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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 미국 1년의 결산 : 생활비, 직장, 학교

June 2021 ~ June 2022

by Clifton Parker

(커버 이미지 : Albany 공항 1층 항공사 카운터. 탑승 게이트가 있는 2층 난간에 뉴욕주의 Seal이 보인다. 뉴욕주의 모토인 'Excelsior'는 라틴어로 '보다 높이'라는 뜻이다.)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파란만장했던 미국 생활 1년의 소회

미국에 머무를 수 있는 기간의 절반인 1년이 지났다. 아무것도 모르던, 아무것도 없던 미국에 와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해 왔던 것들을 돌아보고 싶다. 아직도 미국 사회에 대해 모르는 것은 여적 많지만, 어쨌든 우리가 가진 시간은 이미 절반이나 지났다. 남은 시간은 이제 1년뿐이다. 지금까지 견뎌온 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남은 시간은 참고 견디는 시간이 아니라 즐기고 누리는 시간이면 좋겠다.


1. 정착 관련 : ★★★☆☆

-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여러 가지 계약을 하고 각종 서비스에 가입해야 했다. 뭐가 뭔지도 몰라도 생각을 오래 할 시간은 없다. 다행히 같은 상황에 놓인 동기들도 여럿 있었고 회사의 지원도 있었기에 상식을 벗어나는 결정까지는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현지 한국인이 도와주는 '이민 정착 서비스'라는 것도 있기에 정 막막하면 돈을 내고 정착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 쓰레기 수거, 잔디 관리, 낙엽 쓸기, 스프링클러 물 빼기, 눈 치우기 같이 한국에선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해야 했다. 때가 되면 주말마다 마당 일을 해야 하는 게 미국 사람들의 일상이다. 특히 잔디 관리와 낙엽 쓸기를 제때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이웃의 눈총을 받게 된다. 잘 모르는 것은 옆집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했다.

- 우리 생활비는 다른 주재원들이나 옆집에 비해 적게 쓰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원래 한국에서 쓰는 것의 몇 배는 쓰고 있었다. 회사가 기존 급여에 추가로 주재 수당을 주어서 나름 보상이 되기는 했다.

월 생활비 내역 (2022년 뉴욕 업스테이트 기준)
3인 가족, 외벌이, 월세 $3,000, 집 크기 2,600sqft(2층 단독주택, 방 4, 화장실 3, 지하실)
(표) 7개 관리항목 월 최소/최대/평균 비용. 우리가 한국에서 내던 아파트 관리비의 3베 정도 되는 금액이다. 보험비는 월단위 납부액이다. 400 만원 가까이 된다.

가스 - 난방, 온수, 가스레인지, 건조기, 벽난로 && 수도 - 앞/뒷마당 스프링클러 (5~9월, 2~3일에 한번)

인터넷(Spectrum)은 기본요금이 $75, 신규가입 할인으로 $50이다. 할인을 최대한 뽑아먹기 위해 가입 1년 후 해지하고 아내 이름으로 새로 가입했다. 주소에 따라 설치 가능한 업체, 상품이 한정적이라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비싸도 참고 써야 하는 경우가 많다.

주유비는 회사에서 일정 금액 보전해 주었다. 휘발유 가격은 1갤런에 $3.5 즉 1L에 1,200원 정도다. 휘발유가격이 미국 평균인 뉴욕은 한국보다는 싸지만 캘리포니아는 한국과 비슷하거나 비싼 편이었다.

미국은 국가 의료보험이 없어서 민간 보험회사(Cigna) 상품에 가입해야 한다. 직원 복지차원으로 회사가 보험료를 대납 또는 일부를 납부해 준다. 한국 본사에서는 주재원들이 한국에서와 최대한 비슷한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보통의 미국 가정 의료보험료의 2~3배 정도 되는 Plan으로 가입시켜 주었다. 그리고 심지어 보험료도 전액 회사가 부담하는 조건이었다. 내가 만난 모든 미국 사람들은 내가 가진 의료보험이 Crazy 하다고 했다. 이 정도는 필요하지 않다고.

집의 파손을 대비하는 월세 보험은 1년마다 한 번씩 의무로 가입해야 한다. 월세 계약서에 가입이 명시되어 있고 집주인이 보험 계약 서류의 사본을 보내달라고 한다. 가입하기 전에 보험 적용 옵션을 Realtor나 집주인에게 문의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사는 지역은 그렇게 비싼 편이 아니었다.

보험을 제외하더라도 고정 생활비는 우리가 한국에서 쓰던 것의 세배정도 되었다. 뉴욕은 한국보다 급여 수준이 높은 곳이지만 지출도 많으니 생활의 질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잘된 일 & 잘 안된 일

- 사고도 문제도 없이 하고자 한 것들을 다 해냈고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며 일상이 무리 없이 돌아가게 만들었다. '그저 살아있게 끔 만든 것'이지만 아주 고된 일이었다.

- 넓은 마당, 큰 나무가 있는 싱글 하우스의 삶을 처음 경험해 보았다. 계절마다 주말마다 신경 써야 할 일이 있지만 색다른 즐거움도 많았다. 집으로 찾아온 사슴과 여우, 여름밤 뒷마당의 반딧불, 우리 집 나무에 둥지를 튼 찌르레기, 딱따구리가 쓰러뜨린 뒷마당 나무 같은 것들은 한국에선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 이사 초반엔 모든 것이 어색하고 위축되었지만 지금은 동네 사람들이 우리가 누구인지 다 알게 되었고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영어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는 게 더 중요했다.


- 각종 서비스나 보험을 가입할 때 닥치는 대로 하다 보니 필요하지 않은 것에 가입되어 있거나 필요한 것을 빼먹거나 하는 일이 많았다. 시행착오에 따른 비용이라고 생각하고 감수했다.

- 콜센터 직원과 하는 전화 통화는 미국에 있는 내내 적응되지 않을 것 같다. 상대를 보지 않은 채 빠르게 대화를 주고받는 건 여전히 힘들고 어렵다. 더구나 익숙하지 않은 주제라면 더 그렇다.

- 이삿짐은 결국 정리가 덜 된 채로 고정되고 말았다. 우리는 이 '임시'인 상태로 남은 1년을 마저 살고 돌아가게 될 것이다. 누군가를 집에 초대하기에 부끄러운 부분이 많지만 이젠 이것에 에너지를 더 쓸 수가 없다.


총 평 : 수고했고 어쨌거나 생활이 돌아가게 만들었다. 도움 받을 수 있는 이웃이 있으니 얼마나 든든한가.

(왼쪽) 앞마당에 큰 단풍나무가 있는 우리 집. 스프링클러를 틀어 잔디에 물을 주고 있다. (오른쪽) 현관문 바로 옆 나무 안에는 찌르레기 한마리가 둥지를 틀었다.

2. 미국 직장 & 주재원의 삶 ★★★★☆

- 한국은 근무시간이 긴 것으로 세계 상위권이 아닌가. 한국에서 했던 수준으로 일을 하면 미국에서도 부족하지 않다. 미국 직장인들이 시간에 자유롭다는 편견이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도 야근의 노예다.

- 파트너들 역시 이민자 비중이 높아서 영어가 부족한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해 주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들이 말할 때 천천히 말해주거나 하는 것은 없으니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 파트너 동료 Ushik와 Yuanjing은 내가 공유해 주는 업무 노하우에 대해 고마워했다. 같은 업계라도 회사의 크기와 환경에 따라 서로의 방식을 낯설어하는 경우가 있었다. 나 역시 그들에게서 배운 것이 많다.


- 한국 파견 인력에 대한 파트너들의 기대치는 높지 않아 보였다. 파트너들과 같은 시스템으로 평가를 받는 것도 아니고 2년마다 사람이 바뀌기 때문에 업무 연속성을 기대하고 있지 않기 때문인 듯했다.

- 나는 본사의 직원이 아니라 미국 회사의 직원이라는 생각을 항상 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Ushik와 Yuanjing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혹시 아는가 나중에 전혀 다른 상황에서 이들을 다시 만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는 그 순간이 올 때까지 복귀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 자발적으로 1시간짜리 자기소개 발표를 한 것은 내 인생에도, 파트너 동료들 사이에서도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모두가 반겨주었고 동료들에게 Social 성향이 강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 주재원 동료들이 그 자리에 없었던 건 매우 아쉬운 일이지만.


-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회사는 한국의 급여 말고도 추가 수당, 주택 및 의료보험 지원, 무이자 대출 등을 지원해 주었다.

- 주재원은 아예 이민을 온 한국인들과 다른 입장이라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다르다. 모든 걸 쏟아부어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넉넉히 즐기다 시간 되어 집에 돌아갈 사람들 사이엔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다. 주재원이 아닌 한국 사람들을 만날 땐 이 점 잘 이해해야 했다.

- 회사 안에서나 밖에서나 주변 신경 안 쓰고 철저히 '2년짜리 여행자'로 사는 주재원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것이 합리적인 '계산'이라고 생각하는 듯했지만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 미국까지 와서 골프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다. 차라리 집에서 TV를 보는 것이 미국을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


잘 된 일 & 잘 안된 일

- 회사 대회의실에서 Halftime 발표를 한 것은 내가 미국을 떠난 이후에도 사람들 사이에서 얘깃거리가 될만한 큰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미국 생활 전반기 최고 업적 중 하나.

- 파트너 동료들과 경쟁의식을 갖지 않으려 했고 내가 가진 지식을 최대한 나눠주려고 했다. 매주 한 번씩은 Ushik을 따로 만나서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 한국의 본사를 그만두지 않고도 다른 회사의 업무 분위기를 완전히 체득해 볼 수 있는 것은 경력상 아주 경험이다. 게다가 현재의 파트너 동료들은 나에게 상당히 우호적이다.


- 두터운 친분의 벽에 막혀 결국 한국 주재원 가족과 친분을 만드는 것은 포기하게 되었다. 미국 사람들 보다 한국 사람들이 가까워지기 더 어렵다. 그래도 헤이니네와 함께 할 수 있음에 고맙게 생각했다.


- 총 평 : 미국 동료들과 일하면서 나 자신에 대해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를 해 볼 수 있게 되었다. 하마터면 우물 안 개구리인 채로 살아갈 뻔했다.


3. 세은이와 아내 ★★★☆☆

- 세은이의 학교 적응은 그럭저럭 성공한 것 같지만 문제를 일으키진 않아도 적극적으로 다가가려는 마음은 없어 보인다. 어쩌면 한국에 돌아갈 생각만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영어를 잘할 수 있게 만들어서 미국에 왔다면 지금과는 달랐을까? 돌이킬 수 없으니 안타깝고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 학교에서 보내주는 평가는 꽤나 후한 편이었다. 특히 수학에 재능이 있다는 평가가 많았다. 미국 공립학교는 학습 수준이 낮고 공부를 적게 시킨다는 편견이 한국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고 느꼈다. 세은이가 학교에서 매일 한 장씩 가져오는 수학 숙제는 단순 계산보다는 문제의 서술을 이해하고 계산식을 수립해서 풀어야 하는 것들이 많다. 공부를 안 하려면 원 없이 안 할 수도 있지만 잘하려고 하면 스스로(때로는 부모까지 나서서) 정말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하는 곳이 내가 본 미국의 학교였다.

-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에 선생님들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싶었고 미국 학교에서는 충분히 허용되는 수준의 일이다. 학교 상담에서나 여행기를 보내는학교 선생님과 소통하기 위해 했던 노력은 굉장히 도움이 되었다. 아마 그들에게도 굉장히 독특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단지 그 내용뿐만이 아니라 내가 보여준 태도까지.

- 학교 공부 외에 별도의 과외가 필요했다. 미국 아이들에게도 학업이나 예체능 관련해서 학원과 과외가 일상화되어 있다. 세은이는 DyAnn과 영어 회화를 했고, 한국에서 이민오신 선생님을 찾아서 미술, 피아노 과외를 했다. 한국 선생님과의 시간은 세은이의 향수병을 달래주는 데 도움이 되었다.


- 아내는 헤이니 엄마와 도서관의 한국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아내도 세은이처럼 한국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 친해질 수 있는 한국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 이민자를 대상으로 하는 무료 영어 교육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미국 사회에서는 이민자 또는 이민자의 가족을 노동 가능한 인력으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도서관 영어 수업은 일상 적응에 초점이 맞춰진 반면 다른 기관에서는 직장(주로 마트 점원들이 쓸 법한 말들) 영어를 전투적으로 가르치는 곳도 있었다.


잘 된 일 & 잘 안된 일

- 학교에서 Madison과 Liv 같은 배려심 있는 아이들을 친구로 사귀게 되었다. 다양성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 고작 10살짜리 여자애들이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영어 못하는 세은이를 잘 챙겨주었다. (세은이의 주장에 따르면) 친구 관계가 항상 좋았던 건 아니지만, 부모인 내 입장에서는 친구인 채로 남아준 그 아이들이 고마울 뿐이었다.

- 세은이가 그 또래 보통의 미국 아이처럼 되기 위해선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아이들은 이민 가서 3개월이면 적응한다'이런 말도 있지만 영어 유치원도 안 가고 한국아이로만 살아온 세은이에게는 해당 없는 말이다. 그래도 Mrs. Miller와 Mr. Sweet 같은 선생님들의 도움과 세은이 본인의 노력으로 무사히 4학년을 마칠 수 있었다.

- 주재원들의 소개로 알게 된 영어 과외 선생님 DyAnn은 경력과 인품이 우리에게 딱 맞는 아주 좋은 분이었다. 영어 과외 외에도 우리에겐 친구가 되어주었고 세은이에겐 할머니처럼 대해주었다. 미국에서 우리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 아내는 결국 뉴욕 운전면허를 따는 데 성공했다. 미국에서 운전을 하느냐 못하느냐는 어떤 삶을 사느냐를 결정하는 아주 큰 문제인데 그걸 해냈다.


- 2년이라는 시한부지만, 미국 사회에 올인하기로 한 나와는 달리 아내와 세은이는 이미 마음속으로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국에 돌아갈 날짜가 정해진 상황에서 아이를 미국 학교에 적응하도록 해야 하는지 한국인으로 살아가도록 해야 하는지 그 정도의 갈피 잡기가 쉽지 않았다.

- 두 번의 운전 사고 이후 아내는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활동폭을 넓히는 것을 포기한 듯했다. 이제껏 해 온 것이 대견하긴 하지만 더 잘할 수 있는데... 아내의 심정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어서 더 이상은 아내를 괴롭힐 수 없었다.


- 총 평 : 운이 좋았고 한국에서와는 다른 차원의 노력을 했다. 남은 시간은 아내와 세은이에게 좋은 추억으로 한국에 돌아갈 수 있도록 잘하자.

(왼쪽) 동네친구 Madison과 자전거를 타는 세은이 (가운데) 도서관에서 DyAnn과 과외하는 모습 (오른쪽) 한국인 미술선생님과 하는 미술 과외


Continued...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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