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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커비 Oct 31. 2020

왜 삼촌은 매년 나이를 물어보실까?

명절잔소리는 왜 사라지지 않는가

"철수, 요즘 공부는 잘하니?"

"영희는 지금 몇살이지? 몇학년다녀?"

"영수, 이번에 대학 어디 붙었지?"

"준우야 취업했니?

"수민이 만나는 남자친구는 있어?"

"재철이는 왜 결혼 안하니?"

"너희는 왜 애를 안낳니?"

"자네 연봉이 얼마나 된다고 했던가?"


 왜 명절만 되면, 다 큰 조카들과 친척들은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까? 2020년은 코로나로 인해 명절 이동을 최소화했지만, 명절을 떠올리면 오랜만에 친척들끼리 모여 서로 대학을 어디 갔는지, 취업은 대기업으로 했는지, 만나는 사람은 있는지, 결혼은 언제할 건지 묻는 질문이 오간다. 


 오가는 질문속에 서로의 상처, 아픈 곳을 후벼파면서 '명절 = 잔소리' 로 기억되기 시작한다. 사춘기때부터 쌓이는 스트레스는 성인이 되어가면서 비교대상이 많아져 더 강화되고 결국에는 나를 이뻐하던 삼촌, 고모들을 보는것도 괴로워져 슬슬 명절에 안가게 된다.


 왜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어른들은 명절에 잔소리하는것을 아이들이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없는걸까?


1. 서울로, 서울로!


 우리나라 산업화의 속도는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빠르다고 익히 알려져있다. 특히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릴만큼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이어지는 수도권 중심의 경제발전은 폭발적이었고, 산업화라는 기치아래 30년만에 최빈국에서 중진국, 선진국 반열에 빠르게 올라섰다. 


 어느 나라나 경제 발전 수준이 그러하듯, 기술력과 자본이 부족하던 1960년대에는 경공업으로, 군부정권의 장기집권이후로는 중공업으로 넘어왔다. 경공업은 수출의 물꼬를 텄으며, 청계천 여공들과 전태일을 낳았고, 중공업은 경부선 지역의 발전을 이끌었다.


 청계천 여공들은 어땠나? 전후 한국의 베이비붐세대에서 누나로, 여동생으로 형제 자매를 먹여살리기 위해 상경한 이들은 15시간 이상씩 중노동을 하며 고향의 부모님에게 월급을 부치며 가족생계를 이끌었다. 오빠의 결혼자금을 대었고, 동생들의 대학 학자금을 대었다.


 중공업 발전은 인천과 부산의 한국 제2 도시화를 만들어냈다. 낮은 기술력의 제품들을 싼값에 수출하였으며, 2차 가공을 하여 재수출하는 등 여느 중진국이 취하는 저임금 노동자 기반의 가격경쟁력 높고 완성도 있는 제품을만드는 나라의 역할을 다했다.


서울로 누나들이 가고, 울산으로 형님이 갔으며, 구미로 여동생들이 흩어져 나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고 길렀다. 바로 60~80년대 고향을 나가 집안을 일으켰던 우리네 어른들의 모습이었다. 이런 각고의 노력이 있었으니 당연히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음은 당연한 것이고.



 이런 어르신들이 생업으로 나아가기전 유년시절의 모습을 돌이켜보자. 여전히 낙후된 전후의 한국은 농사를 짓는 시골 여느 촌부 가정의 삶이었다. 줄줄이 여섯, 일곱씩 낳아 자식을 노동의 밑천 삼아 더 많은 노동력으로 농사짓고, 소를 키우는 풍경이었다.


 명절이 아니어도 건넛집에 가면 큰할아버지 댁이 있었고, 사촌이 아니라 육촌, 팔촌까지 한 동네에 모여살고 같이 학교를 다니는 것도 당연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께서 여전히 본인들의 당숙이야기를 쉽게 전해들을 수 있는 것은 시골에서 다닌 학교의 동창이 곧 동네 친구이고, 친척이었기에 한 사람만 건너도 다 아는 그런 풍경이었다. 


 이런 이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귀성길에 나서면 열시간 넘게 차속에서 지지고 볶았고, 밤늦게 큰집에 모여 아이는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만나서 서로 그간 못만난 회포를 풀고 다같이 술자리하고, 화투를 치고, 술안주를 놓고 왁자지껄 떠들었다.


 익숙했던 어른들의 풍경이었다. 


2. 명절아니면 만날일도 없는 세상


 어느새부터인가 명절이 짧아졌다. 도로는 더 많이 생겼고, 차는 더 많아졌으며, 국가는 주5일제를 시행하면서 더 많은 휴일이 생겨났다. 더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만남이 줄어들었다.


 90년대 해외여행 자유화조치로 해외여행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신혼여행을 해외로 가는 경우가 늘기 시작했다. 이후로 20년 가까이 해외여행은 갈수록 늘어났고, 해외를 가기위해 오랜 기간을 휴가내야하는 사람들에게는 명절이 중요한 휴가기간이 되었다.


 97년 IMF로 인해 명절에 가족을 찾지 않는 청년, 가장들이 늘어났다. 상경 성공신화를 품고 돌아오던 이전세대에 비해 경제적으로 처음 어려움을 겪은 세대들의 등장이었다. 면목없는 젊은이들의 연이는 귀성포기는 세대의 그림자를 드러내는 모습이었다.


 2000년대 주5일제가 적극적으로 도입되었다. 학교에서는 놀토가 생기면서 쉬는 토요일에 가족과 함께 주말 캠핑을하거나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3대가 함께 했던 지난 대가족의 시대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핵가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점차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아래 다같이 모여 지난 한해를 돌아보는 추석을, 앞으로 한해를 기원하는 설날을 축소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2030의 부모세대에서는 형제간 우애라는 것도 어른이되고, 아이를 키우면서 상하지나 않으면 다행인 것이었다.


 점차 사촌끼리 만나는 일이 줄어 들었다. 주말에라도 큰아버지댁에 놀러가 형들과 미니카를 돌리고, 이모집에 놀러가 언니들과 노래부르고, 떠드는 풍경들이 점차 사라져갔다. 그 시간들은 주말에 운영되는 학원이 대체하고, 교회가 채웠다(언젠가 다루겠지만, 한국에서 기독교가 갖고 있는 파워는 과거 농촌시대 이웃이 만든 커뮤니티 그 이상이다)


 익숙하지 않은 만남들이 늘어날수록 사촌과의 관계들이 어색해져갔다. 그사이 오해는 쌓이고, 서먹해지면서 명절은 우리에게 낯선 만남의 장이 되어갔다. 


3. 이제는 진짜 모르겠다.


 오랜만에 사촌형과 만났는데, 귀엽고 작은 애기였던 조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다. 아니, 고학년으로 추측하고 있었다. 사촌형이 서울의 대학에 진학하며 우리집에서 함께 산 세월이 10년이 넘었음에도, 지금은 일년에 한번 보기도 어려워졌다.


 사촌형을 한번 보러 가려해도, 형수님이 불편하실까봐 조심스럽게 되고 조카들이 나를 불편해할까 찾아가기 어려워졌다. 이제와서 조카에게 친한척을 하려해도 나이 서른 둘에 열두살 아이와 나눌대화가 그리 많지 않았다.


 5년전 대학생일때는 그나마 초등학생들이 많이한다는 마인크래프트 게임이라도 해서 좀 얘기라도 되었는데, 이제는 이 친구들도 커버려서 뭘 관심갖는지도 함부로 추측하기 어려웠다. 접점 좀 찾아보려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까 고민하다가 처음 내뱉으려다 목에 콱 막혀버린 말이 있었다. 


"00아 너 몇학년이야?"


아, 그래서 어른들이 내 나이를 그렇게 궁금해했었구나....


 어릴적 세상은 내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내가 몇학년인지 모르고 맨날 내게 학년을 물어보는 어른들을 원망했다. 그럴만했다. 오랜만에 만났고, 그들에겐 수십명의 조카들이 있었을테니 내 나이를 구태여 기억했을리 없다.


다른 더 큰 아마도 고등학생 조카에게 말했다.


"00이는 요즘 뭐하고 노냐"


 아뿔싸... 관심도 없으면서 이야기 좀 해보겠다고 어설프게 접근을 시도했다. 사실 나도 요즘 트렌드 공부한다고 노력은 하지만, 고작 틱톡이나 제페토 좀 안다고 주절거려볼 수 있을까? 조카도 자기가 요즘 뭐하고 노는지 모르겠다면서 그냥 예능이나 보고 유튜브이야기하는게 전부였다.


 어른들이 나를 보면 매번 몇학년인지 묻고는 곧 대학에 갈텐데 공부를 잘하는 지 물었다. 사실 공부를 잘하는지 못하는 지 관심있다기보다, 케이스에 따라 나올 레파토리를 준비중이셨을 것이다. 공부를 잘하면, 어느 대학에 갈 것인지, 못한다고 하면 열심히 해야 누구 삼촌처럼 될 것이라고 독려했을 뻔한 이야기들.


 어찌보면, 물음이 조금 달랐을 뿐, 예민함에 대한 조심성이 더 생겼을 뿐 크게 처지가 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다.

 

 자, 결국 결론은 우리가 너무 서로를 모르고 살아왔기 때문에 서로에게 할말이 없어진 우리 사이에 나눌것은 그저 서로의 근황뿐이다. 어차피 오늘 물어본 학년은 내년되면 겨우 하나 올라갔을 뿐인데 여전히 또 다시 물을 것이고, 오늘 물어보신 나의 나이 서른살은 내년 겨우 서른하나임에도 벌써 그렇게 나이먹었냐며 화들짝 놀라실 것이다. 


 이미 멀어질만큼 멀어진 우리는 더이상 좁힐래야 좁힐 수 없다. 그래서 이번에 어른들을 위한 '요즘 친구들의 이야기(가제)" 시리즈를 만들게 되었다. 우리도 충분히 어른인데, 진짜 우리보다 어른들께서 우리를 이해하실 수 있도록, 돕는 작은 가이드북이 되었으면 좋겠다. (주말간 브런치북으로 묶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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