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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껍데기와 귤껍질을 모으는 까닭은?

[김효원의 어쩌다 농부]

by 김효원 Jan 20. 2025

농사를 시작하고 난 후 쓰레기를 모으는 사람이 됐다. 도시의 멀쩡한 아파트에서 쓰레기를 모으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카메라 들고 오면 어쩌지.


과거에는 즉각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넣었을 쓰레기들을 이제는 밭으로 보낼 용도로 따로 모아두기 시작했다.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넣으면 무조건 소각장으로 간다. 가정에서 밭으로 보내 거름용으로 쓰면 지구의 쓰레기 처리에도 도움이 되고, 밭도 비옥해지니 일석이조다.

겨울철에 많이 나오는 귤껍질은 잘 말려두었다가 밭에 거름으로 쓰면 좋다. 사진=김효원

쓰레기를 모아두었다가 밭으로 보내는 일은 흙을 생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흙으로 돌아가야 할 것들을 흙으로 보내면 그만큼 흙의 총량이 늘어나게 된다.  


평소 모아두었다가 밭으로 보내면 좋은 쓰레기는 다음과 같다.


먼저 달걀껍데기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달걀은 껍질을 남긴다. 하루에 한두 개씩, 프라이로도 먹고 삶아도 먹다 보니 일주일이면 제법 많은 양의 달걀껍데기가 나온다. 그동안 달걀껍데기는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는 명명백백한 쓰레기였는데, 농사를 시작한 후로는 아주 소중하게 모으는 퇴비 1순위다. 달걀껍데기에 들어 있는 단백질과 석회질이 작물에 성장에 도움을 준다. 껍질을 믹서기에 갈아서 뿌려주면 흡수에 더 좋다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면 바싹 말린 후 손으로 대충 부숴 밭에 뿌려도 괜찮다.


그다음으로 소중하게 모으는 쓰레기는 과일껍질이다. 과일 껍질 역시 매일 조금씩 나오는 쓰레기다. 사과, 배, 감, 바나나, 귤 같은 과일을 먹고 나면 껍질이 생긴다. 특히 겨울철에는 귤껍질이 단연 많이 나온다. 귤은 앉은자리에서 대여섯 개 뚝딱 까먹기 때문에 일주일이면 귤껍질이 바가지에 수북하게 쌓인다. 이렇게 나온 과일 껍질은 잘 마를 수 있게 테이블 위에 늘어놓는다. 껍질을 마구 쌓아놓으면 겹쳐진 부분에 곰팡이가 생길 수 있으므로 잘 펼쳐놓아야 한다. 과일 껍질이 마르면서 겨울철 실내 습기에도 도움을 주니 꿩 먹고 알 먹고다.

사과껍질도 잘 말려두었다가 퇴비로 활용한다. 사진=김효원

바나나껍질도 밭작물의 성장에 무척 도움이 되는 과일껍질이다. 바나나껍질에는 칼륨, 철분, 비타민B, 비타민C, 마그네슘, 구리 등이 다량 함유돼 있다. 따라서 바나나껍질을 모아두었다가 텃밭에 주면 훌륭한 거름이 된다. 바나나껍질을 바짝 말린 후 가위로 잘게 잘라 흙에 뿌려주어도 되고, 껍질을 물에 담가 좋은 성분을 우려낸 후 이를 작물에 뿌려도 도움이 된다. 심지어 바나나껍질이 흙의 산성과 알칼리성을 조절하는 역할도 한다니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그냥 버리기엔 아깝다.

커피 찌꺼기와 달걀껍데기를 모으고 있다. 사진=김효원

각종 차를 마시고 남은 찌꺼기, 커피 원두 찌꺼기도 버리지 않고 모아둔다. 특히 커피 찌꺼기는 지난해 가을, 배추 농사를 지을 때 천연 해충 방지제로 훌륭한 역할을 했다. 차 찌꺼기는 식물의 잎이나 꽃이므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이처럼 커피 찌꺼기와 차 찌꺼기도 잘 건조한 후 모아두었다가 밭으로 가져간다.


비록 5도 2촌이지만 농사를 지으면서 자연의 순환을 생각하게 된다. 자연은 생장소멸(生長消滅)한다. 내 눈앞에 있는 식물과 나무만 자연이 아니다. 나 역시 자연의 일부다. 자연의 순환을 돕는 것은 나를 돌보는 일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도시의 아파트에서 키우는 화분에도 쓰레기 퇴비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잘 말려둔 달걀껍데기, 과일껍질, 커피 찌꺼기, 차 찌꺼기를 수시로 화분에 뿌려준다. 그동안 물을 주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천연 퇴비를 공급해 주었더니 화초들이 더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이렇게 흙으로 돌려보낼 쓰레기를 따로 모아두다 보니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넣게 되는 쓰레기가 현저하게 줄었다. 종량제 봉투값도 아끼게 되었으니 기쁨이 두 배다.


매일 쓰레기봉투에 넣을 쓰레기를 결정할 때 나는 햄릿이라도 된 것처럼 심사숙고한다. 버릴 것인가, 살릴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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