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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 미국 1년의 결산: 여행, 대인관계

June 2021 ~ June 2022

by Clifton Parker

(커버 이미지 : 우리 집 관리를 도와주는 Tim의 집 뒷마당. Tim의 고양이 Alvin이 집으로 가고 있다. 매일 아침 우리 집 뒷마당을 한 바퀴 산책하는 녀석으로 이미 반쯤은 우리 식구가 되었다.)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 '미국 1년 결산 : 생활비, 직장, 학교'에서 계속


4. 여행 ★★★★☆

- 우리는 미국에 있는 2년간 매달 한 번씩은 장거리 여행을 가기로 했다. 여행 관련 지출이 부담되긴 했지만 주재원 수당도 있었고 인생에 단 한 번뿐인 기회니 초과 지출을 감수해도 괜찮았다. 아마 미국에 온 주재원들 대부분이 이런 심정이겠지.

- 한국에선 경험하지 못했던 1,000km 이상의 장거리 운전에 익숙해진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미국은 운전해서 끝도 없이 갈 수 있는 곳이니까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 키 웨스트, 데이토나 비치, 서배너 같은 곳은 로드트립하면서 처음 알게 된 곳이고 만약 한국에서 비행기 타고 오려면 가기 어려운 곳이다.

- 매달 한 번씩 여행을 가니 한국에서 생각해 온 미국의 여행지들은 금세 다 가볼 수 있을 것 같다. 주재원들의 표현대로 '미국 정복을 마치고'나면, 유럽이나 남미로 여행을 가기 시작한다는데 한국보다 비행시간도 짧고 비용도 적게 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 미국 밖으로 나갈 생각은 없다.

- 미국에선 신용카드를 개설할 때 가입 포인트를 꽤나 후하게 주는데 이것을 주요 호텔 포인트로 환전할 수 있다. 적지 않은 양이라서 로드트립 숙박비로 유용하게 사용하였다. https://www.milemoa.com/ 에서 자세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 1년이 지난 지금 미국 50개 주 중 16개 주에, 문자 그대로 우리의 족적(足迹)을 남겼다. 로드트립을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남은 1년 동안 몇 개나 더 추가할 수 있을까?


잘 된 것 & 잘 안된 것

- 8시간 넘는 장시간 운전에 자신감이 생긴 것은 아주 다행이다. 사람별로 성향, 체력 등등 개인차가 커서 장거리 운전이 가능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은데, 어쨌든 우리는 여행 옵션 중 하나로 로드트립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옵션이 많이 있는 건 좋다.

- 로드트립은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것에 비해 비용상 장점이 있고 한국에서는 할 수 없는 형태의 여행이라는 것에 매력이 있다. 차를 타고 지나면서 계절이 바뀌는 것, 시간이 변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는 건 정말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다.

- PPT로 여행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리 가족의 기록으로도 의미가 컸고 사람들과 공유하기에도 좋은 형식이었다. 이 여행기는 학교, 회사, 동네, 도서관 등 내가 가는 모든 곳에서 우리 가족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 한국인인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미국의 여행지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한국에선 몰랐던, 미국 사람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 그런 곳을 찾아서 다니고 싶어서 공부를 좀 해야 했다.


총평 : '로드트립과 여행 PPT' 이것은 우리가 미국 사람들과 어울려 지낼 수 있게 해 준 가장 중요한 아이템.

(사진) 미국 생활 1년간 거쳐간 곳들과 주요 여행지.

5. 미국 사람들과 대인 관계 ★★★★★

- 미국에 살아보니 한국에서 보던 미국 뉴스는 미국 사람들의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여주던 것이었다. 내가 실제로 만나본 미국 사람들 중에 한국인의 상식의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 똑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 미국은 주별로, 도시별로, 동네별로 사는 모습의 편차가 크기 때문에 '미국 사람'이라는 한 단어로 모두를 묶어서 표현하기 어려운 곳이다. 그래서 점잖은 미국 사람들은 잘 모르는 사람을 처음 대할 때 최대한 편견 없이 다가가려고 하는 분위기가 있다. Mark와 Judy, Owen이 그랬다.

- 1년간 지내면서 인종 차별이나 부당한 상황에 처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모든 상황이 매끄러웠던 건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흔히 겪을 수 있는 일들이었고 언어 또는 문화 차이로 비롯된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인종 차별이 없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상황을 오해하여 인종 차별을 받았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다. 인종 차별은 굉장히 무례하고 무식한 행동임에 분명하지만, 누군가에게 'Racism'이라고 지적하고 나면 공격과 방어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나에게나 상대에게나 되돌릴 수 없는 말이니 신중해야 한다.

- 미국인들 입장에선 영어 못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상황이 굉장히 낯선 일은 아니다. 집에서 영어를 쓰지 않은 사람이 전체 미국인의 20%가 넘는다는 설문조사도 있다. 그래서 영어를 잘 못한다고 위축될 필요는 없다. 미국 사회에서는 이것을 포용해야 한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 주재원들은 회사가 주는 '넉넉한' 지원금으로 대체로 소득과 교육 수준이 높고 치안이 양호한 지역에 살고 있다. 보통 학교 점수를 따라서 집을 구하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렇게 된다. 하지만 바뀐 환경에 대한 불만이 많아 열악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본인의 급여와 회사의 지원을 더해 생각해 보면 미국 소득 통계상 굉장한 상위층인데도. 아마도 생활 수준의 기준을 잡아줄 현지 이웃과 교류가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 한국 주재원들과의 관계에 큰 희망을 갖지 않기로 한 것은 결과적으로 우리에겐 잘 된 일이었다. 미국에 와서 골프장을 안 가면 인생을 낭비한다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내 생각에 진짜로 미국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은 골프나 테니스 같은 것들이 아니고 미국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이다. 주재원들 상당수는 유명한 여행지 목록을 경쟁적으로 채우려고는 했어도 이웃 또는 회사 파트너와 어울리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각자 원하는 게 다르니 모두와 친할 필요는 없다.

- 한국인들은 미국에서도 한국 사회의 룰대로 살려는 경향이 있었다. 수십 년 오래 살아도 미국인 사회에 섞이지 못한 채 한국인들 사이에서만 살고 있는 사람도 많이 봤다. 이건 단지 한국사람들만 그런 건 아니긴 했다. 온전한 정착을 하려면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영어를 얼마나 잘하는지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니고 함께 하려는 생각과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가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약간의 운.


- 옆집 Mark & Sarah도서관 친구들을 만나게 된 건 미국 생활 최대의 행운이었다. 나는 그 행운을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했고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노력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었다. 이것을 통해 인간관계가 선순환되었다.

- 여러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웃 간 교류가 많지 않고 상당히 건조한 인간관계로 지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나에게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들은 '친분도 없고 영어도 어색한' 나를 친구도 받아준 사람들이었다.

- 타인을 대할 때 지나치게 경계만 할 것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진심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어차피 상대는 나를 보기만 해도 내가 외지인이며 영어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굳이 무서워하고 창피해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감춰지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움츠리고 있으면 타인도 나를 경계하게 된다.

- 내가 누군가의 친구, 어디엔가 소속되어 있다는 감정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억울하고 불편한 일을 겪었을 때 그것을 하소연할 사람이 있다는 것, 같이 화내주고 같이 웃어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굉장한 힘이 되는 것이었다. 나와 입장이 고만고만한 주재원 동기들도, 내가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아내조차도 Mark나 Owen이 주는 안정감을 대신해 줄 수는 없었다.


잘 된 것 & 잘 안된 것

- 이사 오자마자 동네에 편지를 돌린 것은 미국에서 최고로 잘한 일이다. 그 덕에 이웃들은 우리 가족을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특히 옆집 Mark & Sarah 가족과는 서로 식사도 초대하게 되었고 과일이나 간식 같은 것도 종종 나눔 하며 지냈다. 미국까지 와서 친한 동네 형이 생긴 느낌이다.

- 도서관 수업을 용기 내서 들으러 간 것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미국 생활 이해의 폭을 상당히 그리고 체계적으로 넓혀주었고 다른 이민자들의 사정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수료식, 신문 기사 등 잊을 수 없는 순간도 있었다. 남은 1년도 도서관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고 싶다.

- 출근을 개시하면서 파트너 동료들과 한 자리에서 일할 수 있게 되어 너무 다행이었다. 한국에서 일했던 경험과 지식이 장점이 되는 경우가 꽤 있었기 때문에 Ushik와 Yuanjing은 나와 함께 일하는 것에 만족하는 듯했다. 특히 Halftime 발표와 그 이후로 많은 사람들과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게 된 것은 나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했던 큰 성과였다.

- 주재원들과 두루 가깝게 지내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지만 친분이 없어서 어색하다 하시는 분도 있으니 내가 억지로 매달리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게다가 나는 골프도 안치면서 인생을 도서관에서 낭비하고 있으니... 서로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니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천만다행으로 유일하게 헤이니네가 우리의 생각과 사정을 이해해 주어서 세은이가 외롭지 않을 수 있었다.

- 미국에서의 인간관계는 내가 한국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느낌이었다. 다가갈수록 더욱 반겨주는 느낌. 여유롭고 넉넉한 인심. 아마도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또는 직장 분위기 덕분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복잡한 셈 없는 친절함은 정말 생전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 미국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잘 되지 않았던 일은 하나도 없었다.


총 평 : 1년 뒤에는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미국에 남겨 두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니. 벌써 슬프다.

[꾸미기]도서관수업.jpg
(왼쪽) 도서관 영어회화 수업 시간 (오른쪽) Owen의 집에서 시민권 수업 수료생들과 함께한 저녁 식사. 미국에서 BBQ는 남자의 일이다.

이제 미국 생활의 전반전이 지났다. 종합적으로는 미국 생활에 매우 만족한다. 많은 일을 해냈고 많은 것이 여전히 부족한 것도 있다.

믿고 의지할 미국 사람들을 만난 것, 그들과 친구가 된 것은 모든 단점을 덮고도 남음이 있다. Lodico 가족(Mark, Sarah, Gavin and Grant)과 함께하는 시간, 도서관에 수업 들으러 가는 시간은 정말 행복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남은 시간은 1년뿐. 지금까지 정신없이 지내왔던 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 남은 1년이 순식간에 지나가겠지. 그때가 되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가야 한다.


후회 없이 한국에 돌아갈 수 있게 최선을 다해야겠다.


Fondly,


C. P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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