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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signer MYO Aug 15. 2022

Book 30. <책들의 부엌>

갓 지은 맛있는 책 냄새가 폴폴 풍기는 ‘소양리 북스 키친’ 이야기

서른 번째 책.

책들의 부엌

김지혜 / 팩토리나인 / 2022.5.12



"그렇지. 스무 살 때 꿈꾸던 건 유치하고 비현실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겠어. 꿈이란 건 원래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거라서 자신을 더 근사한 사람이 되도록 만드는 에너지라는 걸. 인생의 미로에 얽히고설킨 길에서 목적지를 잃어버렸을 때, 가만히 속삭여 주는 목소리 같은 거였어. 꿈이란 게 그런 거였어."

- 75p



솔직히 나윤은 뭘 써야 할지 몰랐다. 마음은 어수선하게 들떠 있었고, 정리된 생각은 한 조각도 없었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니까 조금은 횡설수설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게 아니니까. 그냥 일기 쓰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 순간의 마음을 추억으로 남겨놓고 싶은 것 뿐이었다.

- 85p



나윤은 오랜만에 자신의 감정과 대화를 나눈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막연함, 두려움, 소외감, 무기력함, 아쉬움 같은 감정을 애써 밀어내며 살아왔다. 긴장한 상태로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며 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나면 집에서는 그저 쉬고 싶은 생각뿐이라 내면 상태가 어떤지 돌아볼 기력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감정을 제대로 만나보니 생각보다 아담한 크기였다. 거대하고 울창한 밀림 같은 감정 속에서 길을 잃을까 두려워서 발을 들이지 않고 살았던 자신에게 미안했다.

- 86p



소희는 작업실의 통유리 창 너머로 매화나무의 가지가 바람에 흔들거리는 모습을 바라봤다. '모험을 떠날 수 없는 나무들은 한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살지만, 꿋꿋이 서서 종종 내면으로의 여행을 떠났다가 현자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존재들이 아닐까.'하고 소희는 생각했다.

- 98p



Someday I'll wish upon a star,

and wake up where the clouds are far behind me

Where troubles melt like lemon drops,

away above the chimney tops,

that's where you'll find me.

나는 언제가 별님에게 소원을 빌 거에요.

그리고  멀리 구름이 있는 곳에서 잠을 거에요.

걱정이 레몬 사탕처럼 녹아버리면,

굴뚝 꼭대기 저쪽에 내가 있을 거예요.

- 102p



"어쩌면..... 다행인지도 몰라요."

"어떤 게요?"

"인생에 급제동이 걸린 거요. 그냥 직진만 하다가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가 넘어가는 게 아니라 멈춰 서서 생각할 기회를 기회를 가지게 된 거요."

- 117p



"지인이 그 책의 문장이 재치 있고 반짝이는 지혜로 가득 차 있다면서 흥분해서 추천해 줬었죠. 그 책에서 작가가 마크 타이슨의 말을 빌어서 이렇게 얘기해요.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이라고요."

- 118p



"......반딧불이는 1년 중에 불빛을 내며 살아 있는 시간이 고작해야 2주래. 열네 번의 밤 동안 빛을 발하다가 우주에서 사라지고 말지. 인생에서 진짜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그렇게 자주 있지 않다는 얘기처럼 느껴지더라....... 우리가 진실을 이야기하는 밤이 인생에서 열네 번은 될까?"

- 152p



때로는 그림움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있는 거라고 유진은 생각했다. 때로는 그리움이 풍기는 은은한 감정에 기댈 때가 있다. 때로는 그리움이 풍기는 은은한 감정에 기댈 때가 있다. 때로는 그리운 마음이 눈송이처럼 그 사람에게도 내려서, 그도 문득 유진을 떠올릴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 214p



누구에게나 첫눈 같은 순간이 있는 거라고 유진은 생각했다. 소란스럽던 일상이 일순간 고요해지고 나풀거리듯 변화가 시작되는 때가 있다. 실패와 균열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지난날이 첫눈으로 하얗게 덮이고 나서야 드러나는 인생의 윤곽이 있다. 뾰족하게 솟은 전나무 끝부분도 눈으로 뒤덮이면 둥그렇고 하얀 눈꽃 나무로 변한다. 그제야 이해되지 않던 고통스러운 시간은 의미를 가진 풍경이 된다.

- 221p



"때로는 싸우기도 하고 장난도 치는 가족 모습을 보면서, 사랑의 흔적이 쌓이는 모습이라는 생각을 했어.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은 흔적에 기대서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몰라."

- 254p



"......수혁아, 몇 시간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라. 깊은 우물 속 같은 마움을 꺼내며 밤새도록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이면 되는 거야. 아버지가 살아보니까 그렇더라. 화려한 시절도 지나가고, 미칠 듯한 열정과 환희의 순간도 빛이 바래지. 하지만 이야기는 영원히 남아. 이야기는 마음속에 남는 거니까. 어디 닳아서 없어지지도 않고, 깨어져 부서지지도 않더라......"

- 27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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