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을 끊은 게 아니라, 선택권을 되찾았다는 것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그렇게 혼자 버티는 게 외롭지 않느냐고.
하지만 나는 요즘에서야
고립과 홀로서기가 다르다는 걸 분명히 알게 되었다.
고립은 선택권이 없을 때 생긴다.
기댈 곳이 없어서가 아니라,
무엇을 선택할지 스스로 정할 수 없을 때
사람은 가장 깊이 고립된다.
나는 오랫동안 그런 상태에 있었다.
같이 산다는 이유로, 부부라는 이름 아래서
책임의 공백을 설명 없이 메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때의 나는 혼자였지만,
그건 홀로서기가 아니라
고립에 가까웠다.
언제 돈이 들어올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계획을 세울 수 없었고, 대화를 해도 구조는 바뀌지 않았고,
문제를 말하면 태도가 문제로 돌아왔다.
그 안에서 나는 기대도 선택도 가질 수 없었다.
오직 버티는 일만 남아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관계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빨리 돈을 벌어서 아이들과 조금은 숨 덜 막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불안으로 조여진 생활이 아니라, 긴장 없이 하루를 보내는 삶을.
그 욕망이 부끄럽지는 않았다.
그건 사치가 아니라 내 삶의 선택권을 되찾고 싶다는
가장 현실적인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혼자 감당하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분명히 달라진 게 있다.
무엇을 감당할지, 어디까지 책임질지를
내가 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도움이 필요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도움의 조건을 분명히 한다.
설명만 있고 책임이 없는 구조,
공백은 나에게 넘기고 태도만 요구하는 관계.
그 안으로는 다시 들어가지 않겠다고
정했을 뿐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차갑다고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건 냉정함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필요한 정리라는 걸.
홀로서기는 아무에게도 기대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기대할 사람과 기대하지 않을 상황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나는 이제 혼자여도
고립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이 글은 한 집에 살면서 각자 살게 되었던 시간들을 기록한 연재의 일부입니다
앞선 이야기들은 아래에서 이어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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