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순간
나는 아직 안정되지 않았다.
불안은 여전히 매일같이 찾아온다.
수입은 일정하지 않고,
앞으로의 계획도 완벽하지 않다.
어떤 선택이 옳았는지 결과로 증명된 것도 없다.
그런데도 이전과 분명히 달라진 게 하나 있다.
나는 더 이상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전의 불안은 늘 같은 형태였다.
언젠가는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리고,
언젠가는 누군가가 해결해주길 기대하는 불안.
설명이 충분하면 행동이 따라올 거라 믿었고,
조금만 더 참으면 구조가 바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불안의 끝에는 항상 ‘대기’만 남았다.
지금의 불안은 다르다.
이 불안은 내 선택 위에 있다.
내가 일을 늘렸고, 내가 시도했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해
한 발씩 옮기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불안하지만 마비되지는 않는다.
카드 결제일이 다가오면 여전히 가슴이 먼저 반응한다.
휴대폰 알림이 뜨는 순간, 이번 달은 어디를 줄일지
숫자가 자동으로 계산된다.
하지만 그 계산 끝에 나는 이전처럼 멈춰 있지 않다.
예전에는 불안의 끝이 ‘기다림’이었다면,
지금은 ‘다음 선택’으로 이어진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돌이켜보면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불안 그 자체가 아니라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다는 감각이었다.
같이 살고 있었지만 삶의 방향을 함께 정하지는 못했고,
대화를 해도 구조는 바뀌지 않았고, 문제를 말하면 태도가 문제로 돌아왔다.
그 안에서 나는 계획도, 선택도 가질 수 없었다.
오직 버티는 일만 남아 있었다.
그때의 나는 혼자였지만 그건 홀로서기가 아니라
선택권이 없는 고립에 가까웠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혼자 감당하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무엇을 감당할지, 어디까지 책임질지는
내가 정할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판단을 기준으로
내 삶을 설명하지 않는다.
왜 이 일을 하느냐, 왜 지금 이 선택을 하느냐,
왜 아직 웃지 않느냐는 질문들에
답을 준비하지 않기로 했다.
불안은 사라져야 할 감정이 아니라
방향을 잃지 않게 붙잡아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완전히 서 있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엎드려 있지는 않다.
확신은 없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자리.
그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이미 이전과는 다른 위치에 와 있다.
*이 글은 한 집에 살면서 각자 살게 되었던 시간들을 기록한 연재의 일부입니다
앞선 이야기들은 아래에서 이어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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