에게 통 크게 요청을 하기도 했고요. 하나만 못 하는 나를 인정하며 나만을 위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기도 했어요. 좋은 사람들과 맛집 탐방, 자연에서 캠핑하며 멍 때리기, 덕질 등 무용하고 무해한 즐거움을 수집하기도 하죠.
'정확하게 욕망하며 나만의 방 찾기' 이번 레퍼런서 살롱의 부제였는데요. 현진님은 '나만의 방'에는 나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발표를 준비하며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죠. 쉬지 않고 달려오는 동안 힘들었던 순간마다 현진님 곁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너 자신보다 더 소중한 건 없으니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엄마, 야간 당직도 대신해주며 육아휴직 후 복귀를 도왔던 여성 선배들, 창고살롱 시즌3 시작에 흔쾌히 힘을 보태며 도와준 레퍼런서 멤버들, 그리고 일상의 반짝임을 알게 해주는 공동육아 어린이집 아이들까지… 현진님의 방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어요.
"나를 지킨다는 게 내 일을 지키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 나만의 일이 중요한 사람이 됐고, 내가 곧 내 일이 되니 내 일도 못 지키고 나도 못 지킨 것 아닐까 싶어요. 지금은 나에게서 일을 빼도 남는 게 많으면 좋겠어요. 가족들, 동료들, 창고살롱 레퍼런서 멤버들 그리고 사회...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모두 건강해야 나를 지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전히 번아웃을 지나고 있는 현진님은 발표 마지막에 리베카 솔닛의 책 <길 잃기 안내서> 중 한 문장을 공유하며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았던 전과는 달라진 생각을 나누기도 했어요.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길을 잃을 것인가다. 길을 전혀 잃지 않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고, 길 잃는 방법을 모르는 것은 파국으로 이어지는 길이므로, 발견하는 삶은 두 사이 미지의 땅 어딘가에 있다." - 리베카 솔닛 <길 잃기 안내서> 중
"퇴사하고 창업하면, 열심히 하면 길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또 다른 고민과 문제가 있었어요. 늘 길을 잃는 기분이었죠. '지금은 길을 잃을 수 있다,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고 나에게도, 멤버들에게도 말해주고 싶어요."
현진님이 공유한 <길 잃기 안내서> 문장에 레퍼런서 찬이님은 화답하듯 또 다른 문장을 공유했는데요. 최근 전시에서 우연히 보고 계속 마음속에 남았다고요.
"Walking in the woods and not knowing your way home… and being fine with that."
("집에 가는 길도 모른 채 숲속을 걷는 것… 그래도 괜찮아.")
"길을 잃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두 문장에 많은 레퍼런서 멤버들이 위로받았어요.
살롱에 참여한 레퍼런서 멤버들은 살롱지기 현진의 번아웃 경험에 크게 공감했는데요. 번아웃을 힘들게 건넜던 분, 현재 번아웃을 겪고 있는 분 등 안타깝게도 번아웃을 경험한 분들이 많았지만 자신의 경험도 진솔하게 나누며 서로 응원하고 위로했어요.
특히 기혼 유자녀 여성으로서 일과 육아 모두 잘 해내야 할 것 같은 부담에 번아웃을 겪은 경우가 많았어요. 이전처럼 완벽하게 일을 해내고 싶지만 아이도 잘 돌봐야 할 것 같은 마음, 변수 많은 아이 돌봄이 현실이지만 '아이 때문에'라고 말하고 싶지 않은 마음…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다 번아웃을 겪은 레퍼런서가 많았죠.
"'적당히주의자'였는데 엄마가 되고 나서부터는 '엄마라서 그런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열심히 살았다"는 시즌1 레퍼런서 주영님은 "점점 평가가 두려워지고 불안이 심해져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고 해 안타까움을 샀는데요. "몸은 움직이지만 머리는 단순하고 가볍게 하라는 처방을 받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현진님에게도 "남을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나 자신을 믿으며 살길 바란다"고 응원했어요.
레퍼런서 선미님도 육아휴직에서 복직하면서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에 아이가 없는 것처럼 일하려고 애썼던 시간을 나눴는데요. "결국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그런 내 자신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이 있었다"며 현진님의 이야기에 공감했어요.
레퍼런서 리사님은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지킬 두 가지를 얘기했는데요. "길을 잃었을 때 나에게 연료가 되는 것들을 쳐냈던 것 같다"며 연료가 되는 것으로 멍 때리는 시간, 커피 마시는 시간, 책 읽는 시간, 아이와 눈 마주치며 있는 시간 등을 꼽았어요. 이어 "내일 세상이 망한다면 뭘 할 것인가 물었을 때 나오는 답이 정말 중요한 것들인데 이런 걸 잃었을 때 길을 잃는 것 같다"며 "내게 여유를 주는 일과 나만의 나침반, 두 가지를 잃지 말아야 겠다"고 강조했어요.
레퍼런서 멤버들은 채팅창에서 즉석으로 '번아웃 방지 위원회'를 구성해 뼈 때리는 규칙 두 가지를 만들기도 했는데요. '첫째는 쓸 데 없이 비장해지지 말자, 둘째는 내 탓하지 말자'라고요. 매사에 너무 진지하지 않고 가볍게 넘길 줄도 알아야, 또 자책만 하며 주저 않지 말고 가끔은 바깥 탓도 할 줄도 알아야 번아웃이 오지 않을 거라면서요.
‘멈추면, 알게 되는 것들'을 주제로 얘기 나누고 있는 창고살롱 시즌3. 살롱지기 현진의 두 번째 레퍼런서 살롱에 이어 레퍼런서 송지희님의 '어느 90년대생의 슬기로운 백수생활', 레퍼런서 이윤승님의 '하버드 나온 전업주부입니다'가 이어졌는데요. 다른 레퍼런서 살롱 후기도 기대해 주세요.
정리/편집 : 창고살롱지기 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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