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긋는다는 것

더 이상 넘기지 않기로 한 것

by 산다

선을 긋는다는 말은 대개 차갑게 들린다.
정이 없어진 것 같고, 사람을 밀어내는 행동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배운 선 긋기는
멀어지기 위한 선택이 아니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에 가까웠다.


나는 오랫동안 선을 긋지 못했다.
부부라는 이름 아래서, 같이 산다는 이유로
책임의 경계와 감정의 경계를 흐릿하게 두었다.


그 결과, 공백은 늘 내 몫이 되었고
설명은 늘 나의 일이 되었다.


선을 긋기 시작한 건 상대를 벌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더 이상 공백을 메우면서 태도까지 관리하지 않기 위해서였고,
문제를 대신 책임지면서 관계의 온도까지 떠안지 않기 위해서였다.


선은 말로 세워지지 않았다.

생활 속에서 드러났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하지 않을 일을 구분했다.
그리고 그 기준을 설명하기보다 행동으로 고정했다.


이후 내가 저녁 일을 하게 되면서

같이 사는 방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들 하원과 저녁 식사는 때부터 남편의 몫이 되었다.
식사는 여자가 당연히 챙겨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에 더 이상 순응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 변화는 내가 없는 시간 동안 일어나고 있었다.

식탁 위에 놓이는 그릇이 달라졌고, 반찬의 종류가 달라졌다.
아이가 “오늘은 아빠가 해?”라고 묻기 시작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아이들은 빠르게 적응했다.
‘엄마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가 하면 되는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밖에서 돈을 벌었고, 남편은 집 안의 시간을 맡았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졌던 역할이 처음으로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이 변화는 싸움의 결과가 아니었다.
누군가를 설득해서 얻은 합의도 아니었다.

선을 긋겠다고 내가 결정한
하나의 선택이 만든 풍경이었다.


선이 없던 시간 동안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대신 감당했고,

그 대가는 고스란히 내 몸과 내 마음으로 돌아왔다.


선을 긋는다는 건 상대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정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정은 늦게 오지만,
반드시 필요해지는 순간이 있다는 것도.



*이 글은 한 집에 살면서 각자 살게 되었던 시간들을 기록한 연재의 일부입니다

앞선 이야기들은 아래에서 이어서 읽을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dudal1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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