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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종현 Mar 01. 2017

사옥 프로젝트 : 네 번째 단추

기업 아이덴티티 반영하기

한 명 이상의 인간으로 구성된 모든 조직은 그 자체로써 살아있는 것으로써 오랜 시간 동안 그 조직을 구성했던 각 개인으로부터 형성되는 뚜렷한 신체적, 정신적, 정적 역량을 나타내며 이러한 조직의 역량은 개인의 역량을 초월하는 것이다. 모든 조직의 인간적 역량은 그 조직을 고유하게 만드는 뚜렷한 정체성을 형성하게 마련이다.

 ‘Identity is Destiny’ - Laurence D. Ackerman



IV. 기업 아이덴티티 반영하기


기업이 어느 정도의 생존의 시기를 넘어가면 아이덴티티(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조직을 고유하게 만드는 뚜렷한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바로 이 정체성을 외부로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 그 기업의 사옥이라고 생각한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BMW, 크라이슬러 모두 각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반영한 유명한 사옥을 가지고 있고 또 마련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사옥의 가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강남 사옥부지를 상상도 못 할 금액을 지불하면서도 취득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사옥에 아이덴티티를 반영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새로운 건물을 건축하거나 리모델링 시에 반영하는 것이다. 어떤 건축물이든지 건축주의 의사가 반영될 수밖에 없는데 건축주가 무엇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건축 설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반영하는 과정은 매우 길고 지루하지만 한편으로는 즐거운 경험을 제공한다. 보통 건물이나 집을 하나 지으면 건축주가 10년은 늙는다고 한다. 그만큼 신경 쓸 것도 많고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기업의 아이덴티티가 명확하다면 그것을 건축을 통해 반영하는 과정은 임직원들에게는 기업을 함께 만들어 간다는 소통과 화합을 이끌어 낼 수 있고 에이전시의 특성상 독특하고 감탄할 만한 아이디어들을 사옥 곳곳에 반영시킬 수 있다. 참고로 NHN은 그린팩토리 사옥을 건축할 때의 경험과 아이디어와 디자인을 도서로 출판해서 외부와 공유하고 회사의 유산으로 남긴 사례도 있으며 다음(카카오)의 제주 스페이스원은 건축 투어코스로도 유명하다.


신축을 하거나 리모델링을 하기에 좋은 곳은 그럼 어디일까? 교통이나 상권은 그 주변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수록 결정하기에 유리하니 좋은 장소가 나왔다면 부동산 중개인의 말은 참고만 하고 시간대를 다르게 여러 번 직접 방문을 해서 상권을 파악하고 특히 건축설계가나 먼저 사옥을 지은 분들에게 조언을 구할 필요가 있다. 분명 보는 눈과 생각할 수 있는 사고의 폭이 다르다는 점을 잊지 말자. 좀 더 상식적인 내용을 언급하자면 건물들 가운데 위치한 것보다는 코너에 위치하거나 양면 도로에 위치한 땅이 더 좋다. 이 점은 건물의 활용 가치에 영향을 주고 특히 주차장을 어떻게 배치할 것이냐에도 영향을 미친다. 경사가 많이 있는 땅일 경우 오히려 평지보다 더 좋을 수도 있는데 지고면이 높다면 지고면 아래는 지하로 분류되어 용적률에 포함이 되지 않기 때문에 덤으로 얻는 공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가 없다면 엘리베이터 설치가 가능한 구조의 건물이 리모델링에 유리할 수 있다. 도로도 일방통행과 같은 제한이 없는 곳이 더 좋을 것이다. 그 외에 건축 관련 법규를 확인해서 건폐율, 용적률, 증축의 가능성, 심의가 필요한 지역인지, 법정 주차대수 확보가 가능한지 등 여러 가지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전문가나 사옥 경험자의 조언이 반드시 필요하다.


주택을 구매한다면 우선 건축한 지 10년이 넘었다면 보통 땅의 가격으로만 매매가 되니 상대적으로 저가격에 구매할 수 있어 유리하지만 활용 계획을 사전에 세울 필요가 있다. 약간의 리모델링을 한 후 사무실로 활용하는 방법, 추가로 가능한 공간을 활용해서 증축을 한 후 사용하는 방법, 모두 철거를 하고 새로 건축하는 방법 등이 있을 것이다. 여의치 않다면 우선 외부에 임대를 주고 향후에 투자금액을 좀 더 모아서 사옥을 신축하거나 리모델링하는 것도 방법이다. 우선 땅의 가치에만 투자를 하고 향후를 도모하는 것도 건축비보다는 땅값의 가격이 더 빨리 오르는 지금과 같은 경우엔 고려해 볼 수 있다. 만약 신축을 계획한다면 적어도 6개월에서 1년 넘게 건축기간이 들어갈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하를 많이 팔수록 공사기간이나 공사비가 증가되는데 사전 조사에는 없었던 암반이라도 나오면 공사비가 배로 뛸 수도 있으니 신중히 계획을 해야 한다. 특히 소음으로 인한 주변 민원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전체 플랜을 잡을 때 중요한 점은 공사기간 동안에 기존 임대해 있는 오피스 임대비도 계속 내야 하므로 이중으로 경비를 지출해야 한다는 점이다. 공사비는 시설자금으로 추가로 대출은 가능하지만 일 년 정도의 공사기간과 그 기간 동안의 비용 처리 부분을 절대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 대부분의 공사는 설계변경이나 주변의 민원, 여름의 장마나 겨울의 폭설 등의 이유로 공사비가 많게는 예상보다 추가로 50%, 기간도 몇 개월 지체될 수 있는 돌발변수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이런 모든 부분은 사전에 건축설계가와 상의하고 사전 협의를 충분히 하는 것이 후에 일어날 수 있는 변수를 최대한 예측하는데 도움이 된다. 시공사도 가급적 건축설계가가 추천하는 곳이 감리도 같이 하기 때문에 문제나 분쟁이 생길 경우 건축설계가가 완충자의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건축설계가를 누구로 하느냐가 사옥을 신축하거나 리모델링하는 데에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지인으로부터 소개를 받았다면 반드시 그 건축설계가의 포트폴리오 건축물들을 그분과 직접 방문해서 꼼꼼히 살펴보고 스타일이 어떤지 미리 확인도 하고 주변에서의 그분에 대한 평가를 미리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건축설계가가 정해졌다면 많은 미팅과 대화를 통해 방향성과 구체적인 모습을 함께 다듬어 간다. 특히 일반 임대 목적의 수익형 오피스가 아닌 사옥이므로 기업과 건축주의 생각과 방향이 최대한 반영되도록 해주는 것도 건축설계가의 의무다. 하지만 건축주의 입장에서 보면 건축 전문가가 아니니 모든 걸 처음부터 다 알고 결정할 능력이 당장은 없다. 그래서 한 가지 추천하자면 건축설계가와 함께 파주의 출판단지와 헤이리 마을 건축투어를 꼭 가보길 바란다. 그곳엔 다양한 실험적인 건축물과 유명한 건축가들의 건축물들이 모여 있어서 건축양식이나 다양한 자재와 공간의 설계를 한 지역 내에서 볼 수 있다. 많은 설명을 들으며 직접 보다 보면 본인 스스로의 안목이나 상상력도 커지게 되며 우선 건축과 관련한 대화가 쉽게 풀린다.


사옥에 대한 설계에서 고려할 점은 주관적이지만 다음과 같다. 첫째. 너무 유행을 따라가지 말자. 예를 들면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노출 콘크리트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고 공간의 규모가 커야 어울릴 수 있다. 모든 건물에 노출 콘크리트가 어울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심지어 화장실의 타일도 유행에 민감할 수 있다. 건축물은 적어도 이삼십 년 이상 계속 사용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유행을 따르는 소재나 건축기법에 민감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둘째. 내부 인테리어보다는 공간의 설계가 중요하다. 내부 인테리어는 당장은 화려해 보여도 계속 생활하다 보면 식상해 보이기 쉽다. 그리고 주로 목수가 작업해야 하는데 그들의 인건비가 제일 비싼 편이고 임대를 외부에 준다면 철거까지 고려해야 한다. 그에 반해 건축설계비와 감리비는 전체 건축비 대비 단가산정 기준이 정해져 있다. 예를 들면 실내에 공간적으로 나무들을 이용해 멋지게 디스플레이하는 것보다는 흙을 밟을 수 있는 중정을 만들고 작은 나무라도 심는 것이 훨씬 더 공간을 가치 있게 보이게 한다. 특히 빛이 어떻게 들어오게 하고 창문을 통한 차경을 어떻게 하고 공간의 연결을 어떻게 하느냐는 그 회사의 아이덴티티를 반영하는 데에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셋째. 건축자재의 특징을 살린 본질적인 재료의 사용이 중요하다. 나무, 벽돌, 콘크리트, 유리 등 그 재료의 본질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유행을 덜 타고 좀 더 오래갈 수 있는 디자인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바닥을 타일로 깔끔하게 깐 것과 거칠어 보이지만 콘크리트 바닥을 투명 에폭시로 마무리한 차이는 확연히 달라 보인다. 붉은 벽돌로 쌓은 벽이 돌을 붙인 외벽보다 훨씬 더 중후하게 보일 수 있다. 애플스토어가 유리와 알루미늄의 재료 본질의 특성으로 애플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한 사례도 있다. 넷째. 너무 디테일한 것에 목숨 걸 필요가 없다. 공사를 하다 보면 아주 작은 사소한 것도 눈에 밟히고 신경이 쓰이고 시공사와 마찰을 일으킨다. 그런데 건물에서 생활을 계속하다 보면 그런 부분들은 사소하게 넘어가고 잊히게 된다. 오히려 사무환경을 고려한 사용자 편의 위주의 공간 설계를 가장 중요시하게 여기고 가장 힘을 주어야 할 부분이 어디인가를 골라서 그곳만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전체 공사비를 아끼고 전체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다섯째. 사옥에 아이덴티티를 중심으로 한 스토리를 입히자. 사옥 외부 사인물, 회의실 탕비실과 같은 공간들의 이름, 리모델링이라면 기존 건물이 가지고 있던 본질적인 부분들을 그대로 살리거나 재활용을 해서 의미를 부여하고 스토리를 부여하면 좀 더 풍부한 사옥의 이미지가 형성되고 아이덴티티와 이어질 수 있다. 베이징의 798의 공장들을 리모델링해서 갤러리를 만든 사례를 보더라도 일반 갤러리보다는 훨씬 더 이야기도 풍부해지고 격도 높아지는 사례는 충분히 많이 있다.


디지털다임의 사옥 이름은 디투 인터랙티브 빌딩이다. 원래 구옥은 70년대 미군부대 중령이 사택으로 신축을 한 후, 바로 몇 년 전까지는 헝가리 대사의 사택으로 임대가 되었던 집이었다. 이 주택을 처음 찾았을 때 방보다는 거실 면적이 상대적으로 크고 마당이 매우 넓고 지고면이 높은 점, 주변에 대사관이 많아 치안이 좋고 외국인이 많이 산다는 점이 니즈와 딱 맞았다. 넓은 마당엔 추가로 신축을 하고 기존 가옥과 연결을 해서 최대 8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오피스 공간으로 오픈을 했다. 그 이후 신축 건물 위로 증축과 기존 가옥의 리모델링을 통해서 대지면적 145.2평, 연면적 257평에 최대 130명 규모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오피스 공간, 8대 주차가 가능한 주차장, 5개의 회의실 그리고 전체가 모일 수 있는 공간까지 만들었다. 디지털다임의 아이덴티티인 인터랙티브 컴퍼니에 맞도록 많은 인터랙티브 적인 요소들이 곳곳에 반영이 되어 있다. 찾아오는 손님에게 인사말을 건네는 층계의 LED 사인, 공항의 활주로 신호같이 점멸되는 사인물, 각 회의실과 방의 명칭은 전 세계 국제공항의 이름을 따왔다. 처음 내 사무실의 이름은 JFK이다. 기존 오피스 공간보다는 불편한 점이 없진 않지만, 대나무 숲이 울창하고 전체 바비큐를 할 수 있는 마당을 갖고 있고, 미나와 폴 두 애견이 사옥을 지키고, 층간 바닥을 관통하게 하여 공중에 떠있는 수족관, 멀리 남산과 한남동의 지붕들을 볼 수 있는 뷰를 가지고 있는 것은 기존 오피스 건물에서는 가질 수 없는 경험 들이다. 처음에는 조용한 주거 단지였지만 바로 뒷골목인 한남동 아랫길은 요즘 핫플레이스로도 뜨고 있는 중이며 이곳만의 문화를 만들어 오는데 회사의 직원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고 자부한다. 바로 이 모든 것이 단독주택을 사옥 목적으로 구매하면서 이루어진 경험과 그를 통한 동네의 변화이고 또 상권의 변화다.


사옥을 마련할 때의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면 충분한 자금으로 사옥을 마련한 것도 아니고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서 신축 건물을 지을 때 건축설계가 분에게 이렇게 부탁을 했다. “우선 설계는 모두 다 해주세요. 혹시 시공하다가 자금이 모자라면 일층 혹은 이층만 공사할지 모르지만요…” 그리고 정말 열심히 사업을 해서 자금을 충당해 갔다. 그리고 이상 없이 계획대로 마무리 지었다. 그 당시엔 정말 무모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사옥을 마련하는 것은 실은 약간의 무모한 도전과 배짱 그리고 행운도 필요하다. 자로 잰듯한 계획과 실행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다음 호엔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단추. 에이전시의 장점'과 '여섯 번째 단추. 사옥의 확장'에 대해서 다뤄 보기로 한다.




목 차

사옥 프로젝트 : 작지만 강한 기업 만들기 두 번째 주제

첫 번째 단추. 주변 부동산에 관심 갖기

두 번째 단추. 지인에게 도움 청하기

세 번째 단추. 문제는 예산이 아니라 방법

네 번째 단추. 기업 아이덴티티 반영하기

다섯 번째 단추. 에이전시의 장점

여섯 번째 단추. 사옥의 확장

스페어 단추. 실전 질문과 답변





'작지만 강한 기업 만들기'는 디지털 에이전시인 디지털다임의  뉴스레터에 연재하고 있는 내용을 브런치에 맞게 재편집한 내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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